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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평론가라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안목》 펴낸 유홍준 석좌교수

“안목(眼目)은 꼭 미(美)를 보는 눈에만 국한하는 말이 아니고, 세상을 보는 눈 모두에 해당한다. 그래도 안목의 본령은 역시 예술을 보는 눈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명성을 떨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가 미술 평론가라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예술작품을 보는 안목을 이야기한다. 최근 그는 《안목》을 펴내면서 전작 《국보순례》 《명작순례》와 함께 묶인 ‘유홍준의 미(美)를 보는 눈’ 시리즈도 완성했다. 유 교수는 “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유물들을 찾아가는 답사기·순례기를 집필하면서 독자들에게 미를 보는 눈,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펴내게 됐다”고 출간 의도를 밝혔다.

 

《안목》 펴낸 유홍준 석좌교수  © 눌와 출판사 제공

“안목은 창작의 재능만큼이나 중요해”

 

“지금은 시대를 대표하는 대가로 인정받지만, 정작 생전에는 불우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이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괄시해도 그들의 예술세계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이 있었기에 후일 재평가와 복권이 이뤄졌다. 이처럼 미를 보는 눈, 안목은 창작의 재능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명작이라 해도 알아보는 이가 없으면 묻히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안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유홍준 교수는 안목이란 무엇인지, 역사 속 높은 안목의 소유자들은 어떻게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파악했는지를 건축·백자·청자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설명한다. 

 

“영조 때 문인화가인 능호관 이인상의 그림과 글씨는 모두가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안목이 낮은 사람의 눈에는 얼른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대상을 소략(疎略)하게 묘사해 기교가 잘 드러나지 않고, 먹을 묽게 사용해 얼핏 보면 싱겁다는 인상까지 준다. 그러나 안목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그 스스럼없는 필치 속에 담긴 고담한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든다. 한껏 잘 그린 태를 내는 직업 화가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고상한 문기가 있다며 더 높이 평가한다. 작품의 이런 예술적 가치를 밝히는 것은 미술사가의 몫이라고 하겠지만, 일반 감상가 중에서도 안목이 높은 이는 실수 없이 그 미감을 읽어낸다.”

유 교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이상하다고 느껴질 법한 옛 문인의 글씨를 보면서 그 오묘함과 조화로움을 알아채는 것, 고려청자의 깊고 고운 색에 감탄하는 것, 우리 전통건축을 보면서 주변 환경과 절묘하게 어울린 자리앉음새에 감탄하는 것들 모두 뛰어난 안목의 예로 제시한다. 안목이 높았던 당대 인물의 설명도 보탠다. 이를테면 추사를 평가한 동시대 문인 유최진의 말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글씨의 묘(妙)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

《안목》의 첫 장에는 ‘불상’ ‘건축’ ‘청자’ ‘백자’ 등 10개의 주제로, 제각기 다른 눈으로 한국미의 탁월함을 꿰뚫어보았던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복잡한 이론 해설이 아니다. 고려를 방문한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의 기록을 찾아내는가 하면, 조선시대의 문인 등 실제로 높은 안목을 갖고 있던 이들이 남긴 말과 글을 정리해 안목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미(美)를 대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유홍준 지음 눌와 펴냄 320쪽 2만원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모으게 되나니”

 

“우리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미술품 수장가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편견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미술 애호는 음악 감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급 취미 중 하나이다. 미술품 수장가가 작품을 사주지 않으면 미술문화는 이뤄질 수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품 수장가는 그 시대 미술문화의 강력한 후원자이고, 나아가서는 민족문화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유홍준 교수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모으게 되니, 이때 모으는 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석농화원》의 한 문장을 띄우며, 안목 높은 이의 미술품 애호는 그저 양만 불리는 데 집착하는 수준 낮은 미술품 수집과는 달리 한 개인의 취미를 넘어 역사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림과 글씨를 수집하고 안견의 재능을 아끼며 문인들과 두루 널리 교유하여 《몽유도원도》라는 희대의 명작을 탄생시킨 안평대군, ‘서화 전적과 미술품은 조선의 자존심’이라며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수집해 지켜낸 간송 전형필, 한평생 아껴 모은 백자들을 ‘시집보내듯’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수정 박병래 등.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부유한 이들의 도락으로 치부하곤 하는 미술품 수장의 진정한 의의가 무엇인지, 안목이 왜 중요한지를 삶으로 증명한 분들이다.”

뛰어난 안목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미담을 남겨 우리 문화사에도 기여한 역대 수장가들의 이야기로 안목의 중요함을 재차 강조하는 유 교수는 “이 글들을 쓰면서 나는 비록 대학 강단에선 정년퇴직했지만, 평론의 현장에선 여전히 현역으로 대중과 교감하며 미를 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기꺼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유 교수는 안목을, 꼭 미를 보는 눈에 국한시키지 않고 세상을 보는 눈 모두로 확장했다. 미학과 미술사학을 연구한 전문가답게 안목의 본령을 예술로 잡고서 책을 서술하지만, 동시에 책에는 예술가의 삶과 시대의 자취가 녹아 있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 정치·경제·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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