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에 무기한 발령대기…“고깃집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마련”
하루 10억 이상 적자 낸 대학병원, 기존 인력도 무급휴가 권고
서울대병원, 무기한 휴진 돌입…“취업할 수 있을까” 한숨
수도권 대학병원 간호사로 채용될 예정이던 조한결(가명·24)씨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다음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전공의 파업으로 병원이 비상운영에 들어가 신규 입사가 연기됐다”는 병원 측의 통보였다. 2월21일부터 시작된 조씨의 기다림은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원룸 계약금 70만원은 전부 날렸고, 간호사 면허증에는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백억대 적자를 낸 대학병원이 사실상 채용을 멈추면서 예비 간호사들이 갈 곳을 잃었다. 취업을 목전에 둔 간호학과 학생들도 의료대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병원에 취직하려 했던 이들은 생계 문제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경상도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할 예정이었던 한은채(23)씨도 지난해 신규 간호사 합격 통보를 받았으나, 오는 9월이 지나야 발령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한씨와 함께 합격한 예비 간호사들은 160여 명에 달하지만 아무도 입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깃집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동기들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라도의 한 대학병원에 합격한 하다은(22)씨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친구들이 안정된 직장에서 돈을 벌고 있을 때 ‘나는 무얼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좌절감에 휩싸일 때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경영난에 기존 인력도 감축…“장롱면허 될까 두려워”
이들이 수일 내로 대학병원에 채용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의료진 이탈로 진료와 수술 건수가 급감하면서 병원이 비상경영 사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인 ‘빅5’는 환자가 급감하면서 하루에 10억원 이상 적자를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병원은 의정 갈등 100일째, 기존 500억원 규모였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2배로 늘려 1000억원 규모로 만들었다.
인건비 감소를 위해 기존에 있던 간호 인력도 줄이는 분위기다. 또 다른 빅5인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은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행정직 등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일부는 희망퇴직 신청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빅5를 비롯한 대학병원들이 무기한 휴진을 결의하면서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오는 17일부터,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오는 27일부터 기약 없는 휴진에 들어간다. 이에 더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하는 18일 하루 휴진에도 적잖은 교수들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간호학과 재학생들의 불안도 커지는 상황이다. 하다은씨는 “예정대로면 서울에 있는 웬만한 병원들이 공고를 올릴 시기인데 중앙대병원 말고는 감감무소식”이라며 “간호학과 후배들이 전화가 와서 ‘어떡하나’ ‘취업이 안될 것 같다’며 걱정한다”고 전했다.
하씨는 “선배들 채용도 연기됐는데 후배들에게는 대체 언제 순서가 돌아갈지 모르겠다”며 “이러다간 간호사 면허증이 장롱면허가 될 노릇”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