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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생명 위급할 때 드러나…공적 구조 시스템 빨간불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
그러나 창녕군은 단 한 차례도 해당 가정을 방문하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방문을 자제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격상돼 보건복지부로부터 방문 자제 요청을 받아 현장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대 아동 보호를 위한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지난 2015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같은 해 12월 인천의 한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훔쳐 먹던 11세 소녀가 주인에게 발각됐다. 추운 겨울인데도 반바지에 맨발 차림이었다. 당시 또래의 평균 키에 한참 못 미치는 120.7cm, 몸무게도 4세 아이 평균인 16kg 정도에 불과했다. 알고 보니 아이는 친모(36)와 동거남(33)에 의해 빌라에 감금된 채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습 폭행을 당해 늑골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세탁실에 갇혀 있던 아이는 견디다 못해 맨발로 가스배관을 타고 외부로 탈출하면서 비로소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도 아이가 탈출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공론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도 이 사건을 계기로 각종 아동학대 예방 대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은 5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 제2, 제3의 B양이 지옥 같은 가정에 고립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의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대책이 주먹구구식이거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재혼가정은 ‘학대 사각지대’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유형에서 여러 학대가 복합적으로 이뤄진 중복 학대(47.9%)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정서 학대 23.8%, 신체 학대 14.0%, 방임 10.6% 순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의 79.7%가 친부모였다는 점이다.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고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체벌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회초리’로 상징되는 ‘사랑의 매’가 당연시 여겨졌다. 그 밑바탕에는 ‘내 자식 내 마음대로’라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현행 ‘아동학대법’에 따르면 체벌도 처벌 대상이다. 재혼가정에서 일어나는 학대의 경우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전체 비율로 보면 계부·계모가 가해자인 경우는 3.5% 정도다. 비율은 높지 않지만 학대 강도는 일반 가정과 비교해 상상을 초월한다. 때로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다. 지금까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아동학대 사건 대부분은 재혼가정에서 발생했다. 이번 충남 천안과 경남 창녕의 학대 사건도 재혼가정이다. 지난 2013년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일명 ‘칠곡 계모 사건‘을 보면 위기에 놓인 재혼가정 아이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계모 임아무개씨(35)는 의붓딸인 8세, 12세 자매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자행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 자매의 머리를 넣거나 몸을 거꾸로 세워 잠수시키는 방법으로 물고문을 했다. 며칠 동안 굶기거나 열중쉬어를 시키고 청양고추 10개를 먹였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목을 졸라 실핏줄이 터지게 하고, 계단에 발을 대고 엎드려뻗쳐 한 상태에서 밀어 넘어뜨렸다. 자매는 모든 생리적인 현상은 학교에서 해결하고 와야 했다. 만약 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소변이나 대변 묻은 휴지를 강제로 먹게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정한 다음 주어진 시간에 다 먹지 못하면 입을 찢거나 물을 대량으로 먹였다. 몸에 뜨거운 물을 붓기도 했다. 심지어 자매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도 했다. 자매 중 동생은 하루에 35번 배를 폭행당하고 복통을 호소했으나 이를 방치해 끝내 숨졌다. 친부(38)도 계모의 폭행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척 방관하거나 오히려 계모 편을 들었다. 유일하게 자매가 의지할 수 있었던 친부마저 보호막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2018년에 일어난 ‘전주 고준희양 사건’은 친부가 내연녀의 학대에 직접 가담한 경우다. 준희양의 친부(37)는 아내와 이혼한 뒤 내연녀(36)와 동거를 시작했다. 내연녀의 아들(6)도 준희가 살던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친부는 자신이 낳은 딸보다 내연녀와 그 아들을 더 아꼈다. 이어 상습적인 폭력이 시작됐다. 딸 준희가 내연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과 발길질을 일삼았다. 30cm 철자를 사용해 수시로 매질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던 준희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자 약을 주는 대신 발목과 등을 밟았다. 거듭된 폭행에 준희는 스스로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울부짖는 게 준희의 일상이었다. 친부는 바닥을 기는 준희를 무참히 발로 짓밟아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준희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친부에게 물을 달라고 했지만 외면했다. 결국 준희는 친부와 계모의 상습 폭행과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숨을 거둔다. 