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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경제학 카페의 사회학…한국을 말하다
“카페에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 갈 수밖에 없어 간다”

질문 하나.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2018년 기준 연간 353잔으로 세계 평균 소비량 132잔의 약 2.7배 수준이다. 같은 기간 국내 커피전문점의 매출액은 43억 달러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분석된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커피전문점 현황 및 시장여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그렇다. 한국인들은 커피를 좋아한다. 질문 둘.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즐기게 됐을까. 개화기 시절 일부 상류층만 즐기던 음료가 커피였다. 커피의 대중화는 ‘타 먹는 커피’가 이끌었다. 지금이야 진짜 원두를 로스팅해 추출한 커피가 대중화됐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 커피는 ‘타 먹는 커피’가 대세였다. ‘둘(커피) 둘(설탕) 둘(크림)’처럼 기호에 따라 다른 비율로 타 마시는 커피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유별나다 할 정도로 엄청났다. 그리고 이 유별난 사랑은 ‘커피믹스’라는 초유의 발명품으로 이어졌다. 동서식품이 1976년 등산·낚시 인구를 겨냥해 처음 선보인 커피믹스는 작은 봉지 하나에 커피와 설탕, 크림이 조합돼 있다는 편의성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끓인 물과 컵만 있으면 어디서나 편하게 마실 수 있어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도 잘 맞았다. 커피믹스가 얼마나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는지를 볼 수 있는 조사가 있다. 특허청은 2017년 ‘한국을 빛낸 발명품 10선’을 설문조사했는데 커피믹스가 5위에 선정됐다(1위 훈민정음, 2위 거북선, 3위 금속활자, 4위 온돌). 한국인은 ‘아메리카노’ 이전에 ‘커피믹스’를 좋아했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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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 한국을 빛낸 발명품 5위

질문 셋. 우리는 언제부터 한 끼 식사 값과 맞먹는 비용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시게 됐을까. 딱 언제라고 콕 찍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식사 후 100~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나 믹스커피를 마시는 일은 흔했지만, 3000~5000원에 달하는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는 일은 분명 언젠가는 낯선 일이었다. 확실한 것은 가계소득이 늘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던 2006년 전후 즈음부터 이런 모습이 본격적으로 포착되기 시작했다. 커피전문점 전성시대를 연 스타벅스가 매장 100호 점을 돌파하고 거의 매년 100개씩 매장 수를 늘리던 시기도 2004년 이후부터다. 처음부터 이런 문화가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는 한동안 ‘과소비의 상징’으로 불렸다. 2005년 과시형 소비를 일삼는 여성을 비하한 혐오 표현인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이 세 글자 뒤에는 항상 스타벅스라는 네 글자가 따라붙었다.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상징성에 대한 거부감도 한몫했다. 2004년 스타벅스가 국내 최초로 대학 캠퍼스(고려대)에 입점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일부 학생들은 불매운동을 했다. 건물 유리창을 파손하는 일까지 있었다. 지금 시선으로는 ‘세상에 이런 일이’지만, 당시에는 이 문제로 학내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질 만큼 ‘중차대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대학 내 상점에서는 외산 담배도 팔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렇듯 다방커피에서 믹스커피를 거쳐 아메리카노를 즐기게 되는 과정에는 우리 시대의 변천사가 담겨 있다. 소비하는 커피 종류가 다양해진 만큼 커피를 마시는 방법과 장소, 문화도 변화를 거듭했다. 이젠 도서관이 아닌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업무를 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카페만큼 안성맞춤인 공간도 없다. 생일날 가장 많이 주고받는 선물도 커피 쿠폰이다. 한국인들에게 이제 커피와 카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처럼 가까이 있다. 커피 소비량도 세계 평균 소비량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8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이 가장 선호하는 음료는 커피(39.6%)다. 그렇게 한국 성인들은 평균 연간 353잔의 커피를 마신다. 하루에 한 번씩은 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연간 마시는 커피 소비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2015년 291잔, 2016년 317잔, 2017년 336잔, 2018년 353잔으로 계속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 커피 소비량이 130→131→131→132잔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과 뚜렷하게 비교된다.
덩달아 커피 관련 소비지출액도 크게 늘었다. 가구의 소비지출에서 커피 관련 지출은 2014년 월 7597원에서 2018년 1만5815원으로 5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늘어난 수요에 따라 공급도 같이 늘었다. 2019년 7월 기준 전국에는 약 7만1000개의 커피전문점이 있다. 행정안전부가 커피전문점 인허가를 내준 통계를 보면 2009년 커피전문점은 2만7000개 수준이었다. 2011년에서 2016년까지 매년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2017년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증가세가 둔화된 이후에도 약 8%의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 커피 수입량도 2012년 5400톤에서 2018년 1만3300톤으로 매년 전년 대비 13%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
서울 성동구 블루보틀커피 성수점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성동구 블루보틀커피 성수점 ⓒ 시사저널 최준필

