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여성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 강요…일반 폭력보다 훨씬 잔인하고 강력한 분노 표출해 더욱 위험
요즘 뉴스 보기가 두렵다. 교제 후 이별을 통보한 상대를 잔혹하게 죽이는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서울 강남역 한 고층빌딩 옥상에서 20대 남성 최아무개씨(25)가 이별을 통보한 전 애인 A씨를 불러내 무참하게 살해했다, 최씨가 ‘떨어져 죽겠다’고 하자 이를 말리려던 A씨와 말다툼이 벌어졌고, 최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그녀를 죽였다.
10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현재 재판 중인 김레아(26)도 평소의 폭력성 때문에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여자친구가 어머니까지 대동하고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전 여친을 사망케 하고 그녀 어머니조차 중상을 입혀 구속되고 신상이 공개되었다.
이 외에도 거제에서는 이미 헤어진 전 애인의 집을 밤에 침입해 자고 있던 여성을 심하게 폭행해 결국 병원에서 사망케 한 사건, 전 애인에게 하룻밤에도 수백 번 문자를 보내 괴롭히고 결국 그녀를 찾아가 추락사하게 한 사건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끔찍한 교제살인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어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작년 교제살인 대상 된 여성, 450명가량
한국 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였던 남성(애인·전 애인·남편·전남편 등)에게 살해된 여성은 2023년 한 해에만 최소 138명이었고, 살해미수로 살아난 여성은 311명이었다. 한 해 거의 450명가량 여성이 교제살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3939명으로 2020년 대비 55.7% 증가했으나 2023년 구속된 건수는 2.22%에 불과했다.
교제폭력의 특수성 중 하나인 친밀한 관계 속에 있던(혹은 있는) 가해자의 회유와 협박으로 신고가 취소되거나 반의사불벌제로 범행은 대개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경남 거제에서 살해당한 여성이 죽기 전까지 11차례나 남성을 신고했으나, 매번 처벌이 불원으로 처리된 것처럼 교제폭력에 대한 처벌은 여러 요인으로 무마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범죄는 더욱 대담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게다가 교제폭력과 살인을 다루는 언론과 사회의 관심이 피해자의 무참함과 유족의 고통보다는 가해자의 신상과 살인에 이르는 맥락에 더 집중하고 있어 화제성으로만 소비되고 있다.
교제폭력은 교제 중에 일어나는 폭력과 이별 후에 일어나는 폭력을 다 포함하는데 이별 후 폭력은 스토킹이나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어서 더욱 그 범죄 안 관계의 맥락을 이해하고 특수성에 공감하는 감수성이 높아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다.
최근 일어난 교제살인들의 공통점은 상대 여성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으나 가해 남성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를 따라다니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결국 살인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번 강남역 교제살인은 철저히 계획적이었다. 사고 현장이 두 사람이 교제 시 자주 데이트 장소로 이용했던 곳이라는 것도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리를 이용한 주요한 증거다. 만나자는 상대의 요구에 응하고 싶지 않았을 그녀가 약속 장소에 나타난 이유는 ‘죽어버리겠다’는 가해자의 자해를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때는 좋아했고 믿음을 쌓아왔던 이들이었기에 상대가 자해하겠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자신과의 이별로 자책하고 절망하는 데 대한 미안함과 혹여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결과들에 책임을 느끼고 나간 자리였을 테다.
교제살인의 특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친밀하던 사람들이라 피해자의 행동반경, 생활양식, 현관문 비밀번호를 포함한 주요한 정보를 다 알고 있었다. 상대를 찾아다니고, 만나기를 종용하고, 행동을 제약하기로 그들이 마음먹었다면 피해자들은 그들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공통적으로 가해자들은 상대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이고 소유욕과 질투가 심한 사람들이라 피해자들은 교제 중에도 이들의 이런 성향으로 가스라이팅되고 괴롭힘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교제폭력은 관계 안에서 동일한 사람에 대해 지속적인 폭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교제폭력은 상대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을 이용해 자신의 소유권을 강요하며, 일반 폭력보다 훨씬 잔인하고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피해자들은 이미 ‘폭력의 사이클’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의 사이클은 긴장감 형성 단계, 갑작스러운 구타나 폭력행위, 허니문기라는 휴지기로 진행되는데 이는 피해자가 육체적·정서적 폭력에 익숙해지는 단계다. 폭력이 사이클에 들어가게 되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완전히 조종당하게 되며, 폭행을 당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더 큰 보복을 당하면 결국 도움을 청하는 것도 포기하게 된다. 교제살인 피해자들은 상대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거듭된 폭력에 굴복하거나 포기하게 되고, 저항하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가 된다.
상대가 너무 강하게 집착한다면 특히 조심해야
시작할 때 위험한 관계를 예고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상대를 만날 때 좀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상대가 집착이 너무 강하다면 조심해야 한다. 집착이 강한 사람들은 교제 초기에는 상대에게 정말 잘해 주고 깊은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를 무척 애지중지하기 때문에 신나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지만, 이런 집착이 상대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며 결국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안으로 옭아매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가 나의 의견을 존중하는지는 관계에서 무척 중요하다. 교제 후 이별은 사랑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사귀었지만 맞지 않는 두 사람이 각각 자신에게 더 맞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새로운 기회이기 때문이다.
교제폭력은 사소한 논쟁이 물리적인 폭력행위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기분에 따라 일어난다. 또 약물이나 술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이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 상실에 대한 문제이지 애정이나 심신미약 문제가 결코 아니다. 또 교제라는 관계 안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들의 지속적인 조종과 지배 중에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교제폭력은 무엇보다 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며, 스토킹 등의 범죄처럼 반의사불벌제가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 교제 중 폭력은 어떤 폭력이라도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 보복 시 무거운 가중처벌이 따른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에 형성돼야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형사공탁이나 유족보조금변제 등 금전적 회복, 범행 반성 및 자백 등이 가해자의 형량을 결정하는 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교제폭력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행동을 묶어야 한다.
가해자의 행동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폭력이 일어나면 가해자를 유치하고 구속하는 것이 필요하며, 경찰이 주시하고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교제폭력은 가해자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피해자가 알아서 피하라는 이야기는 너무나 무책임한 이야기이며 법과 경찰, 사회가 강력한 구조적인 시스템으로 지켜줘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