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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유신대통령 막장드라마, 권한 정지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소추는 우리 국민들에게 대통령직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왕정이 무너진 지 한 세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대통령을 왕처럼 생각하는 국민이 없지 않다. 왕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을 국정을 통할하는 관리자요, 삼권을 초월하는 최고지도자로 보는 사람이 지식인층에도 적지 않다. 우리의 정부 형태를 아직도 대통령‘중심’제로 표현하는 데는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도 빠지지 않는다. 1987년 민주체제가 수립된 지 30년이 돼가는 데도 대통령에 대한 이해는 유신시대의 독재적 대통령관(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제헌헌법 이래 모두 민주공화국을 표방했지만 그 실질을 확보하는 데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식 독재체제를 연상시키는 ‘영도적 대통령제’를 채택한 유신헌법마저도 민주공화국을 표방했었다. 유신체제의 집권당은 당명마저 민주공화당이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반(反)독재를 핵심가치로 삼는다는 점에 비춰보면 희극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 23일 만인 1월1일 청와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신 이래 독재적 대통령 유산이 드리운 결과

 

헌정사에서 실권을 가지는 대통령에게 국가원수의 지위를 헌법에 명문화한 것도 유신헌법이 기원이다. 유신의 연장이라 할 1980년 5·17쿠데타헌법 또한 국가원수체제를 답습해 입법부와 사법부보다 우월적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구축했다. 서둘러 마련된 1987년 헌법이 유신의 유산을 제대로 척결하지 못한 잔재가 국가원수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신과 5공의 반민주공화국적 제도를 극복하고자 한 민주항쟁의 결과가 1987년 헌법이었다는 역사성, 국가권력 간 수평적 견제균형체제에 철저한 권력분립체제, 대통령 직선으로 제도화한 주권재민정신 등에 비춰 1987년 헌법의 국가원수직은 형식적·의전적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법치주의 정신에 따라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을 헌법정신에 따라 집행하는 행정권 수반의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 1987년 헌법의 정부형태는 국정의 중심이 대통령인 대통령‘중심’제가 아니다. 국정을 대통령이 행정부의 보좌를 받아 입법부, 사법부와 더불어 공화적으로 처리하는 ‘권력분립적’ 대통령제다.

 

이런 취지에서 보면 민주공화국 헌정에 유신 이래의 독재적 대통령의 유산이 드리운 결과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일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직에 대한 인식은 유신시대의 대통령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영애’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 역할로 학습했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대통령직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유신대통령’ 박정희는 말 그대로 법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유신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국가원수로서 입법권과 사법권마저도 좌지우지하는, 말 그대로 국정의 ‘중심’이었다. 검찰이나 정보기관을 비롯한 행정기관은 물론이고 여당의 지도부마저도 대통령의 수족이었다. 국회의원은 3분의 1이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는 직이었고, 나머지 국민이 뽑는 경우에도 후보자 추천은 대통령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신시대의 법원은 시국사건에서 검찰의 조서재판에 순응하거나 ‘사법살인’마저도 불사하는 대신 대통령이 하사하는 ‘법복귀족’으로서의 특권을 누린 의혹이 짙다.

 

유신이 종언을 고한 후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민주화시대에 박근혜 대통령이, 역린을 건드리기만 하면 검찰총장이건, 여당 원내대표건, 신문사 사장이건, 재벌의 임원이건, 정당이건 단칼에 내치는 행태는 유신대통령의 데자뷔였던 것이다. 독재적 대통령의 달관된 면모는 단어 위주의 단문화된 화법에서도 도드라진다. 전지전능한 권력자 대통령은 설명의 의무가 없다. 오로지 화두만 던질 뿐이다. “창조경제” “통일대박” “배신의 정치” “비정상의 정상화” “바른 역사”…. 그 말에 ‘영혼 없는 공무원’과 ‘정치화된 언론’들이 달려들어 ‘마사지’하면 찬란하게 포장돼 형광등 100개도 제압하는 ‘빛의 아우라’를 발하는 선지자의 교지가 된다. 그리고 그 실체는 아무런 자격과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의 국정 농단이었다.

 

 

국민 선동발언 하면서 사법절차에는 불응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부활한 유신대통령의 막장드라마는 권한이 정지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스스로 약속했던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 대한 협조 다짐은 내팽개쳐진 지 오래다. 특검이 2월3일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청와대는 경내 진입을 거부했다. 수사 불응마저도 부족해서 검찰과 특검에 강압수사, 불공정수사의 멍에를 씌우려 안간힘이다. 작전하듯 언론의 질문권이나 촬영권이 박탈된 일방적 간담회가 청와대에서 벌어진다. 4년의 재임 중 한 번도 없었던 단독인터뷰를 편향성이 도드라진 인터넷TV와 가진다. 그나마 준비된 각본처럼 묻고 답하는 내용이란 것이 대부분 탄핵심판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고명(高名)하신 대통령께서 경멸해마지 않던 ‘찌라시’에 떠도는 풍문에 대한 것이다. 백주대낮에 전 국민이, 전 세계가 생방송으로 보고 있는 와중에 풋풋한 생명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동안 출근마저 않은 채 보낸 시간들에 대한 변변한 설명도 없다. 대통령직의 권위와 권한을 매개로 기업의 불법적 민원처리, 기부 강요, 경제적 대가관계가 복마전처럼 얽힌 무수한 정황을 두고 그냥 “엮인”것이라는 강변만이 지지자를 목표로 전파를 탄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25일 인터넷 매체 정규재TV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 유튜브 캡쳐

사실 심각한 문제는 이 따위 자기변명에 있지 않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피의자, 피소추자라면 반론권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탄핵소추된 대통령에게 들이대어야 할 헌법의 잣대는 행정권 수반인 대통령이 얼마나 사법절차를 존중하고 있느냐이다. 국민을 선동하는 발언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법이 요구하는 사법절차에는 불응할 뿐만 아니라 사법절차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한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따져야 할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증인 빼돌리기, 시간벌기용 증인신청이나 사실조회, 짜맞춘 듯한 측근들의 모르쇠와 자기모순이 넘쳐난다. 불출석하던 대통령의 기습출석마저도 심판지연에 도움이 된다면 감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 정도로 탄핵절차를 왜곡하고 있다. 그렇게 떳떳하다면, 초기의 대국민사과가 그냥 도의적이고 유감표명에 불과했다면,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심판절차가 신속히 종결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한마디로 헌법이 정한 민주적 대통령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마저 갖추지 못했음을 민망스러운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국내외의 급변하는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행정권 수반의 직은 민주적 정당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행에 의해 최소한의 수준에서 지탱되고 있을 뿐이다. 탄핵소추로 권한이 정지당한 박 대통령이 보여주는 이런 막장드라마와 같은 행태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직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음이 증명됐다. 하루빨리 막장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총리권한대행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민주공화국을 정상화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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