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셋값 34주째 상승, 왜?…입주 물량도 역대 최저치
실거주 의무 유지 가능성에 공급난 심화 우려도
서울 아파트 시장에 ‘전세대란 공포’가 다시 엄습하고 있다. 아파트 전세시장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역전세난 우려가 컸다. 하지만 최근 전세 수요가 몰리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전셋값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매물도 빠르게 감소했다. 올해의 경우 전세 공급 통로로 꼽히는 입주 물량이 역대 최저치인 데다, 실거주 의무 폐지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세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현재 34주 연속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8% 오르며 전국 평균(0.03%)을 두 배 넘게 넘어섰다. 서울은 대전(0.1%)과 함께 상승률이 가장 높게 유지되고 있다. 평균 전세 가격은 두 달 연속 3.3㎡당 2300만원을 웃돌았다. KB부동산의 ‘월간 주택 가격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3.3㎡당 2317만원을 기록했다. 작년 3월 이후 2200만원 안팎에서 유지되다 11월부터 2300만원을 넘어섰다. 2300만원을 넘어선 건 지난해 2월(2304만원) 이후 9개월 만이다.
전세 매물 1년 새 36% 감소
전세 가격이 요동친 건 고금리 부담으로 매매 수요가 전세로 옮겨간 영향이 크다. 2022년 하반기 최고 6%대까지 치솟았던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근 3~4%대로 떨어졌다. 주택경기 침체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관망세가 확산된 점도 전셋값을 자극한 요인이다. 여기에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관련 전세사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면서 아파트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 매물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4762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 5만4411건과 비교하면 36% 이상 줄어든 규모다. 같은 기간 경기와 인천 지역 매물도 각각 38.3%(6만6483건→4만1079건), 45.3%(1만5298건→8383건) 급감했다. 서울 전세수급지수도 지난해 1월 60.7에서 올 1월 93.3까지 높아졌다. 전세수급지수가 기준선인 100에 가까워지면 공급보다 세입자 수요가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일부 단지에선 매물이 부족해 전셋값이 수억원씩 반등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12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1월 9억원대에 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3억원 넘게 올랐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전용 59㎡가 이달 7억8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이곳은 지난해 1월만 해도 전셋값이 5억5000만원에서 6억원 사이였다. 최고가를 경신하는 단지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29㎡는 지난달 직전 거래보다 무려 14억원이나 오른 39억원으로 전세 최고가를 경신했다. 강남구 대치동 ‘삼성3차’ 전용 119㎡는 지난해 11월 15억원에, 같은 기간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한화꿈에그린’ 전용 84㎡는 7억원에 각각 전세 최고가 거래를 맺었다.
전세사기·금리 인하 여파로 수요 쏠림 심화
문제는 올해 입주 물량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921가구다. 이는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3만2879가구와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1만2032가구) 입주 시기가 내년으로 밀린 영향이 컸다.
시장에선 입주 물량 감소가 전세시장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입주를 앞둔 새 아파트에선 전세 물량이 대거 공급된다. 물량이 감소하면 새 집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는 전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입주 물량이 늘어날수록 전세 공급도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며 “특히 새 아파트 집주인들이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입주 기근은 2027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에서 연내 분양을 마치고 향후 4년 내 입주민을 받는 아파트 물량은 3만7564가구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2025년(2만5710가구)에 몰려 있다. 2026년과 2027년 입주는 각각 1728가구, 1867가구로 쪼그라들어 2년 연속 2000가구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나오는 입주 물량에서도 전세 공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담긴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달 임시국회와 본회의가 남아있어 해당 법안들이 극적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여야 이견으로 인해 불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수도권에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최초 입주 시작일로부터 2~5년간 실거주를 해야 한다.
실거주 의무가 유지될 경우 집주인이 전세를 들이지 못하면서 공급난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수도권 아파트는 2023년 11월 기준 72개 단지, 4만7595가구에 달한다. 서울에선 강동구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600가구)와 ‘강동헤리자이’(1299가구)가 각각 다음 달과 6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1만2000여 가구 규모 올림픽파크포레온은 11월 입주 예정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통상 신규 아파트 단지는 전세시장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한다”며 “입주 물량이 줄어들면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고 전셋값 상승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의 경우 입주 물량이 감소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은 물론 집값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