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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30주년 맞아 백남기 사건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 요구 기자회견…명예졸업장 수여도 촉구

6월10일 87년 6∙10항쟁 30주년을 맞아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서울시청 도서관 앞에서 열렸다. 가톨릭농민회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중앙대학교민주동문회,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농민권익보호를 위해 일생을 생명과 평화의 일꾼으로 살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장례를 치른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사건의 조사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백남기씨의 모교인 중앙대학교에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고 부조상을 설립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진행됐던 민주주의를 향한 일련의 투쟁을 무(無)로 되돌리는 사건이 눈앞에서 일어났다”며 “맨몸의 70대 노인이 외친 정당한 주장에 대한 국가의 답은 직사살수를 앞세운 무자비한 폭력이었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무참히 쓰러졌던 그날부터 575일째인 오늘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며 “국가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며 재판 진행을 지연시키고 있다.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사건 당시 경찰청장이던 강신명 전 청장을 포함해 진압 책임자 중 기소된 사람이 없고, 특검 법안도 수개월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며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11월6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고(故) 백남기씨의 노제에서 백남기 농민의 손자가 추모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백남기씨는 2015년 11월14일 서울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입원 치료 중 숨을 거뒀다. ⓒ 사진=연합뉴스

1987년 6‧10 규탄대회를 앞두고 6월9일 학교 앞 시위에 참여한 이한열씨가 규정을 어긴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이한열씨는 사경을 헤매다 6‧29 선언 이후인 7월5일 숨을 거뒀다. 최루탄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시위 현장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2015년 11월14일, 경찰의 살수차가 한 생명을 앗아갔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한 백남기씨는 경찰의 물대포 직사살수를 맞고 300일 넘게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다 끝내 숨졌다.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과잉 진압을 주장하며 정부 당국에 책임자 처벌 등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는 국정화에 반대한 국민에게 전쟁을 선포하더니 생존권을 요구하는 국민에겐 살인적 폭력진압을 자행했다”며 사건 발생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집회 참가자들을 ‘전문 시위꾼’, ‘반(反)체제 세력’ 등으로 지칭하며 폭력행위에 대한 관계당국의 엄단을 촉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현 바른정당 의원)는 "전문 시위꾼들에 의해 경찰 113명이 부상당하고 경찰 버스 50대가 파손됐다. 국민은 이런 불법 무도한 세력들에게 공권력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며 "경찰청장을 비롯한 관계당국은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히 법을 집행하는데 그 직(職)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대포가 사망 원인이라는 유족에게 경찰이 부검을 해봐야 한다고 맞서면서 한 달 넘게 날 선 대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5년 11월 18일 유족은 백남기씨가 1차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것에 책임을 물으며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살인미수 등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시위 진압을 진두지휘한 구은수 전 청장, 서울청 차장이던 장향진 경찰청 경비국장을 비롯한 피고발인과 참고인들을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유족 등의 진상규명 촉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선 선대위 기구였던 국민의나라위원회의 ‘신정부 국정환경과 국정운영 방향’ 보고서에는 ‘촛불 개혁 10대 과제’ 중 하나로 '백남기 농민 사건 재수사'가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진상규명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백남기투쟁본부, 공권역감시대응팀 등 시민단체들이 4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 진압' 관련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백남기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의 물대포 직사살수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1년도에 이미 직사살수가 문제가 돼 뇌진탕과 각막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청구인이 돼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그때 직사살수가 위법하다 또는 위헌적이라는 게 확인됐다면 2015년 백남기 어르신의 그런 일은 반복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2011년 헌법재판관이던 김 후보자는 경찰의 물대포 사용 기준이 구체적인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김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서에서도 직사살수에 대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하면서 "생명, 신체에 가장 위험을 끼칠 수 있는 직사살수는 발사자의 의도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명백하게 초래한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그러한 사정이 없었음에도 직사살수한 경우에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새 정부 인권 강조하자 살수차 이름 변경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던 경찰은 새 정부가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인권을 강조하자 부랴부랴 물대포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살수차(撒水車)의 이름을 ‘참수리(水利)차’로 바꾸기로 한 것도 이에 포함된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살수차에 대해 어감이 좋지 않다는 여론이 있어 경찰 자체적으로는 ‘참되게 물을 이용한다’는 의미인 ‘참수리차’로 부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참수리는 ‘진실’이라는 의미의 우리말 ‘참’ 자에 한자인 ‘물 수’(水), ‘이로울 리’(利) 자를 써서 “물을 참되고 이롭게 쓴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또 “직사살수 수압을 최대한 낮춰 달라는 게 가장 큰 쟁점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도 살수차 사용 목적에 부합한다면 (수압을) 강하게 쓸 필요는 없다”고 언급했다. 배치 원칙에 대해서는 “살수차나 차벽을 원칙적으로 배치하지 않겠다”면서도 “집회가 격화해 경찰력으로 다 커버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살수차가) 본래 기능을 못할 정도로 (사용 제한 규정이) 개정되면 그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살수차의 이름을 바꿀 것이 아니라, 백남기씨 사망부터 용산 참사까지 경찰의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여전히 여당이 개혁 과제로 내놓기도 했던 '백남기 농민 사건 재조사'에 대해 검찰 수사와 재판을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힌 데다, 사건 당시 작성한 청문 감사보고서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6월10일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서울시청 도서관 앞에서 열렸다. ⓒ 사진=시사저널 조유빈

백남기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감사하게도 책임자 처벌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셨다. 그 점에 대해서 믿고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들의 이후 행동은 반성은커녕 점점 도를 넘어가고 있다”며 “물대포를 퇴출하기는커녕 참수리차로 이름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찼다. 공권력을 이용해 저지른 살인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무슨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냐”며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직사살수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회‧시위 문화가 달라진 만큼 경찰의 관리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공공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일으킬 경우에만 직사살수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의적 해석에 따라 직사살수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살수차 이름을 참수리차로 바꾸면서 직사 살수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보인다는 것은 과거 백남기 사건을 비롯한 공권력 남용과 인권 침해, 범죄 행위에 대해서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라며 “독재 정권에서도 시민이 죽으면 정부 차원의 사과는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백남기 농민에 대한 어떤 사과와 위로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물대포는 원칙적으로 없어야 하고, 예외적으로 등장한다고 해도 시위가 장기간 격렬해질 때 나와도 늦지 않다. 곡사만 해도 충분히 효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한열씨의 어머니는 백남기씨의 목숨을 잃게 한 살수차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6월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추모문화제에서 “(살수차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없애 버려야 한다”며 “독재 정권에 있던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바른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경찰이 또다시 과잉 충성으로 국민들 괴롭히면 이제는 촛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규한 중앙대학교민주동문회장은 “지금까지 문제된 것을 털어내고, (백남기 사건) 책임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런 사건이 재발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도 재조사를 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입법을 하려는 동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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