10년 새 커피전문점 2.6배 넘게 증가

커피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 따라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 수도 빠르게 늘었다. 2018년 기준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 수는 1만5000개로 외식 업종 중 한식(1만8000개)과 치킨(1만7000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매장 수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외식 프랜차이즈 매장 수 기준 상위 5개 업종(한식·치킨·커피·주점·분식) 대부분은 매장 수가 감소하고 있으나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 수는 2014년 1만1000개에서 2018년 1만5000개로 43.8%나 증가했다. 2018년 기준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334개나 된다.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브랜드는 어딜까. 이디야커피다. 2018년 기준 이디야커피의 가맹점 수는 2399개다. 4년째 1위다. 직영점만 운영하는 스타벅스의 매장 수가 1262개로 2위다. 투썸플레이스(1001개), 요거프레소(705개), 커피에 반하다(589개), 빽다방(571개) 등도 상위권에 자리했다. 반면 2015년 상위권에 위치하던 카페베네(821→354개)와 엔젤리너스(813→554개) 등은 매장 수가 크게 감소하며 순위가 하락했다. 분석기관마다 조금씩 수치는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향후 커피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내 커피 시장 규모가 2016년 5조9000억원에서 2018년 6조8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으며, 2023년에는 8조6000억원의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소매시장 규모는 2016년 이후 2조4000억원 수준에서 계속 정체돼 있는 반면, 커피전문점의 시장 규모는 2016년 3조5000억원에서 2018년 4조3000억원으로 증가해 향후 커피 시장은 커피전문점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민국에 카페가 많은 이유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커피 소비가 늘고 커피전문점이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과로사회라 카페인이 많이 필요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술 중심의 회식 문화가 카페 중심으로 바뀌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파편화된 개인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위안이 많이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다.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에 카페가 많은 건 시민들이 앉아서 쉴 곳이 없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한국인들에게 공간이, 특히 사적인 공간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쉽게 말하면, 우리에게는 거실과 같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미국은 집이 1층은 주방과 거실로 주로 이뤄져 있고, 2층에 침실 등이 있다. 1층의 중심도 TV가 있는 거실이 아닌 가족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있는 주방이다. 그렇게 가족들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한다. 애인을 집에 데리고 와도 무리가 없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공간과 내 공간이 충분히 떨어져 있다. 반면 우리는 집에 충분한 공간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집의 중심도 TV다. 부모와 함께 살든 그렇지 않든 서재처럼 나만의 공간을 확보한 집은 대한민국에 흔치 않다. 유 교수가 펴낸 책 《어디서 살 것인가》 등에 따르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욕망은 같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원하는 사적 공간의 비중도 같이 늘어난다. 우리가 사는 집에서 방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 이후 주택의 크기가 두 배 정도 커졌다. 반면 우리는 경제는 발전했지만 국토 면적이 좁아 공간적으로 제한이 있다. 그렇게 욕망과 공간의 부족이 충돌하는 상황은 시장경제 속에서 노래방, PC방, 룸살롱 등 방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수많은 ‘방’ 문화는 우리가 방을 좋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욕망과 공간적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카페 전성시대’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맞다. 우리 도시엔 앉아서 쉴 곳이 없다. 공원도 없고 거리엔 그 흔한 벤치도 별로 없다. 앉으려면 돈을 내고 카페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누구는 4100원 내고 스타벅스에 가고, 누구는 1500원짜리 빽다방에 가게 된다. 경제적 배경에 따라 머무는 공간이 달라진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서로를 이해할 공통분모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경우 가난한 월급쟁이나 백만장자나 똑같이 핫도그를 사서 센트럴파크에서 쉰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지만 비슷한 추억을 공유한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커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에는 공짜로 즐겁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공유할 추억이 없고 그래서 서로 이해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혼밥’ ‘혼술’과 같은 ‘혼◯’ 열풍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하면 ‘서글픈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어쩌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그 선택지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빠진 커피의 쌉싸름한 맛 역시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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