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에게 아르바이트 제안하며 산으로 유인해 살해
강진 女초등생 2명 실종 사건과도 묘하게 겹쳐
2000년과 2001년 전남 강진에서는 두 명의 초등학생이 1년 사이에 잇따라 실종된다. 2000년 6월15일 오후 동초등학교 2학년인 김성주양(9)이 먼저 행방불명됐다. 당시 성주양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후문 문방구 앞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오빠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날은 평소보다 수업이 좀 일찍 끝났다. 오후 2시30분과 50분에는 친구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오후 3시쯤 담임교사가 문방구 앞을 지날 때 성주양의 모습은 없었다.
3학년인 오빠는 수업이 끝난 후 여느 때처럼 문방구 앞에서 동생을 기다렸다. 약 1시간 정도 기다렸는데도 성주양은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1년 6월1일 이번에는 강진 중앙초등학교 1학년인 김하은양(7)이 실종된다. 하은양도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S여고 횡단보도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그렇게 하은양도 1년 전 실종된 성주양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 초등학생이 실종된 후 경찰은 탐문수사를 벌이고,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으나 지금까지 장기실종으로 남아있다.
유력한 용의자, 목매 숨진 채 발견
김하은양이 실종된 지 7년 후인 2018년 6월16일 오후 또다시 강진에서 실종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역이 발칵 뒤집힌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인 이아무개양(16)은 이날 오후 1시30분쯤 강진군 성전면의 집을 나서면서 “아빠 친구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해남 방면으로 가고 있다”는 SNS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남긴다.
오후 2시쯤 이양은 아빠 친구인 김아무개씨(51)와 한 공장에서 만나 20분쯤 있다가 김씨가 타고 온 검은색 에쿠스를 타고 공장을 빠져나갔다. 4시24분쯤 이양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지면서 연락이 끊긴다. 딸이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자 이양의 어머니는 딸 친구로부터 “아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오후 11시30분쯤 인근에 사는 김씨의 집을 찾아간다. 그는 보신탕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씨의 행동이 석연치 않았다.
그는 초인종이 울리자 자기 가족에게 “불을 켜지 말라”고 말한 후 뒷문으로 황급히 도망쳤다. 이양 부모는 곧바로 경찰에 딸의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섰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이튿날 아침 김씨가 자택 인근 철도 공사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타살 정황이 없어 자살로 판단됐다. 경찰은 김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그가 이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을 것으로 보고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다. 여기에는 헬기와 드론까지 동원됐다.
경찰은 실종 당일 오후 4시24분쯤 이양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도암면 지석리의 한 야산을 집중 수색했다. 대대적인 인원과 장비를 투입했는데도 이양의 흔적을 찾지 못해 사건은 장기화되는 듯했다. 그러다 실종 8일째인 6월24일 오후 3시쯤 매봉산 정상 부근 능선에서 체취견이 암매장된 이양의 시신을 찾아낸다. 산 정상을 넘어 50m쯤 내려간 곳으로 마을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시신은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는데 특이한 것은 머리가 1cm 정도로 짧게 깎여 있었다는 것이다. 부검 결과 이양의 몸에서는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다. 시신에 골절이나 흉기에 의한 상처가 없어 질식사일 가능성이 컸다. 이 사건은 유력 용의자인 김씨가 자살했지만 여러 정황상 그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처음부터 이양을 계획적으로 노렸다. 그는 이양을 유인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범행 일주일 전에 김씨는 우연을 가장해 학교 앞에서 이양을 만났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시켜주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 내용을 알리지 말라”는 단서를 달았다. 김씨가 이양에게 제안한 것은 ‘산에서 하는 일’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양은 실종 전날 친구에게 “내일 아르바이트를 간다. 메시지 잘 보고 있어라. SNS를 보고 있다가 위험하면 신고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위험’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아르바이트 장소가 평범하지 않은 곳이었음을 말해 준다.
가해자의 ‘특이한 성적 취향’ 등 소문 무성
이양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아르바이트에 응한 것은 거절하기 힘들 정도의 일당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김씨가 보신탕에 들어갈 약초 채취 등을 한다며 이양을 불러냈을 가능성이 컸다. 이양이 자신의 제안에 솔깃해하자 김씨는 범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한다. 범행 이틀 전인 6월14일에는 배낭과 낫, 수면유도제인 졸피뎀 등을 구입했다. 범행 당일 이양을 만나러 갈 때는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동선을 숨기기 위해 휴대전화를 강진읍에 위치한 자신의 식당에 놓고 갔다. 차량 블랙박스도 꺼놨다. 범행 장소로 이동할 때는 CCTV가 설치된 새 도로 대신 CCTV가 없는 옛 도로를 이용했다. 차량은 인적이 드문 농로에 세웠다.
