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기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
검찰이 SK디스커버리(구 SK케미칼)와 애경산업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다시 고발하게 된 배경은.
“환경부 산하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지금까지 신청 및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6210명이다. 이 중 사망자가 1359명, 생존자가 2851명이다. 공식적인 수치일 뿐 피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더욱 많고,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했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을 공급한 SK케미칼은 책임을 부인하고 사과나 보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만들어 공급한 원료 물질이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원료를 공급했다고 볼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해 고발장을 제출했다.”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에 대한 조사 자료가 쌓인 것이 있나.
“최근 발표된 국내 논문에서 CMIT와 MIT를 임신한 쥐에게 투여한 뒤, 사산에 대한 영향을 살펴본 연구를 통해 이 성분들이 폐를 통해 전신 혈관계 및 태반으로 이동이 이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은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쌍둥이 자매의 병증이 가습기살균제 폐질환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공정위도 작년 2월 CMIT와 MIT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가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전에는 독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결과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입증할 만한 자료와 전문가들의 증언도 많아진 상황이다.”
환경부도 CMIT와 MIT의 독성을 인정했는데.
“작년 10월 환경부 종합감사에서 박천규 차관이 직접 CMIT와 MIT로 인한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CMIT?MIT 함유제품 단독 사용자에게서도 PHMG로 인한 피해자와 동일한 특이적 질환이 나타났기 때문에 해당 기업 가해자의 폐손상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정부가 피해를 공식 인정한 만큼 SK와 애경도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판정기준의 문제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는데.
“과거 판정 기준은 폐섬유화뿐이었다. 폐섬유화를 기준으로 1~4단계로 나뉘었다. 이제는 피해로 인정되는 질환이 늘었다. 폐렴, 기관지 확장증, 천식 등도 인정됐고 앞으로 많은 질병이 인정될 것이다. 질환별 판정 기준이 새롭게 생겨야 한다.”
SK케미칼은 동물실험 결과 유해성 입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동물실험은 CMIT와 MIT가 폐섬유화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것이다. 다른 인정된 질환들이 많은 만큼, 그 실험은 모든 질환에 대한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동물실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해당 실험에서 독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얘기다.”
SK케미칼 측이 피해자들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데.
“10명의 피해자들을 SK케미칼과 애경이 직접 접촉하고 있다. SK케미칼은 계속 ‘조정위원회’ 얘기를 하면서 ‘지원’을 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배상이나 보상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원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인도적인, 도덕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지원을 하겠다며 피해자들을 ‘물밑 작업’하고 있다. 스스로 범죄 행위를 자인하는 것이다. 국감 전에도 김철 SK케미칼 대표는 생색내기로 피해자들을 만났다. 그럼에도 사과는 전혀 없었다. 피해자 수가 어마무시하게 많은 사건인데 합의해 면책을 받고 싶은 것이다.”
사업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환경보건법 개정안이 2019년 6월부터 시행되게 됐는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나.
“환경부조차 법 적용이 될지 여부에 대해 모른다. 법조인들에게 물어봐서 피해자들에게 적용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에 적용될 경우 소급입법이 되는 것이라 회의적으로 본다. 개정된 환경보건법은 가습기살균제 등 환경오염 사고로 인한 환경성 질환을 일으킨 사업자가 고의성이나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 피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하는 것으로 개정됐지만, 3배 이내이기 때문에 1배일 수도, 0.5배일 수도 있다. 생색내기 법안이다.”
집단소송제 확대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현재는 기업들의 반대로 증권과 관련된 집단소송제만 허용되고 있다. 소송이 남용돼 기업의 경제 활동을 침해할 것이라고 했는데, 증권과 관련된 집단소송제도 4건에 불과하다.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집단소송제와 입증책임전환, 징벌적 손해배상 3가지가 한 세트로 이뤄져야 한다. 입증 책임이 원고에게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 독성 검사에 드는 수억원의 돈을 피해자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나. 대기업은 몇십억을 대형 로펌에 주고 결과를 조작하기까지 한다. 소비자가 하자가 있는 물건을 써서 피해를 봤다면, 물건을 제작한 기업의 손을 떠나기 전에 하자가 없었다는 것을 기업이 입증하는 것이 맞다. 대법원 판례 역시 하자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추세다. 집단소송제를 보장하는 해외 사례처럼 이 3가지가 이뤄져야 소비자를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다.”
피해자 지원과 관련해 남은 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은.
“판정 기준이 늘어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면 분담금을 증액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피해를 인정할 수단이 법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 특별법 개정이필요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확실히 이번 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또 지금까지와 달리 유해성을 입증할 자료가 갖춰진 상황이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피해 기준이 늘어난 만큼, 피해자들의 소송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