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의 진료 톡톡] 알츠하이머 치매 할머니 이야기
정아무개 여사는 79세에 집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돼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단받았다. 이후 3년 조금 넘게 불안한 상태였지만 딸의 관심과 도우미의 도움으로 치매약을 복용하면서 독거생활을 지속해 왔다. 83세가 될 무렵 도우미가 물건을 훔쳐간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도우미를 몇 차례 내보내고는 결국 혼자서 생활하게 됐다.
이후 얼마 동안 50대 중반의 딸이 자기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밥과 반찬을 나르고 집 안도 정리했다. 시간을 내 자주 들르고 매일 여러 차례 전화하는데도 정 여사는 “왜 전화도 하지 않느냐” “왜 안 오느냐”고 역정을 냈다. 딸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정 여사 집에 가보니 집 안의 화초가 모두 말라죽어 있고 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깔끔한 성격과 달리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해다 놓은 반찬도 냉장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혼자서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딸은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다. 어떤 날은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 혀가 말라비틀어지고 숨이 넘어갈 듯해 수액을 여러 차례 맞기도 했다. 돈이 없어졌다고 밤새 찾을 때도 잦았으며 어떤 날은 소변을 실례해 자책하는 듯할 때도 있었다. 이 무렵부터 중기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병력을 확인해 보니 76세 때부터 길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해 지하철을 잘못 탄 적이 많았으며 자꾸 깜빡거려 노인정 할머니들에게서 “당신 치매 아니냐”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바로 이 기간, 76세에서 79세 사이 약 3년간은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남의 눈에도 이상해 보이는 객관적 경도인지장애 기간에 해당한다. 아마 70세 때부터 기억력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태가 가파르게 나빠지면서 본인도 한 해 한 해가 다르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 해가 다르다고 느낀 약 6년 정도의 기간을 주관적 경도인지장애라 할 수 있다.
정 여사의 치매 진행 과정을 차례대로 정리하자면 70세 이전은 ‘임상적 정상’으로 자각적 증상이 없고 검사에도 별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기간이었고, 이후 76세까지 약 6년간은 ‘주관적 경도인지장애’, 이후 79세까지 약 3년간은 ‘객관적 경도인지장애’의 기간이었으며, 79세에 ‘치매’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치매가 진행돼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2년 정도 지나면 초기 치매에서 중기 치매로 넘어가고, 또 약 2년이 지나면 말기 치매가 돼 이후 약 8년이란 긴 시간을 말기 치매로 살아가게 된다. 다행히 정 여사는 치료를 열심히 받아서인지 1~2년 정도 늦은 83세가 되면서 중기 치매가 진행됐다. 중기 치매부터는 기존의 약 효과가 떨어진 것으로 판단돼 양약을 중지하고 한약으로만 치료 중이다. 이후 4년이 흘러 87세가 된 지금까지 중기 치매 상태를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