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이재명·안희정, 줄줄이 재판 앞두고 있어
재판 결과 두고 ‘정치적 해석’ 가능…여권 예의주시 중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보수 인사들만이 검찰의 표적이 된 것은 아니다. ‘거물급’ 진보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안·이·김’(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이 잇따라 검찰 포토라인에 서면서, 이들의 재판 향배를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의 경쟁자였고 차기 민주당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됐던 정치인들을 수사한다는 것이 검찰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검찰과 사법부 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까지 전개되면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의 정치인 수사가 삼중고(三重苦)에 빠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여권 ‘대권 잠룡’ 3인방, 줄줄이 재판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안-이-박-김의 가설’(또는 음모론)이 흘러나왔다. 대권 잠룡들의 수난사로도 불리는 이 가설은 ‘안이박’(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시장)이 잇따라 곤경에 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김’을 두고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거론됐다. 풍문처럼 돌았지만 실제 이들 중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는 검찰수사의 타깃이 됐고, 현재까지 검찰과 각각의 혐의를 두고 샅바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여권 정치인들과의 싸움에서 검찰은 다소 불리한 형국에 놓인 모양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해외 출장지인 러시아, 스위스, 서울 등에서 전 수행비서 김아무개씨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 등을 저지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앞서 1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증거 판단 등 심리가 미진했다”며 항소했다. 검찰은 “심리가 미진해 피해자에게도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했다”며 법원의 판단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1월9일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강제추행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며 1심 때와 같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당초 예정대로 오는 2월1일 안 전 지사에 대해 선고할 계획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1심의 결과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경수 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 무렵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당선 등을 위해 댓글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로 기소됐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12월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 지사의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은 선거를 위해서라면 사조직을 동원할 수 있고 사적 요구를 들어줘 공직을 거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일탈된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1심 선고가 오는 1월25일로 예정돼 있는 가운데, 김 지사는 1월8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이 1심 선고 과정에도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무죄를 확신했다.
이재명 지사는 ‘친형 강제입원’ ‘대장동 개발업적 과장’ ‘검사 사칭’ 등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지난해 12월11일 불구속 기소됐다.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 무효가 된다. 재판부는 1월10일 열린 첫 공판 때부터 비교적 쟁점이 적은 대장동 개발업적 과장 사건에 대해 먼저 심리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선거범에 대한) 1심 판결 선고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돼 있어 1심 재판은 오는 6월10일까지 진행될 전망이다.
팬덤(fandom)을 형성하고 있는 유명 정치인과 법리 다툼을 벌이는 게 검찰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사를 진행하며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봐주기 수사’와 ‘무리한 수사’라는 극단의 평가가 오갈 수 있어서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같은 공인이라도 연예인과 정치인 수사는 검찰이 느끼는 압박감이 다르다”며 “외압이 오지 않더라도 수많은 지지자를 껴안고 있는 정치인을 상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매 공판마다 오고 가는 얘기들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탓에 일반 재판에 비해 수 배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검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극단을 오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현 정권에서 진보 정치인 3명과 다퉈야 하는 검찰의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치인과의 법리 싸움, 어려울 수밖에 없어”
일각에서는 안 전 지사 재판과 같이, 검찰이 모든 정치인과의 재판에서 ‘연패’를 거듭할 경우 검찰과 사법부 간의 불신(不信)이 극에 달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검찰이 진행하는 ‘사법농단’ 수사를 두고 법원 내에서는 검찰에 대한 불만이 잔뜩 고조돼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검찰 내에서도 감지하고 있는 터라, 정당한 재판 결과를 두고도 정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야권의 한 국회의원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정치인의 재판은 다양한 해석과 루머,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같은 혐의라고 해도 일반 시민 A와 유력 정치인 B의 재판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검찰과 사법부가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다르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사법부와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믿지만, 과연 두 조직이 서로를 그렇게(공정하게) 볼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또 다른 정치인들의 수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앞서 검찰은 1월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추가기소하면서 정치인들이 판결 등과 관련된 청탁을 한 사실을 공소사실에 담았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관련된 재판에 대한 청탁을 받고, 이를 담당 법관에게 전달하거나 보고서를 작성케 했다고 보고 있다. 여권에서는 최근 법원 분위기가 여권 정치인들 관련 사건으로 불똥이 튈까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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