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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펴낸 정신과 전문의 박한선씨

“아침에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저녁에는 어느새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있다. 달콤한 딸기 케이크까지 해치워 버리고는 이내 후회를 다락같이 한다. 의지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사람들도 식욕에는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만다. 원래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라고 변명해도 될까? 늘 굶주림에 시달리던 인류의 몸과 마음은 다음과 같이 진화했다. 첫째, 우리의 마음은 달고 기름진 것을 좋아하도록 적응했다. 열매나 꿀, 그리고 다른 동물의 고기 등인데, 모두 양질의 에너지원이다. 인간은 육즙이 흐르는 고기와 달콤한 열매를 좋아한다. 과거 조상들이 생각하는 파라다이스는 바로 이런 음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둘째, 우리의 몸은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적응했다. 이를 절약 유전자 가설이라고 한다. 섭취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잉여 에너지가 들어오면, 차곡차곡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한다. 내일은 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비가 우수한 자동차다.”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박한선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 252쪽 | 1만4000원 ⓒ 휴머니스트 제공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박한선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 252쪽 | 1만4000원 ⓒ 휴머니스트 제공

인류 진화의 다양한 조건 고려해 마음의 비밀 탐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 및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인류가 정신장애를 앓는 원인에 대해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는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가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펴냈다. 이 책은 신경인류학의 관점에서 우리가 왜 불완전하게 진화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지 이야기한다.  “인간의 여러 행동이나 정서, 인지, 관계 등 다양한 정신적 형질은 진화적 산물인 동시에 주변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했던 생태적 압력의 결과다. 따라서 매일매일 우리가 경험하는 정서적 고통, 인지적 고민, 대인 갈등 등을 긴 진화사적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죄 없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은 아니다. 사실 책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지나가다 딱 한 번 나온다. 다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대표되는 우리의 선조가 험난한 자연환경과 복잡한 사회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해 온 진화적 결과물이 바로 현대인의 정신적 활동의 기저를 이룬다는 뜻이다.” 인간 마음의 비합리성을 설명해 보려고 심리학, 철학, 종교가 학문으로 발달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하나가 더 얹어졌다. 바로 진화론이다. 아무리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발달한 종족이라고 해도, 그 뿌리를 캐 올라가면 침팬지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고, 거기서부터 쌓인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몸과 마음 깊숙이 남아 있다 여전히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박씨는 신경인류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렇다면 신경인류학은 마음에 관해 무엇을 이야기해 줄까? 인류 진화의 기나긴 시간과 다양한 사회적·생태적 조건을 고려해 마음의 비밀을 탐구하는 신경인류학의 특성은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것을 넘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한다. 예컨대 ‘좋아요’를 더 많이 받으려고 SNS에 집착하는 인간의 심리는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는 개체가 번식상 이득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진화론적 가설로 설명된다. 박씨는 문명사회에서도 사회적 관심은 ‘여론’으로 이어져 중요한 결정을 좌우하므로 현대인 역시 여전히 타인의 관심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진화학자 폴 길버트에 따르면, 인간 사회의 주된 힘은 자원 확보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 확보 능력이다. 즉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는 사람이 직접적인 번식상의 이득을 얻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우리의 마음은 이러한 사회적 관심 확보에 맞도록 빚어져 왔다는 것이다. 인간이 ‘관심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는 오랜 세월 동안 타인의 관심을 끌고, 또 관심을 주는 방식으로 적응해 왔다. 관심을 추구하는 것도, 관심을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것도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밥을 먹지 못하면 배가 고픈 것과 같은 이치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선조들은 아마 자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 뇌와 마음의 진화를 다학제적으로 접근해 해명하려는 신경인류학의 시선은 박씨에게 마음의 다양한 병리적 현상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통찰과 지식을 제공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겪은 임상 경험에 신경인류학자로서 찾은 인간 마음의 진화적·문화적 설명을 더해 현대인이 경험하는 마음의 고통을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며 책을 썼다.

 
“고통, 동반자로 다스려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야”

“마음의 고통에 시달릴 때마다 우리는 그 원인을 주변에서 얼른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다. 연인이나 가족 탓을 하거나, 자신이 속한 학교나 직장을 비난하곤 한다. 더 나아가서 사회나 국가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반대로 나약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린 시절에 사랑을 받지 못해 그렇다면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 있는 고통은 종종 진정한 고통이 아니라 적응을 위한 불가피한 진화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움과 질투, 우울, 불안 등 감정적 고통, 어리석고 서툰 판단과 결정, 끊이지 않는 대인 갈등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박씨는 마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마음의 고통이 우리 삶을 좀 더 건강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필요악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마음의 고통에 순순히 굴복하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서툴고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아예 지워버릴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인생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을 폭주하는 본성에 넘겨주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어쩔 수 없는 동반자로 인식하고, 잘 다스려서 의미 있는 삶의 경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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