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정보분석원장 “FATF 가입 추진에도 역점”
지난 3월11일 과천 정부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석동 금융정보분석원장(1급·52)은 무척 고무되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난해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시절 주도한 신용불량자 대책과 중소기업 대책이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대표적인 정부
혁신 사례로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정책 대상자에 대한 대규모 실태조사를 동반하는 등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으로 이른바 맞춤형 정책을 내놓았다는
상찬을 받은 것이다.
지난 2월 새 사령탑을 맞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은 2001년 11월
‘특정금융거래보고법’에 의해 설립된 자금세탁 방지 기구다. 금융 거래 시스템이 범죄에 이용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금융 건전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한국 등 각 나라 자금세탁기구는 특히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국제 공조가 강화되는 추세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재정경제부 산하 기관이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구성원도 특이하다. 총 61명 가운데
재경부 공무원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법무부(7명)·경찰청(6명)·국세청(6명)·관세청(6명)·금감위(3명) 소속 공무원과
금감원·한국은행에서 민간 전문가가 파견되어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2천만원·1만 달러
이상의 금융 거래 가운데 탈세·횡령·밀수 같은 불법 행위가 의심되는 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해야 하는데, 설립 이래 지난 2월까지 총
7천7백 건이 보고되었다. 이 가운데 현재 6천7백 건을 정밀 실사했고 1천6백70건을 검찰과 경찰, 금감위, 국세청 같은 법 집행 기관에
통보했다. 현재 수사가 종결된 6백85건 가운데 3백13건에 대해 혐의가 확정되었다.
늘 일을
몰고 다닌다는 그답게 자금 세탁 방지 기구 수장으로서도 영일이 없다. 올해 금융정보분석원이 중대한 변화를 맞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5천만원
이상의 현금 거래를 무조건 보고하도록 지난해 말 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시행은 2006년 1월이지만, 올해 무려 1천2백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보고 건수를 제대로 스크린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내년부터 금융기관에는 고객이
계좌를 열 때 개설 목적과 실소유자를 파악해야 하는 고객 주의 의무 제도가 도입되는데, 김원장은 이들과 추진 협의체를 마련해 이 제도가
안착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신분 노출을 꺼려 금융권 간의 자금 이동이나 금융기관 이용을 기피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김원장이 올해 역점을 두는 일은 1989년 G7 정상회의에서 자금 세탁에 대처하기 위해 출범한
국제기구인 FATF에 가입하는 것이다. 미국·호주·영국 등 31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이 기구 가입에 김원장이 공을 들이는 것은 국제 사회가
가입 자체를 그 나라 금융 시스템 수준으로 이해한다는 ‘명분’ 외에도 ‘실리’를 꾀하기 때문이다. 비가입국 금융기관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그동안 높은 조달 금리와 까다로운 추가 조항을 요구받는 등 불이익을 받아왔다.
금융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
관가에 따르면, 김원장만큼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공직자도 드물다. 이번 취임 때도 재경부 역사상 첫
기수 파괴 승진 인사라는 화제를 뿌렸지만, 그는 25년 공직 생활 동안 대우와 신용카드 사태 등 금융 위기로 비화할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반장이라는 구원투수로 등판하며 관치 금융 논란을 가열시키기도 했다. 2003년 신용카드 대책반장 시절 관치 시비가 불거졌을 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서 존재하므로 그 존재 의미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며 맞받아쳐, 관가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경제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조처를 취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김원장이지만, “금융정보분석원은 저공 비행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조용히 움직이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