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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탄압 직격탄 맞은 영화계 “예술의 자유” 목소리 더 높여…정치 영화도 봇물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는 영화계도 뒤흔들었다. 특검 수사 결과 청와대가 지시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밝혀졌고, 이 리스트에 오른 개인과 단체는 합당한 이유 없이 지원이 배제되고 직위가 해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아야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그늘이 드리워졌던 영화계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때마침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영화계의 움직임을 정치권에서도 민감하게 주시하는 양상이다.

 

 

문체부, 예술의 자유 침해 금지 등 발의키로

 

부산국제영화제는 박근혜 정권 동안에 탄압의 직격탄을 맞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정부 예산 삭감,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사퇴 압박 등 지속적인 진통에 시달려온 것이다. 이번 특검 수사로 인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화체육관광부에 부산영화제 예산 전액 삭감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산영화제에 대한 정부의 탄압 의혹은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청와대가 《다이빙벨》 논란에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왔다. 여기에서는 《다이빙벨》을 배급한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시네마달’에 대한 내사를 요구하는 문구도 발견됐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의 공소장에는 《다이빙벨》 상영관 전 좌석에 대한 일괄 매표로 일반시민들의 관람을 방해하도록 지시하는 등의 세부 정황도 포함돼 있다.

 

2월7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사퇴 및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네마달은 《다이빙벨》을 시작으로 《나쁜 나라》 《업사이드다운》 등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배급하는 과정에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다양성 영화 개봉 지원 제외 대상이 된 대표적 회사다. 잇따른 외압에 폐업 위기까지 맞았다. 이에 지난 2월 감독 70여 명과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단체 30여 곳이 ‘시네마달 지키기 공동연대’라는 이름으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는 펀딩 프로젝트를 오는 4월25일까지 진행한다.

 

탄압에 맞서는 영화인들의 움직임은 계속된다. 한국영화감독조합·한국독립영화협회 등 7개 단체는 이미 지난해 12월 김기춘 전 실장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이들에 대해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2월7일에는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가칭) 주최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인 선언’이 열렸다. 영화인들은 김 위원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검찰의 압수수색·소환조사를 강력 촉구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느끼는 가장 큰 심각성은 국가가 개인의 생각을 통제하려 했다는 것”(류승완 감독), “블랙리스트를 중대 문제로 인식하고 책임자를 끝까지 가리는 것은 단순히 부산국제영화제가 피해를 입어서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를 위해 싸우려는 것”(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프로그래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전날인 3월9일, 문체부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화예술정책의 공정성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정부 비판적 문화예술계 인사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폐지된 사업의 복구 등을 위해 85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영진위 등 예술 지원 기관의 인사를 예술계 자율에 맡기는 방안도 추진될 예정이다. 또한 문체부는 ‘예술가의 권익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올해 상반기 중 발의한다. 여기에는 예술의 자유 침해 금지, 예술 지원 차별 금지 조항 등이 포함된다. 사실상 사전 검열로 정부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지원하겠다는 의지 표명처럼 보였던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지역 독립영화관 지원 등의 사업에 대해서도 영화계 의견을 반영한 개선안을 4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영화계는 여전히 말뿐인 제도 개선보다 문체부 내외 인사들의 처벌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영화 《보통사람》의 강력계 형사 강성진(손현주)과 안기부 실장 최규남(장혁) © 오퍼스픽쳐스

 

대선 기간 개봉하는 《보통사람》 《특별시민》 등 주목

 

 

영화계 전체에 적폐 청산의 바람이 불고 있다면, 스크린 안에서는 정치 이슈 영화들이 풍년이다. 대선이 치러진 해에는 유독 정치적 시각을 담은 영화, 역사적 실화 소재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덕분이다. 18대 대선이 열렸던 2012년에도 《광해, 왕이 된 남자》 《26년》 《남영동 1985》처럼 이상적 지도자상(像)을 말하거나 정치적 사건을 재조명한 영화들이 앞다퉈 나왔다.

 

3월23일 개봉하는 《보통사람》은 1987년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던져진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이 안기부(현 국정원)의 압력으로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살인 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시장 변종구(최민식)가 ‘정치는 쇼’라는 신념으로 선거판을 주무르는 과정을 다룬 《특별시민》은 4월 개봉 예정으로, 실제 대선 기간과 비슷하게 맞물리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영화 《특별시민》에서 발로 뛰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 © (주)쇼박스

 

여름에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택시 운전사》가 개봉한다. 당시 광주를 취재했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로, 영화는 그를 태워 서울에서 광주까지 간 택시 운전사(송강호)와 외국 기자의 눈에 비친 당시 광주의 이야기를 재연할 예정이다. 일제 강점기 ‘군함도’라 불린 하시마 섬을 배경으로 이곳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400명의 탈출기를 담은 《군함도》 역시 여름 개봉을 준비 중이다. 2002년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 외압설을 주장한 조주형 전 공군 대령, 2009년 계룡대 군납 문제를 내부 폭로한 김영수 전 해군 소령 등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일급기밀》도 상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령 출신 군인(김상경)이 기자(김옥빈)와 함께 군 내부 비리 사건을 추적한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싼 《1987》도 제작 초읽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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