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사퇴 예외 규정’ ‘의장경선 당심 20% 반영’ 당규개정안 의결
친명조직 ‘더민주혁신회의’ 앞장…“진즉 했어야” 당원도 환영 의사
‘與 이러다 패배’ 野일각 우려도…‘찐명’ 김영진 “소탐대실”
4‧10 총선의 ‘승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이 한층 더 공고화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출마 1년 전 당대표 사퇴’에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한 데 이어, 12일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는 등의 당원권 강화 방안을 담은 당규 개정도 확정했다.
이른바 ‘명심’(이 대표 의중)과 이를 받치는 ‘당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두고 야권 내부에선 손익계산이 분주하다. 윤석열 정부 독주에 대항하기 위한 ‘단일대오’가 갖춰졌다는 긍정론도 있으나, 한편에선 지난 총선 전 여당의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당 안팎뿐 아니라 친명(親이재명)계 내부에서도 ‘이재명의 민주당’의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당원이 바라고, 친명이 미는 ‘당원권 강화’
민주당은 이날 당무위원회를 열어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는 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국회의장단 후보자 및 원내대표 선거를 재적의원 투표 80%에 권리당원 투표 20%를 합산해 과반 득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전까지는 재적의원 과반 득표로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개정안은 또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반영 비율에 대한 ‘20:1 미만’ 제한 규정을 시·도당위원장 선출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권리당원 표 비중을 높였다. ‘전국대의원대회’ 명칭은 ‘전국당원대회’로 바꿨고 기존 민원국을 ‘당원주권국’으로 확대 재편해 당원 활동 관련 업무 일체를 전담시킨다.
민주당의 당원권 강화는 이 대표가 직접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당헌·당규 개정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전국지역위원장·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당원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에너지를 키우는 흐름으로 가야 한다”며 “(국회의장 후보 경선 당시) 당원과 의원의 권리가 충돌해 당원이 2만 명 탈당해 2000명밖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봐야 한다. 당원 주권, 당원 중심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31명의 당선자를 배출해 민주당 내 최대 의원 모임으로 부상한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지난 2일 국회에서 전국대회를 개최하며 당원권 강화를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으로 국회의원 중심의 퇴행적 원내정당을 거부한다”며 공직후보자 직접 선출 제도화와 지구당(지역당) 부활, 당원참여 공론토론회 상설화, 당원총회 일상화 등을 요구했다. 이 대표가 천명한 ‘당원 중심 정당’ 실현을 측면에서 지원하며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민주당 당원들도 반색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원들이 주로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진즉 이뤄졌어야 할 조치”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 “이참에 수박(겉은 민주, 속은 국민의힘을 지칭하는 은어)을 걷어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당의 주인’으로서 목소리를 낼 공간이 넓어져야 당원들의 정치적 효능감도 커질 것이란 시각이다. 9년째 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충청도 지역구의 김아무개씨(55)는 “회사로 치면 노동자 목소리를 경영과 인사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취지인데 이걸 ‘후지다’고 보는 게 ‘후진 것’”이라며 “정당을 떠나서 당원들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이들(국회의원도)도 현실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尹‧與와는 달라야”…野일각 ‘역풍’ 우려도
그러나 야권 일각에선 당의 이 같은 변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당의 주류, 당 지지층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면 총선 전 국민의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총선 패배 후 국민의힘은 민주당과는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여당은 새로운 지도부를 뽑을 전당대회에서 ‘당원 100% 투표 룰’을 해체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른바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 당 대표를 뽑고 보수 지지층에게 소구하는 공약에만 힘을 실은 결과 여당이 대패했다는 분석을 뒤늦게 일부 수용한 셈이다.
수도권 지역구의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괜히 내분으로 비춰질까 염려되어 공개비판을 못해 그렇지 최근 민주당 모습을 우려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며 “자꾸 의석수와 같은 숫자만 믿고 들뜨면 ‘정치’는 실종된다. 우리가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힘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한 초선의원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르지만, 소수의 의견이 존중받는 풍토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 일각과 친명계 사이에서도 공개적인 비토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 당무위원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안에 이의 있다”며 “‘그 누구의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 민주당’이 되어야 한다.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고 최근 당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이 대표 최측근 그룹인 7인회 멤버로 오랜 기간 이 대표 옆을 지켰던 김영진 의원은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심이 민심이라는 주장 자체는 틀렸다”며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민주당 지지율은 32%, 33% 선에서 횡보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비슷하다. 왜 그런 수준을 횡보하고 있는지를 이번에 당헌·당규를 개정한 최고위원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사그라들지 않은 가운데 당의 사당화 논란까지 발화할 시 ‘총선 허니문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지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순수한 당원과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당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인 행보는 진정한 의미에서 당원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당화 논란을 더 확대시킬 뿐이며 대선 전략에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선은 ‘기승전 중도’가 핵심이다. 중도층으로의 확장성 여부에 승패가 달렸는데 강성 당원 의견을 더 많이 들어 '축소 지향적'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