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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럭키》에서 20년 배우 경력 최초로 ‘원톱’ 맡은 유해진, 그가 주목받는 이유
“웃기려 노력하는 타입 아닌데도 웃긴다”
유해진은 신작 《럭키》에서 ‘원톱’이다. 원톱은 홀로 영화의 전면에 나서는 주인공을 의미한다. 1997년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으로 데뷔한 유해진은 올해가 배우 생활 20년째다. 의미 깊은 한 해를 맞아 영화의 원톱으로 출격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가 《럭키》에서 맡은 역할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냉혹한 킬러 형욱에서 무명배우 재성으로 바뀌는 등 1인 2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의뢰받은 사건 처리 후 목욕탕에 들른 형욱은 떨어진 비누를 밟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그만 기억을 잃는다. 마침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죽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목욕탕을 찾은 무명배우 재성(이준)은 정신을 잃은 형욱의 목욕탕 키를 자신의 것과 바꾸고 형욱 행세를 한다. 난 누군가, 또 여기는 어디인가. 형욱은 물품 보관함의 재성 물건을 보고 자신을 재성이라고 생각한다. 형욱이 목욕탕에 쓰러졌을 때 그를 병원으로 안내했던 구급대원 리나(조윤희)는 도움을 자청한다. 형욱이 기억을 찾을 때까지 엄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봐 주고 배우 매니저 역할까지 해준다. 전직 킬러인 형욱은 칼솜씨를 살려 예술적인 김밥 자르기로 분식집의 매출을 월등히 올려놓는다. 또한 촬영장에서는 액션 배우 버금가는 싸움 기술을 인정받아 엑스트라에서 단번에 주연 배우로 발돋움한다. 그러는 동안 기억을 되찾은 형욱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재성을 찾아 나선다.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가능한가? 상상력이 중요한 매체인 영화라는 것을 고려해도 《럭키》는 황당한 설정을 이야기상으로 제대로 설득하진 못한다. 예컨대 자신을 재성으로 착각한 형욱은 어떻게 목욕탕 물품 보관함의 옷가지만 보고 그가 어디에 사는지를 추리해 집을 찾아갈 수 있었던 걸까? 그러니까 《럭키》는 다소 엉성한 영화다. 유일한 미덕을 꼽으라면, 바로 유해진이다. 예전에 《전우치》(2009)에서 둔갑술을 펼치는 개 초랭이 역할로 유해진을 캐스팅했던 최동훈 감독은 이런 인터뷰를 했다. “초랭이 같은 캐릭터도 쓰려면 잘 안 된다. 고민하다가 ‘에이 안 되겠다. 유해진으로 가야겠다.’(웃음) (유)해진씨를 상상하면서부터 잘 써지더라. 해진씨가 웃기려고 노력하는 타입이 아닌데 희한하게 웃긴다.” 최동훈 감독의 말처럼 《럭키》에서 유해진은 별로 웃기려고 하는 것 같지 않은데 빵빵 터트린다. 진지하게 김밥을 써는 단순한 장면인데 유해진이 연기하니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이는 그간 유해진이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쌓아온 친근한 ‘아재’의 이미지 때문이다. 나이 많은 남자가 말꼬투리를 잡는 개그를 펼치는 것을 두고 아저씨 대신 친근하게 아재라고 부른다면, 유해진은 ‘아재 이상의 아재’다. 아재 현상이 발현하게 된 배경에는 속된말로 ‘개저씨’라 비하되는 일부 몰지각한 아저씨들에 대한 반발심이 담겨 있다. 나이가 많다며 고압적으로 윗사람 행세를 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썰렁한 개그로 분위기를 흐리는 아저씨와 다르게 아재는 경직된 상황을 누그럽게 푸는 화술을 구사하며 아무 데나 나서지 않고 자기 위치를 지킬 줄 아는 행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해진 연기의 미덕은 무작정 튀지 않는 것
‘차줌마’ 차승원과 함께 출연 중인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에서 유해진은 ‘바깥사람’ 역할을 맡아 실제 부부(?) 버금가는 호흡을 과시한다. 후배 손호준·남주혁과 어울리면서도 선배 대접을 받기는커녕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까불거리는 등 편하게 분위기를 이끈다. 이를 통해 유해진이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간 것처럼 《럭키》는 그런 배우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천부적인 코믹 연기가 각광을 받지만, 유해진 연기의 미덕은 무작정 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개 코믹한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들은 ‘신 스틸러(scene stealer)’, 말 그대로 특정 장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한 연기를 하는 게 보통이지만 유해진은 좀처럼 그런 경우가 없다. 그건 주인공으로 나선 《럭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형욱은 자신의 신분을 가져간 재성을 쫓으면서도 한편으로 무명배우로서 겪었을 그의 신세를 이해하며 결국에는 재성을 응원하기에 이른다. 유해진이 작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미’다. 상대방과 연기할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호흡’이다. 그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분량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럭키》의 경우 40대 중반의 형욱이 재성으로 착각하며 32살 행세를 하는 등 자기 비하하는 유머가 상당수이지만, 유해진은 이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연기력보다 미모가 주인공의 기준이 되어버린 연예 산업 안에서 유해진은 개성 있는 연기와 사람 좋은 마음씨로 관객을 무장해제 시킨다. 또한 연기는 호흡의 예술인 만큼 상대 배우가 편안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유해진은 배우로서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제 단순히 재미를 주는 캐릭터를 넘어 누군가를 보좌해줄 수 있는 어른의 지위로 영화 속에서 성장한 배경이다. 아닌 게 아니라, 《럭키》의 형욱과 재성은 쫓고 쫓기는 관계를 넘어 결국에는 유사 부자(父亲与女儿) 관계로 최종 안착한다. 애초 직업이 킬러인 것을 떠올리면 예상할 수 없는 결론이지만 ‘반전’을 이야기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 《럭키》의 전략상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는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럭키》를 연출한 이계벽 감독은 유해진을 일러 이렇게 평했다. “《럭키》에 유해진이 캐스팅되지 않았다면 대체할 인물이 누가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킬러와 무명 배우를 오가는 유해진에 의해 코미디와 로맨스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순수하게 그려졌다.” 사랑스럽고 순수한 아저씨. 그래서 아재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유해진은 원톱이지만 주변의 모든 캐릭터를 살릴 줄 알고, 중년의 나이지만 젊은 배우와 호흡을 맞춰도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유해진이 아재 이상의 아재로 평가받으며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