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료계 반발과 국민의힘 중재안 무시하고 ‘의료인 면허취소법’ 통과시켜
정작 ‘법적 대응’으로 지지율 올린 쪽은 윤석열 대통령…이재명 대표는 다시 타협안 꺼내
의과대학 정원 증원 계획에 반발해 총궐기에 나선 의사단체를 향해 정부·여당이 ‘의료면허 박탈’이란 초강경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의료면허 취소의 법적 근거인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쪽은 의료계의 반발을 뚫은 야당이다. 또 개정 의료법을 암시하며 지지율 측면에서 이득을 본 쪽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법은 야당이 통과시켰는데 정작 그 과실은 여권이 가져가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아이러니가 계속되는 형국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이는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의료인 면허취소법’으로 불렸다.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반대 집회와 단식 투쟁도 불사했다.
‘의료인 면허취소법’, 국민의힘 퇴장 속 민주당 주도로 가결
국민의힘은 전면 반대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정부와의 논의 끝에 개정안 중재안을 제시했다. 면허 취소 대상을 ‘모든 범죄’에서 ‘의료 관련 범죄 및 성범죄∙강력범죄’로 축소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거부로 당초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갔고, 지난해 4월27일 국민의힘이 단체 퇴장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통과됐다. 재석의원 177명 가운데 찬성 154명, 반대 1명, 기권 22명이었다. 국민의힘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최연숙∙김예지 의원 둘뿐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개정안은 지난해 11월부터 정상 시행됐다.
당시 의료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민주당을 두고 다수 언론은 “총선을 위한 노림수”란 분석을 내놓았다. 2021년 여론조사 때 국민 10명 중 7명이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었다. 의료계는 개정안 통과 직후 비판 성명을 쏟아냈다. 경상남도의사회는 “지금부터 민주당과 소속 의원들을 공당과 국민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그 추악한 행태가 절대 내년 총선을 넘기지 못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의협 등 13개 의료 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키며 ‘민주당 심판’을 기치로 내걸었다.
거부권 행사 안한 尹, 의사파업 제압 수단으로 의료법 활용
그러나 올해 들어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의료계는 민주당이 아니라 여권으로 타깃을 돌렸다. 그토록 반대했던 의료법 개정안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쪽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의사들의 집단 행동 움직임이 일 때부터 면허 박탈 가능성을 수차례 시사했다. 3월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국가가 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하고 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라며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하는 불법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면허 박탈의 사전 작업인 면허 정지 조치에 돌입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전공의 7000여명에 대한 미복귀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3개월 면허정지' 내용이 담긴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3월5일부터 각 전공의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집단행동 주동자에 한해 경찰 고발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의료법 개정안의 적용을 염두에 둔 첫 단계다.
전공의들이 경찰 조사 끝에 재판으로 넘겨져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개정안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정부는 굉장히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할 것”이라며 사법처리에 완강한 입장을 내비쳤다. 파업 주동자로 거론되는 주수호 의협 홍보위원장은 “정부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외쳤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 있었던 마상혁 경상남도의사회 공공의료대책위원장은 “(총선에서) 의사들의 기권표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료법 통과시키고도 지지율 떨어진 민주당, 李 "협의체 구성하자"
정부가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랐다. 한국갤럽의 3월1일 발표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9%를 기록해 20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의대 정원 확대(21%)’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게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도 전주보다 3%포인트 오른 40%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2%포인트 떨어진 33%였다. 이 와중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월4일 “의료파업 종식을 위해 여야·정부·의료계 4자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며 타협안을 제시했다. 작년 의료법 개정안 통과 시 의협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보였던 강경한 태도와 또 배치되는 행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