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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로폰테 “개발 도상국에 저 가형 컴퓨터 보급할 것”

 
전세계에 ‘디지털 전도사’로 통하는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가 또 화제다. 지난 2월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100 달러짜리 랩톱 컴퓨터의 미래를 선보여 세계 지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가, 한달 뒤에는 서울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휴대전화 단순화’를 주창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휴대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성’이라며, 갈수록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멀티 미디어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가 풍미하고 있는 요즘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는 또 디지털 시대 최고의 예언가답게 ‘휴대전화 업체의 미래는 소비자에게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패러다임 개척

네그로폰테 교수의 이런 진단에 대해 휴대전화 생산업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좀더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디지털 시대의 앞날과 관련한 그의 예언이 대부분 적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가 1995년 펴낸 <이제는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책은 현재 눈부신 속도로 펼쳐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현재와 미래를 잘 짚어낸 명저로 꼽힌다. 이 책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랐고, 그 뒤 전세계 4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팔렸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 그는 범세계적인 디지털화가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를 진단하는 <지오 디지털(Geo-Digital)>이라는 책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네그로폰테는 미국 MIT에 몸 담은 1960년대 이후 컴퓨터와 인간 간의 인터페이스 문화를 연구한, 이 분야의 선구적인 개척자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주관심사는 현재 펼쳐지고 있는 디지털 혁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연구하고 설명하는 일이다.

그가 보는 현재의 세상은 <이제는 디지털이다>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원자(물질)가 아닌 비트(정보)로 가득찬 디지털 세계’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MIT의 와이즈너 전 총장과 함께 1985년 설립한 미디어랩(MediaLab)은 이런 디지털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소로 볼 수 있다. 현재 30여 명의 교수진을 갖추고 있는 미디어랩은 디지털 세상의 패러다임을 개척해 가는 최첨단 연구소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은 익히 알려진 가상 현실이나 3차원 홀로그램,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컴퓨터(werable computer) 같은 개념이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전자 종이, 흔들기만 하면 충전되는 휴대전화, 무선 인쇄 기술 등 새로운 디지털 사고를 미디어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디지털 전도사’임을 자처하는 그는,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잠자는 것말고 하루 24시간을 컴퓨터 온라인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1년 평균 48만km씩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종 강연과 행사에 참석해 디지털 혁명의 앞날을 전파하고 다닌다.

 
그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늘 따라 다니는 것이 있다. 파워북 랩톱 2대이다.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게서 TV·냉장고·자동차 등 아무 것이든 가져가도 좋지만 온라인 접속 기능만큼은 안된다. 평생을 온라인과 함께 보낸 사람으로서 지금도 온라인에 많이 의존한다”라고 밝혔다.

그의 삶 가운데 유일하게 디지털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학사 일정이나 약속 시간을 적어두는 휴대 수첩이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수첩만큼은 전자 수첩 대신 일일이 펜으로 항목을 적어 넣는 ‘종이 수첩’을 고집한다.

오늘날 인터넷을 이용하는 인구는 세계에서 약 7억명(세계 인구의 약 11%)이지만, 사용자들의 대다수는 선진국에 산다. 이런 불평등한 현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네그로폰테는 요즘 ‘어떻게 하면 개발도상국도 선진국처럼 디지털 시대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온 정열을 쏟고 있다. 그가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100달러짜리 값싼 랩톱 컴퓨터를 보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77쪽 상자 기사 참조). 그에 따르면,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으며, 빈부 격차 못지 않게 정보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그 대책으로 그가 내세운 것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인터넷 보급이다.

“인터넷 사용자 수억명 늘 것”

사실 네그로폰테의 이런 진단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인구의 19%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카타르의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인 데 비해 인터넷 사용 인구가 전체의 고작 1%인 같은 중동의 시리아는 1천1백 달러이다.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가나는 2백70달러다. 반면 인터넷 보급 인구가 67%인 미국은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5천 달러다. 네그로폰테가 지적한 대로 인터넷이 많이 보급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의 빈부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지금의 비싼 컴퓨터가 3백달러대 저가 컴퓨터로 탈바꿈하는 순간 수십억명의 새로운 인터넷 사용자가 개발도상국에서 출현할 것으로 본다. 바로 그런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그의 비전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 모든 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하는 일이 내가 새로이 할일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00 달러짜리 랩톱의 꿈
가난한 어린이들 위한 안성맞춤 교육 도구…유명 기업 지원 잇따라

개발도상국 모든 어린이들에게 랩톱 컴퓨터를 보급한다?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네그로폰테가 MIT의 동료 연구자 2명과 함께 내년까지 100달러짜리 랩톱을 개발해 개발도상국 어린이에게 1억~2억 개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늦어도 오는 9월까지 시제품, 그리고 내년 초까지는 완제품을 내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네그로폰테는 과거 세네갈, 코스타리카, 인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머무르면서 100 달러짜리 랩톱 개발 구상을 했다. 실제로 그와 부인 얼레인은 아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있는 학교 세 군데에 랩톱을 제공해 큰 교육 효과를 보았다. 그는 먹고살기에 급급한 이들 나라에서 값싼 랩톱은 해당 어린이는 물론 온 가족과 마을 그리고 이웃 모두에게 더없이 귀중한 ‘교육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문제는 현재 1천 달러를 호가하는 랩톱을 이들 어린이에게 공급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민하던 끝에 네그로폰테는 복잡한 기능을 갖춘 값비싼 랩톱이 굳이 필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100 달러짜리 랩톱이란 획기적 아이디어를 찾아낸 것이다.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값비싼 LCD 화면 대신 12인치 컬러 화면에 리눅스 등 무료 소프트웨어가 깔리게 될 이 랩톱은 저장 용량이 작고 최첨단 멀티 미디어 기능은 없지만, 컴퓨터가 수행하는 기본 기능은 갖추고 있어 어린이용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현재 네그로폰테의 이런 구상은 여기저기서 커다란 호응과 지원을 받고 있다. 세계적 인터넷 검색 업체인 구글과 칩 제조 업체인 AMD가 각각 2백만 달러를 출연하기로 했다. 또 모토롤라와 선마이크로시스템, 한국의 삼성도 지원을 검토 중이다. 휴렛패커드의 전설적인 컴퓨터 연구가인 앨런 케이와 저명한 음악가인 퀸시 존스, 세계적 록밴드 U2의 보노도 전폭 지원할 태세다.
네그로폰테는 “내 평생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최초의 사업 계획이다”라며, 기필코 100 달러짜리 랩톱의 꿈을 이루어내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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