친부는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해 놓고 태연하게 장난감을 조립하며 그걸 SNS에 자랑했다. 더욱이 웃음을 뜻하는 ‘ㅎㅎ’나 ‘ㅋㅋ’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함으로써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였다. 내연녀와 짜고 준희가 살아 있는 것처럼 위장해 양육비 등을 수령하기도 했다. 전혀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4월 광주에서는 계부(31)가 의붓딸(12)을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후 살해했다. 친모(39)는 남편이 딸을 살해하는 차량 안에 함께 있으면서 모든 것을 지켜봤다. 심지어 딸을 죽인 남편에게 “고생했다”는 말까지 했다. 재혼가정에서 일어난 학대 사건을 보면 친부나 친모가 자녀를 보호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방관하거나 학대에 가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정이 깨진 것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따지지 않고 그 분노를 전처나 전남편의 아이에게 표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편으로는 재혼가정을 지키거나 또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순종하거나 학대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주변의 관심과 신고가 가장 절실
아동학대 사건을 초기에 발견해 구조하는 데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보호자가 가해자가 되는 특이성 때문이다. 가해자인 부모가 가정방문이나 상담전화 등을 거부할 경우 피해 아동의 안위를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제적 개입이 어렵고 아동의 생명이 치명적 위협을 당하고 나서야 노출되고 있다. 이는 당국의 관리에도 아동학대 사건이 줄어들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는 아동학대가 사회적 이슈가 된 후에야 ‘사후약방문’ 처방을 하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아동의 등교수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아동이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아동들이 학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연이어 아동학대가 터지면서 정부도 학대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학대 우려가 높은 아동을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착수하고, 학대가 발견되는 즉시 가정에서 아동을 분리하는 ‘즉각 분리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더해 아동 안전을 관리하는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경찰은 아동학대를 초기에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변의 애정 어린 ‘관심’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한다.피해 아동은 늘어나는데 쉼터는 태부족
학대 피해를 당해 가해자인 부모와 분리 조치된 아동들은 ‘학대피해아동 보호 쉼터’에서 임시로 머무를 수 있다. 이곳에는 학대 피해 아동만 입소할 수 있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해 위탁운영하고 있는 쉼터는 전국에 72곳이다. 경기 13곳, 서울·부산·대전 각 4곳 등이다. 학대 행위자 등의 차단을 위해 일반 다세대주택 등을 활용해 비공개로 운영한다. 쉼터의 정원이 한 곳당 7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전국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은 504명이다. 운영지침상 피해 아동이 3~9개월 생활할 수 있지만 더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1년 이상 생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 피해 사례가 늘어나는 것에 반해 피해 아동을 수용할 수 있는 쉼터는 절대 부족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학대를 당한 아동들은 ‘분리 조치’가 결정된 후에도 머무를 쉼터가 없어 다른 시설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장기간 머무르기는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쉼터의 재정은 지자체와 정부가 6대 4 비율로 지원한다. 상담치료사가 있는 쉼터도 있지만 재정이 부족해 상근 치료사를 두지 못하는 쉼터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학대 피해 아동들을 현실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관련 예산을 확보해 쉼터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여전히 솜방방이에 그치는 아동학대 처벌
정부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을 제정했다. 이로써 아동에게 중상해 이상의 피해를 입히거나 3차례 이상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구속 수사하고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해졌다. 그해 울산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폭행해 갈비뼈 16개를 부러트려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처벌기준을 높였다.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267건이다. 이 중 유기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12%), 집행유예는 96건(36%)이었다. 나머지는 벌금형 등에 처해졌다. 가해자 10명 중 1명만 실형을 선고받은 셈이다. 지난 2012년 전남 여수에서 9세 된 의붓딸에게 상습적인 폭행, 물고문, 자살 강요 등을 일삼은 계모(45)에게 재판부는 “학대 기간과 정도가 상식을 벗어났으며 상습적인 신체적·정서적 학대행위로 어린 아동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면서도 징역 1년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처벌이 강화된 2016년에는 생후 7개월 된 아들을 학대해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등의 상해를 입힌 친모(21)에게 법원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산후 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 등 심신미약이 감형 사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