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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명한 일본 전문가이자 수학자인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의 주장 중에 원형사관(办演史觀)이란 게 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원형은 민족사의 초기 단계에서 형성된 민족의 성격을 뜻하고, 원형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용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원형이 민족 공동체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100여 권의 저서를 갖고 있는 그는 2014년에 《풍수화(風水火)》라는 책을 펴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한·중·일이 같은 동양권, 유교 문화권, 한자 문화권에 속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서로가 놀랄 만큼 판이한 문화 양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까닭이 뭘까요. 그는 이 차이를 원형사관으로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그는 그 민족의 개성 즉, 원형의 발현체를 한국의 바람(風)과 중국의 물(水), 일본의 불(火)에 비유해 삼국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합니다. 그는 주변 국가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중국을 물(水)로, 외딴섬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대륙 콤플렉스 탓에 침략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을 불(火)로, 그 원형을 파악하고 바람의 원형을 지닌 한국을 풍(風)으로 빗대어 표현했습니다.이 글에서 김용운 교수의 원형사관을 언급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원형이 현재와 아무 상관없는 옛날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원형 위에 오랜 민족사적 체험이 쌓여 민족 고유의 전통을 만들고 국민성을 형성합니다. 조선 말기 광화문 거리에서 상소하던 선비의 마음은 4·19의 학생운동으로, 그리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시민에게로 이어집니다. 
© 사진=연합뉴스

사설(辭說)이 길었습니다. 최근 전국을 강타한 생리대 쇼크도 원형사관에 비춰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 사태의 핵심은 ‘정부의 무능과 거짓말’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제쳐두고 조선시대만 보겠습니다. 이 시대 대표 사례 하나만 들겠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그랬죠. 선조가 무능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는 데다 여차하면 명나라로 도망가려고 의주로 몽진(蒙塵)해 놓고도 백성들에게는 그 의도를 숨겼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의 정부가 아니니 패스합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을 볼까요. 6·25 때 이승만 정부는 “국민 여러분! 국군은 수도 서울을 끝까지 .사수할 것입니다” 해 놓고 한강다리까지 폭파하고선 부산으로 줄행랑쳤습니다. 정부 발표를 철석같이 믿고 서울에 남았던 시민들은 인민군 치하에서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비근(卑近)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IMF 사태 초기의 일입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정부 발표를 믿고 은행주를 샀던 사람들은 그 후 은행주가 큰 폭으로 하락해 막대한 손해를 봤습니다. 이런 ‘정부의 무능과 거짓말’ 전통은 정권이 바뀌어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를 믿으면 손해 본다’는 민(民) 차원의 대응은 나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야 나라가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게 당연하죠. 최근 국민적 분노를 산 생리대 사태에서도 이런 한국병은 유감없이 발휘됐습니다. 생리대 사태 이전에 가습기 살균제 쇼크, 살충제 계란 사태 등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었습니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하면 국민은 반대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딱 하나뿐입니다. 최고지도자의 각성과 솔선수범이 그것입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면 우리 민족만큼 신명 나게 잘 받쳐주는 집단도 드뭅니다. 한민족의 원형을 잘 이해하는 리더의 출현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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