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당’으로 굳어진 민주당, ‘명심’에 뒤바뀐 김민석과 정봉주의 운명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았던 대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선출되어 연임에 성공했다. 득표율 85.4%라는 압도적인 승리는 민주당 당대표 선거 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김대중 총재가 야당을 이끌던 시절에도 그런 득표율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많이 달라 보인다. 순도 100%의 ‘이재명당’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있는지 다른 후보를 봐주는 것도 없이 표를 싹쓸이하는가 하면 최고위원 선거도 ‘친명(親이재명)’계가 석권하도록 이 대표가 직접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 70년 역사에서 이처럼 한 지도자가 당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광경은 처음 보는 일이다. ‘이재명 일극체제’의 완성을 의미했던 그날 전당대회장에는 “이재명 대통령”을 외치는 소리만이 넘쳤다.
이재명 대표의 목표는 두말할 것 없이 2027년 대선에 재출마해 ‘이재명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당내에서는 대선 가도에 발목을 잡을 변수들은 다 제거됐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에 개의치 않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고는 당대표를 맡아 22대 총선에서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해 민주당을 명실상부한 ‘이재명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한 복권이 단행되어 ‘친문(親문재인)’계의 잠재적 경쟁자로 거명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이재명 대표의 상대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변수로 남아있기는 하다. 오는 10월에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 예정되어 있지만, 일정상 이 대표의 대선 출마를 가로막을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법원이 과연 거대야당의 유력 대선주자를 낙마시킬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는 현실적인 경험에서 생겨나는 질문이다.
최고위원 선출도 이재명 의중대로 쥐락펴락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당대표의 압도적 승리와 함께 눈길을 끈 것은 ‘친명 일색’으로 구성된 최고위원 선거 결과였다. 최고위원 선출이 이 대표 의중대로 쥐락펴락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은 7월20일 제주에서 치러진 첫 지역 순회 경선 때만 해도 4위에 그쳤다.
그러자 이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김민석 최고위원과 함께 출연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사실상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김 최고위원을 “둘째가라면 서러울 당의 전략가”라며 “우리 당이 수권정당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확고한 집권 플랜 마련에 앞장설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앞으로 대선까지 가는 길에 자신의 전략통으로 곁에 두고자 하는 의중을 읽을 수 있었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정봉주 후보의 탈락이었다. 선거 초반 선두로 올라서면서 원외 돌풍을 일으켰던 정 후보는 이재명 대표와의 갈등설이 불거지면서 6위로 처져 최고위원에서 탈락했다. 특히 자신이 주변에 ‘최고위원회의는 만장일치제다. 두고 봐라’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는 폭로로 비난이 거세지자 “‘이재명팔이’ 무리를 뿌리 뽑겠다”며 정면돌파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정 후보는 졸지에 ‘개딸’들의 공적이 되다시피 했다. 전당대회장에서는 ‘정봉주 아웃(OUT)’이라는 휴대폰 글자와 “꺼져라”라는 야유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정봉주도 사실 이재명 대표의 노선과 별 차이가 없는 강성 정치인인데, 이재명 대표를 함부로 들먹인 대가는 그렇게 냉혹했다.
자극적인 말 한마디가 선거 승부를 좌우한 것은 전현희 의원의 경우에서도 나타난다. 전 의원은 8월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담당했던 권익위원회 국장의 죽음을 두고 “김건희가 살인자”라고 외쳐 막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막말은 당내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더없는 호재였다. 전 의원은 발언 직후인 8월17일 서울 권리당원 투표에서 득표율 2위로 당선권에 재진입했고, 18일 ARS 투표에선 19.62%로 1위를 차지했다. 전 의원은 일반 여론조사와 대의원 투표에서도 2위를 차지해 결국 2위로 당선됐다. 전당대회 직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여당을 겨냥해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라고 발언해 여당의 반발을 샀던 김병주 후보도 초반 득표율 2위로 올라서며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새로 선출된 최고위원 5명은 하나같이 ‘이재명 지킴이’가 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김대중을 지켜냈듯이 이재명을 지켜내야 한다”(김민석), “이재명 곁을 지키는 수석 변호인이 되겠다”(전현희), “당원들은 저를 이재명 호위무사라고 한다”(한준호), “이재명 정부를 만들기 위해 차곡차곡 준비할 사람”(김병주), “이재명 대표에게 힘이 되는 최고위원”(이언주)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절대적 카리스마 DJ도 못 누린 ‘제왕적 당 장악’
이렇듯 최고위원 모두가 이재명 대표의 집권을 위한 참모가 될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이제 민주당에서 이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낼 사람은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의 당으로 굳어졌다. 이재명계 외에는 다른 목소리들이 존재하기 어렵게 된 광경은 민주당 역사에서 초유의 일이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를 하던 시절에도 이 정도로 하나의 목소리만이 존재한 적은 없었다. 정치 역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이재명 대표에 이르러 이 같은 제왕적 당 장악이 이루어진 광경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낯선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가 말해 주듯이 민주당은 이제 철저히 이재명 대표와 그를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에 의해 앞날이 좌우될 것이다. 합리와 균형의 미덕을 잃고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온갖 막말에 환호하는 민주당의 모습이라면 그 또한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와는 별개로 민주당에 주어진 숙제다. 윤석열 정부가 잘못한다고 ‘이재명 일극체제’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하는 정당들의 모습이다. 여당이 못하면 야당이라도 잘해야 할 텐데, 여당의 잘못을 구실로 야당이 더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또한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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