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업체 구독료 인상 줄다리기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

전남대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김지선(가명)씨는 2월1일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도서관장 명의로 올라온 공지사항을 보고 당황했다.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DB) 업체인 디비피아(DBPIA)에서 제공하는 논문을 앞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디비피아는 학술지 2081종, 논문 226만편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학술논문 DB업체다. 대학 측은 다른 전자자료 공개자료(Open Access) 등을 활용해 연구활동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김씨는 앞으로 감수해야 할 불편함에 막막하기만 했다. 대학이 구독을 하지 않는 학술지를 연구자가 자신의 컴퓨터로 보려면 논문을 개별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디비피아에서 국내 논문은 건당 6000원에서 9000원까지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전남대만의 일이 아니다. 현재 10개의 국공립 대학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체 무슨 상황일까. 한 마디로 정리하면 대학과 학술 논문 DB 업체 간의 갈등에 학생, 교수, 연구원들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학술 논문 DB 업체는 해마다 가파른 구독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학들은 재정 상황 악화를 이유로 학술 논문 자료 구입에 충분한 예산을 배정하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대학들과 학술 DB 업체들은 매년 심각한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 등 연구자들에게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DB)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권과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학생 등 연구자들에게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DB)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권과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국공립대도서관협의회, 디비피아 ‘보이콧’ 선언

대학들은 통상 다수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꾸려 학술 논문 DB 업체와 공동협상에 나선다. 각각의 대학들이 개별적으로 협상에 나서는 것보다 협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반대 논리로 디비피아 같은 논문 DB 업체는 컨소시엄에 참여해 협상 테이블에 앉기보다는 개별 협상을 선호한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셈이다. 최근 국공립대학도서관협의회(이하 협의회)는 디비피아에 대한 ‘보이콧’을 공식 선언했다.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제주대 도서관장 양명환 교수는 지난 1월11일 전국 국공립대학 도서관장 회의를 통해 이런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디비피아 구독 중단에 대한 호소문’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디비피아 공급업체(누리미디어)는 9% 이상의 인상률을 고수할 것이며 향후에도 인상률 타협은 없을 것임을 통보해 옴으로써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반면 디비피아는 자신들이 대학들에게 요구한 인상률이 정확히 6.4%라고 반박한다. 3년 구독조건 할인, 조기계약 할인 등 다양한 할인을 적용하면 실인상률은 9%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협의회 측이 A4 용지 1장 반 정도 분량의 호소문을 통해 밝힌 보이콧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대학 재정의 악화다. 양 교수는 “최근 대학의 구조조정 작업과 등록금 동결, 입학정원 감소 등으로 대학 재정은 악화된 반면 전자자료 구독 비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구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 역시 예산과 관련돼 있다. 협의회는 “디비피아 측의 주장은 과도한 가격 인상 요구”라면서 “건전한 지식생태계 유지를 위해 구독중단이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한다. 특히 “우리가 지불하는 구독료는 학생들의 등록금과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허투루 사용할 수 없는 예산”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이에 전남대와 군산대, 경상대 등은 각각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디비피아 구독 중단을 안내하고 있다. 경상대는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협의회에서는 디비피아의 무리한 요구에 맞서 구독 중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왔기에 우리 도서관도 동참하여 보이콧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디비피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디비피아 측은 절차적 문제를 제기한다. 협의회 성명에 참가한 국공립대 10개 대학 중 9개 대학은 지난 계약에 ‘3년 계약’을 맺었고, 당시 다년 계약에 따른 인상률 할인 혜택을 누렸다는 지적이다. 2018년 ‘3년 계약’을 맺을 당시 인상률과 구독금액을 사전에 고지 받았던 대학들이 이제 와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각 대학 도서관 예산에 부담이 되는 건 자신들과 같은 국내 논문 DB 업체가 아닌 해외 논문 구독료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김승현 누리미디어 이사는 “거점 국립대학의 해외 전자자료 지출 비중은 (대학의 지출 전체 예산의) 평균 88%”라면서 “큰 대학일수록 이 비중은 90%를 초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외 전자자료 지출 금액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같은 인상률이어도 인상되는 금액 차이가 커서 단순히 인상률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즉 해외 DB 업체들은 매년 상대적으로 낮은 대략 3% 안팎의 인상률을 대학들에게 요구하지만 그 비용은 1억원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디비피아에 따르면, 디비피아 구독을 종료한 대학들이 올해 요구받았던 인상 금액은 평균 296만원이다. 인상률 숫자가 아닌 실제 대학 측이 부담하는 금액을 고려해 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학생 ‘학습권 침해’ 지적 제기돼

이런 상황 속에서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학생, 교수, 연구자 등이다. 무엇보다 가장 경제적 약자 위치에 있는 학부·대학원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이들은 학업 및 연구와 직결된 논문 DB 구독 중단은 ‘학생의 기본권 위협’ ‘학습권 침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접촉한 많은 대학원생들은 “논문 제출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기자에게 “혹시 논문 구독을 할 수 있는 아이디를 갖고 있다면 공유해 달라”며 다급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학교와 정부를 향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디비피아 논문 구독이 중단된 학교의 한 대학원생은 “학교와 업체 모두 학생들을 볼모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업체도 업체지만 매년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는데 지금까지 학교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결국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웠다. 학생들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다른 대학원생은 “논문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환경은 지성의 전당을 지탱하는 산소 같은 것”이라면서 “공공 데이터로서 논문 접근권과 지식 생태계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대학원생들은 정부를 향해서도 공공기관 학술사업에 보다 속도를 내 실효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줄 것을 촉구했다. 연구와 논문에는 공공성이 깃들어 있는 만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학술 생태계 조성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