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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검찰, 심지어 1·2심서도 인정한 범인 파기 환송…“제3자가 범인일 수도”

부산의 장기미제사건이었던 ‘태양다방 여종업원 살인 사건’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2017년 4월 이 사건의 범인을 15년 만에 검거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력 용의자로 경찰의 추적을 받던 양아무개씨(47)였다. 1·2심에서는 양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양씨는 상고했고 대법원 확정판결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뒤집혔다. 대법원은 1월21일 상고심에서 “진범이 따로 있을 수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 경찰과 검찰 심지어 하급심에서도 양씨를 지목했는데, 대법원은 왜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먼저 사건이 일어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실종 10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

2002년 5월31일 공공근로자 조아무개씨는 부산 강서구 명지동 성창목재 앞 바다 근처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이때 해변가에 떠밀려온 마대자루 하나가 조씨의 눈에 띄었다. 그는 쓰레기인 줄 알고 자루의 끈을 풀었는데, 그 안은 다시 검은 비닐봉지로 포장돼 있었다.  겹겹이 싸인 포장을 떼어낸 뒤에야 마대 안에 있던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씨는 마지막 6장의 비닐봉지를 풀어내고는 기겁을 했다. 그 안에는 손발이 청테이프로 결박당한 채 숨져 있는 여성의 시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조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은 온몸에 수십 군데를 흉기로 찔린 참혹한 모습이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몸에는 수십 차례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우선 시신의 신원을 확인해 보니 실종신고가 된 다방 종업원 A씨(여·당시 22세)였다.  2002년 5월21일 오후 10시쯤, A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다방 문을 나서며 퇴근했다. 그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오후 11시쯤 후배 정아무개양과 통화하며 “서면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행방불명됐다. 다음 날 다방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A씨의 언니는 동생이 연락 두절되자 걱정이 됐다. 혼자 살고 있던 집을 찾아갔으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방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언니는 수소문 끝에 동생이 일하는 다방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동생의 행방을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A씨의 언니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실종된 지 9일 만인 5월30일 사상경찰서에 동생이 행방불명됐다며 실종 신고를 했다. 그리고 약 10일 후 A씨가 참혹한 시신으로 바닷가에서 발견됐던 것이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낙동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하구둑(강의 하류에 해수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둑)이었다. 문제는 범인이 시신을 유기한 장소가 확실치 않았다. 낙동강 줄기를 따라 떠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바다에서 조류를 타고 거슬러 올라온 것인지가 정확하지 않았다.  경찰은 다방 손님부터 시작해 A씨의 주변 인물에 대한 집중 탐문을 벌였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건 다방의 단골손님이었던 이아무개씨였다. 그는 A씨가 실종되던 날 함께 점심을 먹은 인물이었다.  이씨는 A씨 실종 당일 “서면에서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술을 마시고 집에 갔다”고 진술했지만, 휴대전화 기지국을 조사해 보니 거짓으로 나왔다. 더욱이 이씨는 경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거부했다. 그는 “몸도 안 좋고, 술도 덜 깨서 안 한다”고 했지만 그의 행동은 경찰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실종 당일 알리바이가 확실하지 않았다. 줄곧 A씨와 연락하던 이씨는 피해자 사망 이후 전혀 연락한 흔적이 없었다. 그에겐 특수강도 전력도 있었다. 


뒤바뀐 유력 용의자 

이런 와중에 반전이 일어난다. 경찰이 A씨의 금융거래를 확인하다가 전혀 다른 곳에서 용의자가 포착된 것이다. A씨가 실종된 다음 날 그의 통장에서 296만원이 인출된 것이 드러났다. 은행은 다방에서 불과 1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찰은 즉시 은행으로 가서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돈을 인출해 간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 남성은 이전 용의선상에 올랐던 이씨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경찰은 이 남성(이하 B씨)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경찰이 B씨의 신원파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그가 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한 지 20일쯤 지난 6월12일 이번에는 여성 용의자 2명이 피해자의 적금을 깨서 500만원을 인출해 가는 일이 있었다. 1차 때와는 달리 A씨가 일하던 다방과 멀리 떨어진 북구 덕천동에 위치한 동일한 은행이었다.  경찰은 해당 은행으로 찾아가서 CCTV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공범들의 얼굴이 확연하게 찍혀 있었다. 뚱뚱한 체형의 C씨와 보통 체형의 D씨였다. CCTV에는 이들의 역할까지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D씨가 피해자인 A씨의 신분증을 가지고 비밀번호 재발급을 신청했다. 이때 C씨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은행 청원경찰에 따르면, CCTV에는 포착되지 않았지만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고 한다. 이 남성은 B씨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C씨는 만기가 6개월 정도 남아 있던 A씨의 적금통장을 은행 창구 직원에게 주며 해지하겠다며 신분증을 제시했다. 하지만 은행 직원이 실물과 달라 “본인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자신이라고 우겨서 비밀번호 변경서류를 접수해 돈을 내줬다. 이들은 돈을 찾은 후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은 이들을 유력 용의자로 특정해 은행 CCTV에 찍힌 얼굴을 전단지에 인쇄해 ‘공개수배’했다. 하지만 이들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제보가 없었다.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 15년이 지난 후 시민의 결정적 제보가 접수됐고, 양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또 은행 현금 인출을 도와준 공범 C씨와 D씨도 붙잡았으나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한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다. 이들은 양씨와 평소 알고 지내던 주점 여종업원이었다.  경찰수사 결과 양씨는 2002년 5월21일 오후 10시쯤 다방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A씨를 납치해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마대자루에 담아 인근 바다에 유기했다. 그는 또 A씨에게 빼앗은 적금통장을 이용해 모두 2차례에 걸쳐 현금 796만원을 인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씨는 처음부터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A씨의 통장에서 예금과 적금을 인출한 것만 인정했을 뿐이다. 이것도 가방을 주웠는데 그 안에 있던 수첩 메모를 통해 비밀번호를 유추해 돈을 인출했다고 말했다. 실제 양씨가 A씨를 살해했다는 직접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지문, DNA, 흉기, 목격자 등이 나오지 않았거나 확보하지 못했다.
다방 종업원 A씨의 시신이 마대자루에 담겨 발견됐을 당시 현장 ⓒ 뉴시스
다방 종업원 A씨의 시신이 마대자루에 담겨 발견됐을 당시 현장 ⓒ 뉴시스

