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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도발 희석시키면서 ‘후계 준비’ 이슈 부각 노려
‘핵 무력 완성’ 잘못된 그림 그리니 비상식적 장면 연출

“시간은 벌써 나를 키우고 / 세상 앞으로 이젠 나가 보라고 / 어제의 나는 내게 묻겠지 / 웃을 만큼 행복해진 것 같냐고”(가수 김필, 《그때 그 아인》)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11월18일 김정은 위원장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을 찾은 사진을 보고서 말이다. 분명 힘찬 행진가나 군가가 어울릴 법한 미사일 발사 현장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쓸쓸하게 회상하는 노래가 떠오른 건 김정은 위원장의 결핍감도 분명히 엿보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발사 현장에 딸을 대동한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량 성과가 확실했기에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왔을 확률이 높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는 이날의 미사일은 정상각도로 발사했다면 1만5000km 이상 사거리를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본토의 서부를 넘어 동부까지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한 셈이다. 자신감을 한껏 고양하는 자리에 김정은 위원장은 딸을 동반했다. 김정은 위원장 자신은 어린 시절에 경험해 보지 못한 광경을 자식에게 선물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동생 김여정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 위원장의 어머니는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정실부인이 아니었다. 어린 김정은은 김일성 살아생전에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린 김정은의 스위스 생활은 조기유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평양(북한)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서자’ 생활이기도 했다.
북한이 11월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시험발사했다.ⓒ조선중앙통신 연합

결핍감 해소 위한 ‘보상 심리’의 발현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 어린 시절 소회를 밝힌 바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 어린 김정은이 결핍의 시간을 보냈다면 최고권력자가 된 후 그 결핍감은 두 가지 심리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자신과 직계가족을 위협하는 그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공격 심리’와 자기 자식에게는 안정적인 후계 환경을 물려주면서 자신이 겪었던 결핍감을 해소해 가는 ‘보상 심리’가 그것이다. 고모부 장성택 숙청과 이복형 김정남의 살해 배후로 지목되는 일은 공격 심리의 발로다. 반면 이번에 딸의 손을 잡고 핵 무력을 완성해 가는 자리에 나선 일은 보상 심리의 발로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월 당 중앙간부학교를 찾아 “50년, 100년, 몇백 년의 후사(後嗣)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유능한 당 일꾼을 키워내라”고 주문한 바 있다. 아직 30대지만 후사를 생각하며 수백 년 지속할 백두혈통의 나라를 그리고 있다는 뜻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난 10년간 현지 지도 모습이나 발언들을 보면 그 백두혈통의 나라는 자신이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저 그런 나라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선대에 완성하지 못한 핵 무력 강화는 기본이고, 경제 발전 단계를 뛰어넘는 ‘단번 도약 구상’부터 북한의 레저 수준에 맞지 않는 마식령 스키장 건설이나 여성 화장품 마스카라 품질 향상 지도까지 하며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와는 분명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물려받은 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그리는 그림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을 내려놓으면 잘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우리나라와 국제사회가 계속 제안하고 있지만 북한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급기야 미사일 시험발사장이라는 위험한 장소에 어린 딸까지 데리고 나오는 비상식적인 장면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11월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11월20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이날 추가로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어린 딸, 부인인 리설주 여사가 나란히 걸어가며 군인들의 박수를 받는 모습ⓒ조선중앙통신 연합

‘핵 고집할수록 고립된다’는 변하지 않는 본질

김정은 위원장의 딸이 공개된 주말에 북한 노동신문은 정론을 통해 “우리 후대들의 밝은 웃음과 고운 꿈”을 위해 핵 보검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대의 ‘조선반도 비핵화’ 유훈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암시다. 이번 딸 공개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핵 무력 완성이 자신들의 가업이자 국가적 운명이며 이를 이어갈 후대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점도 상징적으로 부각했다.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라는 도발 이슈에 대한 관심을 자녀 공개 이슈로 일정 부분 분산시키고 희석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미사일 발사장을 거니는 김 위원장을 보며 《그때 그 아인》 노래 가사를 떠올린 것을 보면 관심 분산과 희석 효과도 일정 부분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후대에 핵을 물려주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국가 생존을 도모할수록 국제사회도 집요하게 이를 물고 늘어지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추가 제재 결의가 어려운 지금의 신(新)냉전 기류가 북한에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신냉전이라는 찬바람이 불수록 북한의 비정상적인 의지에 대항하기 위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결속도 강해질 것이다. 신냉전 찬바람 속에서 북한 반대편의 나라들도 더욱 밀착하고 체온을 나누며 단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강대강 국면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 자신의 자녀들이 핵을 평생 짊어지고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이 자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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