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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블로그·SNS에 세금 쓰고도 정작 운영 안 해
이 의원 “정치적 상황 때문에 개설 미룬 것” 해명

최근 2년 동안 2100여만원의 세금을 블로그와 SNS 등에 썼다고 밝힌 이정현 의원(무소속)이 현재 이를 운영하지 않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으로선 세금이 올바르게 쓰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된 셈이다. 

국회의원은 의정보고서 발행이나 문자 발송, 홈페이지 제작 등에 '정책자료발간 홍보물유인비(이하 홍보물유인비)’를 쓸 수 있다. 이 비용을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500만원 이상 쓴 20대 국회의원들의 지출 내역을 시사저널이 전수 조사했다. 해당 자료는 뉴스타파가 ‘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행정소송을 한 끝에 입수, 지난 12월 공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이정현 의원은 2016년 홈페이지(블로그, 페이스북, 유튜브)를 제작·관리하는 데 홍보물유인비 805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엔 같은 내용으로 1300만원을 썼다. 국회의원은 홍보물유인비 명목으로 1인당 연간 최대 1300만원(2019년부터 1200만원)을 쓸 수 있다. 이는 의원실에서 청구서와 증빙서류를 내면 국회사무처가 의원 명의 통장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집행된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2018년 12월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재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2018년 12월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재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견적서만 남기고 사라진 홈페이지

이 의원이 낸 증빙서류는 세금계산서와 홈페이지 작업의 ‘견적서’다. 견적서는 말 그대로 계약의 진행에 앞서 예상 비용을 기록한 문서다. 2016년 11월30일과 2017년 12월5일에 각각 작성됐다. 즉 이날 이후 견적서에 맞춰 작업을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 의원의 블로그는 2017년 초 이미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블로그 디자인에 2년 동안 총 1040만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 무엇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셈이다. 기자가 조사한 다른 의원들은 모두 현재 공식사이트 또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정현 의원이 정책자료발간 홍보물유인비 청구를 위해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홈페이지 작업에 따른 견적서 Ⓒ 뉴스타파
이정현 의원이 정책자료발간 홍보물유인비 청구를 위해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홈페이지 작업에 따른 견적서 Ⓒ 뉴스타파

 

이 의원은 2017년 이전엔 블로그를 운영했다고 한다. 미국 비영리단체 인터넷 아카이브는 전 세계 홈페이지의 과거 모습을 기록하는 ‘웨이백 머신’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이 의원의 블로그 모습은 2014년 8월 처음 등장했다. 이 의원이 2014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다음 달이다. 또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2016년에 블로그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걸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블로그 주소(blog.naver.com/jhlee_office)에 접속하면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란 글귀만 뜬다. 

그 외에 이 의원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SNS 등에도 2년 동안 1065만원을 썼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블로그와 같이 폐쇄된 상태다. 유튜브는 2017년 1월 영상을 끝으로 올라와있는 콘텐츠가 없다. 

 

이정현 의원 블로그(blog.naver.com/jhlee_office)에 접속하면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란 글귀만 뜬다. Ⓒ 블로그 캡처

 

 
외주업체는 이 의원 지역구 소재

이 의원이 홈페이지 제작·관리를 맡긴 외주업체는 ‘오아시스’란 홈페이지 제작업체다. 이곳의 장아무개 대표는 기자에게 “몇 년 전에 맡은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오아시스가 낸 견적서의 작성 일자는 약 1년 전인 2017년 12월5일이다. 장 대표는 “(견적서를 쓰기) 예전부터 2017년 11월까지 작업을 했고 계약금은 사정이 있어서 나중에 받았다”고 했다. 다만 “사정이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보통 홈페이지 제작업체들은 맡았던 작업을 모은 포트폴리오를 공개한다. 홍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도 자사 홈페이지에 이를 올려뒀다. 그런데 이 의원과 관련된 작업은 없었다. 이에 관해 장 대표는 “(회사 주소가) 이정현 의원 지역구이다 보니 정서상 좀 그렇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오아시스는 이 의원 지역구인 전남 순천에 사업소를 두고 있다. 장 대표에게 ‘작업 당시 블로그나 페이스북의 화면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의원실에서 폐기해달라고 요청해 지금은 없다”고 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홍보물유인비는 해가 바뀌면 못 쓰기 때문에 의원들이 대개 연말에 몰아서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홍보 작업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상 비용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검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결과가 나온 뒤에도 검증이 꼼꼼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의원들이 홍보물유인비를 의정보고서 발행에 썼을 경우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고, 문자 발송에 쓰면 그 내역을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홈페이지 제작에 썼을 때는 증빙서류를 확인하지만, 만들어진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보진 않는다”고 했다. 홈페이지 관련 작업이 세금으로 조성된 홍보물유인비를 빼돌리는 창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셈이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개설 미뤄져”

이 의원은 12월31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2017년에 개설하기로 했는데 여러 정치적 상황 때문에 계속 미뤄졌다”며 “(대금 결제 등) 금전적인 부분은 내가 직접 관리하지 않아 잘 모른다”고 했다. 오아시스 장 대표에 관해선 “선거 때 나를 도와준 사람”이라며 “그 이상의 사적인 관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연하 좋은예산센터 국장은 “실제로 만들어둔 홈페이지를 개인적 이유로 공개하지 않을 수는 있다”며 “다만 대체 어떤 이유이기에 2년 가까이 공개하지 않고 있을까 하는 의심은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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