15년 만에 붙잡은 용의자

그러나 경찰은 양씨가 A씨의 통장을 가지고 있었고,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가장 유력한 증거라고 제시했다. 수첩에 있는 메모를 갖고 비밀번호를 유추했다기보다는 A씨를 납치 협박해 알아냈을 것이라고 봤다. 또 사건 당시 동거했던 여성의 증언도 양씨가 범인이라는 것을 뒷받침했다. 그는 “2002년 5월 당시에 마대자루를 같이 옮겨줬다. 그런데 마대자루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물컹한 것이 있었고 그리고 까만 비닐봉지가 보였다”고 말했다.  더욱이 양씨는 여러 범죄 전과가 있는데 2004년 여성들을 흉기로 위협해 청테이프로 묶고 강간하려 한 혐의 등으로 장기간 복역한 뒤 2014년 출소했다. 범행수법이 A씨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당시 양씨가 일을 그만두고 도박에 빠져 카드 연체료 등 채무가 많은 상황인 것도 불리한 정황에 속했다. 1·2심에서도 경찰이 제시한 간접증거들이 양씨를 범인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양씨를 범인으로 확신할 정도로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예금 인출과 적금 해지 사정 자체만으론 강도살인의 간접증거가 되기엔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원심 판결의 문제도 지적했다. 원심 재판부는 “A씨가 2002년 5월22일 새벽에 살해당했다”고 하면서 양씨가 A씨를 협박해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한 것은 “당일 오전”이라고 해 앞뒤가 맞지 않다고 했다. A씨의 시신이 심하게 부패돼 사망추정시간을 알 수 없었다는 것도 양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양씨 동거녀의 진술도 모순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초 동거녀는 “물컹한 마대자루를 함께 차로 옮겼다”고 했지만 이후 양씨가 마대자루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양씨 혼자 마대자루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내릴 수 있는데 범행이 탄로 날 위험을 무릅쓰고 동거녀의 도움을 왜 받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동거녀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봤다. 청테이프를 통한 살해 방식과 경제적 궁핍도 의심은 할 수 있으나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단서는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부산고법에서 재심리하게 됐다. 양씨가 아닌 제3의 인물이 범인으로 나올 경우 큰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통장 비밀번호 알아내려고 고문한 범인

경남이 고향이었던 A씨는 사상구 괘법동에서 다방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는 알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매달 100만원 이상을 저축했다. 적금도 꼬박꼬박 넣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돈 벌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 ‘멋진 셰프’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한순간에 짓밟히고 말았다.  A씨는 항상 통장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에게 통장은 전 재산이자 자신의 꿈을 이룰 밑천이었다. 어쩌면 살아가는 의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인은 A씨의 이런 상황을 알고 계획적으로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  A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모습은 참혹했다. 손과 발이 결박된 채 몸에는 총 40개의 자창(찔림)이 있었고, 이 중 2~3개가 치명상을 입힌 것으로 나왔다. 범죄심리학자들은 범인이 피해자를 심하게 고문했고, 그 일환으로 수많은 자창이 생겼다고 판단했다. 성폭행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범인의 목적은 ‘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A씨는 범인에게 납치 감금된 상황에서도 순순히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다급해진 범인은 고문을 통해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다 A씨의 몸에 수많은 자창을 낸 것으로 보인다. 가슴 흉복부 정면에 다발성 자창이 있었는데, 이것은 제압된 상태에서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한 상처들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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