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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사회’ 일본 실태와 일맥상통
‘한류 드라마’ 틀 깬 재미도 흥행 요인
보편적 주제 의식과 오락성에 ‘수해 장면’ 공감
《기생충》은 지난 1월10일 일본 전역에서 개봉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7일부터 1월9일까지는 도쿄와 오사카의 영화관 두 곳에서만 개봉해 일부 관객들과 만났다. 12월27일에는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무대인사와 함께 일반 관객 시사회가 2회에 걸쳐 열렸다. 시사회 표가 금세 매진될 만큼 주목받았다. 시사회에서는 봉 감독과 송강호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도 있었다. 오랜 한국영화 팬인 회사원 A씨는 티켓 오픈 시간에 맞춰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 무대인사가 있는 시사회표를 손에 넣었다. A씨는 “너무 기대를 크게 하고 간 탓이기도 했지만 긴장감 속에서 영화를 봤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섬뜩섬뜩한 감각을 느끼기도 했고 웃음, 슬픔, 공포, 혐오 등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였다. 틀림없이 재미있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작품이었다”고 감상을 밝혔다. 이제까지 봐 왔던 한국영화와 다른 ‘아우라’를 느끼기도 했다는 것이다. 《기생충》은 일본에서 개봉하며 해외 개봉 시 사용하는 제목 ‘Parasite’를 ‘파라사이토(パラサイト)’로 표기해 내걸고 ‘반지하의 가족’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기생충》보다 1년 앞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좀도둑 가족》(한국에서는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개봉)과 비교되기도 한다. 1월12일 NHK 아침 정보 방송은 개봉에 맞춰 고레에다, 봉준호 두 감독의 대담을 방송하기도 했다. 이 방송에서는 두 영화 모두 ‘빈곤에 허덕이며 사회의 한구석에서 발버둥 치는 가족을 그리고 있다’며 공통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기생충》과 《좀도둑 가족》을 전혀 별개의 영화로 본 이들도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 한국 방송에서 ‘《기생충》과 《좀도둑 가족》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곤란해하며 “어떤 종류의 범죄를 범하는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일본인 대학원생 C씨는 “《좀도둑 가족》은 가족이라는 존재 자체와 그 의미에 대한 영화로, 《기생충》은 경제적 자립·부유층을 상징하는 지상과 범죄자·채무자를 상징하는 지하 사이에 존재하는 반지하라는 설정을 통해 ‘격차사회’라는 주제를 다루는 영화로 이해했다”며 “격차사회라는 주제가 가지는 보편성 때문에 일본에서도 흥행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의 칼럼 ‘천성인어(天聲人語)’에서도 한국의 ‘금수저’ ‘흙수저’를 소개하며 ‘격차가 절망적으로 벌어진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기생충》)이 언어나 국경을 뛰어넘어 높이 평가받는 것”이라며 《기생충》이 묘사하는 현대사회의 보편성을 짚었다. 격차사회라는 말은 일본 사회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2006년 격차사회는 해마다 선정하는 ‘신어·유행어 대상’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과거 일본 사회를 묘사하던 말인 ‘1억 총 중류(中流)’가 힘을 잃고 등장한 격차사회는 소득과 교육, 직업 등 여러 분야에서 격차가 벌어져 양극화가 진행되는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무거운 주제 의식을 보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그려냈기에 흥행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천성인어’에서도 주제 의식 없이도 즐기면서 볼 수 있는 ‘격류와 같은 희비극’이라며 ‘김씨 가족과 박씨 가족이 교차하는 순간순간에 눈을 뗄 수 없다’고 영화적 오락성을 높이 평가했다. A씨도 일본에서의 흥행 이유로 오락성을 꼽았다. “여러 감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어떤 주제 의식보다도 일본인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감각과 감정을 오롯이 전달해 준 좋은 연기가 언어적 장벽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 한국 배우들을 치켜세웠다. 한국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이들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소식에 흥미를 느껴 영화관을 찾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B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이제껏 한국영화와 전혀 인연이 없었지만 평에 이끌려 《기생충》을 보러 갔다. B씨는 “예고편을 봤을 때만 해도 ‘한류 드라마’류의 스토리일 거라고 생각해 흥미가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라면 오락성도 있고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데 힌트가 되지 않을까 해서 《기생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재미있었다. 이야기 전개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심각한 장면에서도 코믹한 요소를 가미해 관객 입장에서 스트레스 없이 끝까지 볼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흥행 수익만 170억원…식지 않는 ‘기생충 열기’
‘보편적 주제 의식’ ‘오락성’은 전 세계가 《기생충》을 평가면서 손에 꼽는 것들이다. B씨도 이 요소들에 더해, 홍수로 주인공들의 반지하 집이 잠겨 체육관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장면이 일본인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는 점을 일본에서의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B씨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나 최근 몇 년 사이 태풍과 홍수 때문에 일본 각지에서 일어난 수해를 떠올렸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고집을 가지고 담아낸 비 내리는 장면을 통해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사에 남을 비 내리는 신’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기생충》에서도 비는 주제 의식을 담아내는 주요한 테마다. 이 장면이 직간접적으로 수해를 겪은 일본인들에게 울림을 준 것으로 보인다. 2월10일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을 알리는 야후 재팬의 기사에는 일본 네티즌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재미있게 봤다며 수상은 당연한 결과라는 글부터,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꼭 보러 가겠다는 댓글 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개봉 한 달째를 맞이한 기생충은 일본 관객 113만 명 이상이 관람했고 현재까지 흥행수익은 약 15억9000만 엔(약 171억원)에 달한다. 인기에 힘입어 일본 배급사는 상영관을 131개에서 190개로 확대했는데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55개 관을 더 늘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