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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지배력 앞세운 ‘금융의 무기화’로 주목…위안화 ‘트리핀의 딜레마’ 깰 수 있을까
루블화 가치 전쟁 이전으로 회귀, 왜?
미국은 자국에 예치된 러시아 보유 달러를 전부 압류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전체 외환보유액은 약 6400억 달러지만, 이 중 3000억 달러는 지금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은 어떤 나라든 미국에 예치해 놓은 달러를 갑자기 찾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준 셈이다. 위험한 선택이다. 달러화 자산 압류는 미국 스스로 달러 본위제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원유를 수출하고도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한 이란의 사례도 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를 지켜본 일부 국가는 무역 대금을 달러 대신 다른 통화로 받으려고 재협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국제통화기금(IMF)은 ‘달러 우위의 은밀한 감소(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anc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중앙은행들의 외화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 71%에서 2021년에는 59%로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달러 패권의 종말론이 다시 제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 감소와 막대한 재정적자,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연준이 풀어놓은 8조 달러 역시 종말론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달러 우위 시대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역설적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인한 것도 달러의 힘, 변함없는 달러의 패권이다. 미국이 러시아를 최대한 타격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은 달러로 움직이는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달러의 지배력을 앞세운 ‘금융의 무기화’다. 전쟁 발발 이후 미국 달러의 가치는 치솟고 있다. 달러가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으면서 투자자들이 몰려든 영향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ICE 달러인덱스는 2년 만에 최고치다. 달러의 힘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의 ‘엔화’와 유럽의 ‘유로화’는 아니다. 우선 엔화 가치는 지금 6년 만에 최저치다. 엔저(低)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속도가 붙었다. 1년 전만 해도 엔-달러 환율은 108~109엔 정도였는데 3월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125엔 선을 넘어섰다. ‘유로’도 어렵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올해 초와 비교해 20% 가까이 빠졌고 2년 만의 최저치에 접근하고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미국보다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여전히 제로다. 남은 건 미국과 G2로 불리는 중국의 ‘위안화’다. 중국은 위안화를 달러의 대안으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위안화가 국제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에 협조하지 않고 있는 중국은 러시아와의 교역을 늘릴 것이고 결제는 위안화로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위안화 역시 달러를 대신하기는 어렵다. 화폐는 크게 세 가지 기능, 즉 가치 척도의 기능과 가치 저장 기능 그리고 교환 기능을 가진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안화를 보유함으로써 가치를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위안화를 사용하는 것이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것보다 다수인 데 따르는 이른바 네트워크(network) 효과를 발생시켜 거래비용을 줄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위안화 자산을 보유하고 증식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발달이 전제돼야 한다. 위안화의 자유로운 유출입이 보장돼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완전한 자본자유화를 의미한다. 지금의 중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축통화는 흔히 말하는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경제는 위축되고, 반대로 적자 상태가 계속돼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의 가치 하락을 가져와 달러화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기축통화국은 불가피하게 세계경제의 확대에 필요한 국제통화를 공급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상수지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이 이 트리핀의 딜레마를 극복하기는 힘들다.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려면 중국이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금융시장 통제를 포기하고, 대규모 무역적자를 수용해 위안화가 대량으로 해외에 흘러나가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그런 변화를 감수할 수 없다.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e-CNY)도 마찬가지다. 자본 통제와 환율 개입의 문제가 있는 한 위안화의 국제화는 빠른 진전이 어렵다. 위안화가 전 세계 외환보유액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2%에 불과하다.당분간은 달러 강세 계속될 듯
물론 국제 금융 시스템이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이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안화의 기축통화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가는 달러만이 아니라 위안화, 유로화 등 복수의 기축통화가 함께 작동하는 체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당분간은 아니다. 기축통화는 국제 금융 결제와 가치 저장에 사용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유동성과 신뢰성이 다 필요하다. 달러를 빼고 이런 요소를 모두 가진 화폐는 없다.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우위도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다. 반등은 러시아 정부가 필사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러시아 정부는 루블화 가치를 지키려고 외환시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루블화를 시장과 차단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러시아가 외화로 갚아야 하는 부채의 상환이 도래하면 루블화는 다시 압박을 받을 것이고,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외국 기업의 자산 매각과 현금 인출이 시작되면 루블화 가치는 다시 추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