김씨는 이양과 함께 매봉산으로 올라갔다. 해발 250m의 야산인 매봉산은 김씨의 고향인 지석마을 뒷산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20여 년을 살았다. 부모 묘가 이장되기 전에는 이곳에 안장돼 있었을 정도로 지형에 밝았다. 김씨는 산에 올라가면서 낫과 전기이발기 등을 챙겨 갔다. 이양은 김씨를 따라 산에 올랐지만 내려올 때는 김씨 혼자였다. 그는 산에서 내려와 승용차 트렁크에서 낫을 꺼내 창고 앞에 걸어놓았다. 이어 차량을 세차하고 이양의 옷과 신발 등 소지품을 자기 집에서 소각했다. 이런 모습은 자택 인근에 설치된 방범 CCTV에 찍혔다.
김씨는 나름 치밀하게 움직였으나 이양이 친구들에게 김씨를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리고, 자택 인근에 설치된 CCTV에 이양 어머니를 피해 도망가는 김씨의 모습이 찍히는 등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로 인해 꼬리가 잡혔다. 결국 경찰 수사망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김씨가 산에 들고 갔다 온 낫의 날과 손잡이 사이 자루에서는 이양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땀과 피부에서 나온 것으로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혈흔이 발견되지 않아 살인에 사용됐을 가능성은 낮았다. 김씨의 차량 트렁크에서는 전기이발기가 나왔다. 경찰은 이런 증거를 모두 확보하고도 시신을 찾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김씨가 이양의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갖고 산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또 정상을 넘어 가파른 야산에 시신을 매장해 바로 찾지 못했던 것이다.
경찰은 이양의 시신을 발견한 후 김씨의 범행 동기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먼저 김씨와 이양 부모의 원한 관계를 조사했으나 문제 될 만한 것이 없었다. 돈을 노린 범행도 아니었다. 김씨는 거주지 인근에서 보양식 식당을 크게 운영할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다. 이양 실종 후 부모에게 금전적인 요구가 없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가장 유력한 것은 성적인 목적이었다. 시신의 부패가 심해 성폭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평소 김씨가 성적 취향이 유별나거나 특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들에 따르면 김씨는 범행 당시 4명의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고, 이 중 한 명과 혼인신고를 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양의 시신 발견 당시 머리카락이 짧게 잘린 것도 변태적 성적 취향에 무게가 실렸다. 김씨가 졸피뎀과 전기이발기를 가지고 산에 올랐던 것으로 볼 때 정상에 다다르자 수면유도제를 이용해 혼절시킨 후 특이 행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양의 머리를 자른 시점이 범행 전인지 범행 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범행이 끝난 후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암매장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 사건은 숱한 의문을 남긴 채 유력 용의자가 사망하면서 결국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살인자의 극단 선택으로 진실도 묻혀
김씨의 범행은 초범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대담하고 치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친구의 딸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완전범죄를 자신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려 했다. 여고생을 깊은 산으로 유인한 후 살해하고 소지품을 모두 갖고 내려와 소각한 수법도 예사롭지 않다. 자칫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강진에서 실종된 김성주·김하은양 실종과도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사건 발생 시기가 ‘6월’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성주양은 ‘6월15일’, 김하은양은 ‘6월1일’, 이양은 ‘6월16일’에 각각 실종됐다.
초등학생 실종 당시 김씨의 나이는 33~34세였다. 김성주양이 실종된 강진읍 교촌리에서 김하은양이 실종된 평동리까지는 승용차로 약 7분(2.8km) 거리다. 김씨의 거주지(군동면)와 초등학생들이 실종된 장소는 10분 이내 거리다. 김씨의 고향이자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 도암면 지석리에서 초등학생들이 실종된 장소까지는 18분 이내 거리다.
김씨는 성인이 되자 강진읍으로 이사했고, 초등학생 2명이 실종될 당시에는 레미콘 기사로 일했다. 김씨는 이양을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강진 초등학생 두 명도 하교 후 행방불명됐다. 당시 김씨는 화물차를 몰고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하교할 때쯤 기다리고 있다가 길을 묻거나 “집까지 태워준다”면서 차량으로 유인했을 수도 있다.
두 초등학생과 이양이 10대 미성년자인 것도 공통점이다. 두 초등생이 실종된 후 부모에게 협박이나 금전을 요구하는 전화가 없었다. 범행의 목적이 ‘돈’은 아니었던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7~9세인 것을 감안하면 양육을 위해 납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김씨와 두 초등생을 납치한 용의자의 체격도 비슷하다. 2000년 김성주양이 실종된 후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당시 목격자들은 용의자에 대해 “나이는 20대 정도로 마른 편이며 키는 보통”이라고 기억했다. 김씨도 172cm의 보통 키에 몸무게 68kg으로 마른 편이었다.
이처럼 강진에서 일어난 세 건의 미성년 실종·살인 사건과 김씨가 묘하게 겹치고 있다. 하지만 김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진실도 영원히 묻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