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경기침체·인구감소 ‘3중고’ 시달려
전문가들 “지방 맞춤형 정책 시급”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와 광역교통망 개선방안 발표 등으로 널뛰던 서울 집값은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지방은 하락세를 넘어 빈사 상태에 빠진 모습이다. 여기에 지역산업 침체가 맞물리면서 집값 하락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정부의 기존 기조가 유지되고 공급과잉까지 겹치면서 지방 주택경기 침체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2018년 전국 부동산 시장은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12월까지 서울 아파트값의 누적상승률은 8.22%다. 이는 지난 2006년(23.46%) 이후 12년 만에 가장 큰 상승률이다. 반면 지방 아파트값은 같은 기간 3.09% 떨어졌다. 지난 2016년(-0.28) 이후 3년 연속 하락세를 나타낸 셈이다. 입주물량 부담, 인구 감소, 지역경기 침체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서울 오를 때 지방은 고꾸라져
지방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 1차적인 이유로는 과잉 공급된 입주물량이 꼽힌다. 지방은 2010년대 초반 주택경기 호조에 힘입어 주택개발 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2017년 21만705가구, 2018년에도 22만5600가구가 입주했다. 특히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의 올해 입주물량은 1990년대 이후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방 주택시장의 침체를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입주물량 증가와 함께 인구가 정체되면서 수요가 줄어든 점도 지방 주택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 지역은 신규 입주물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충청과 제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인구가 감소하거나 정체되고 있다. 신규 아파트 공급 증가와 함께 주택수요의 기초인 인구마저 둔화세를 보이면서 기타 지방 주택시장 침체를 가중시켰다.
여기에 더해 지방에 위치한 기반산업 붕괴로 경기침체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등에 의존하던 경상권이 직격타를 맞았다. 조선에 이어 자동차 산업마저 위축된 울산의 경우 지난해 아파트값 변동률(-8.85%)이 지방 시·도 중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2018년 (9000가구)에 이어 올해도 최근 10년래 가장 많은 물량인 1만1000가구 입주가 예정되면서 당분간 회복 기조로 전환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거제·창원·포항·구미 등 기타 지방 역시 최대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들 지역의 경우 기반산업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주택시장 회복 가능성이 사라진 상황이다. 특히 거제의 경우 조선업 부진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인구마저 감소하면서 지난해 주택 매매가격이 10.2% 떨어지며 시·군·구 단위에서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지방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주택가격뿐만 아니라 미분양 물량도 상당하다. 2018년 11월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 6만122가구 중에서 지방이 5만3622가구나 차지했다. 특히 지방 미분양 물량은 1년 새 7179가구 늘어났다. 수도권에서 3694가구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 전체 미분양 물량 중 악성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1만5711가구)은 지방(1만3146가구)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과거 미분양 아파트와 입주물량 추이를 보면 입주물량 증가가 최고점에 도달한 후 미분양이 본격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19년에 미분양 아파트 적체가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앞으로도 지방 주택경기가 회복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지방 주택시장은 대구·광주광역시 등 일부 투자수요가 몰리는 곳을 제외하고는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올해 아파트 입주물량이 2018년과 비슷하거나 증가하는 부산·울산·경남 등의 경우 집값 하락과 전셋값 하락에 따른 ‘깡통주택’과 ‘깡통전세’가 증가하면서 무주택 세입자들의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은 자체 지역경제 위축에다 정부 규제로 서울의 원정투자도 감소함에 따라 집값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공급물량이 몰린 곳은 전세금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등 무주택 세입자들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유로 부동산전문 리서치업체들은 지방 부동산 전망을 어둡게 내다보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열린 ‘2019년 주택 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지방은 2%, 수도권은 0.2%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2019년 KB부동산 보고서’에서도 부동산 시장 전문가 87.5%가 지방 집값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연이은 부동산 대책의 초점이 서울 등 수도권에 맞춰져 지방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올해 광주와 대구를 빼면 지방 부동산은 그야말로 침체 일로를 걸었다”면서 “정부가 강남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각종 규제가 맷집이 약한 지방 부동산 시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부동산 규제 지방으로 옮겨갈지 주목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상황이 다르고 지방도 광역시와 여타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다른 만큼 주택정책을 개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지방 아파트는 이미 3년째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지방 공급물량에 대한 면밀한 수급분석을 실시하고 시장을 점검해 미입주 리스크가 커지지 않도록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방 부동산 규제를 따로 관리할지는 미지수다. 자칫 현 정권이 줄곧 강조하고 있는 ‘집값 안정화’라는 정책 일관성에 엇박자를 낼 수 있어서다. 과거 부동산 규제 완화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진행된 이후 지방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기대감이 낮은 이유다. 서동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부동산 책임연구원은 “최근 경착륙이 우려되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과거에도 지방 주택시장이 침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수도권 지역의 투기과열지구 해제는 수도권 경기침체 이후에나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