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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진짜 잘한 선택 같아.” 31살 직장인 최미주씨(가명·여)는 얼마 전 엄마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느 30대 신혼부부가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세계 일주에 나선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할 줄 알았던 엄마는 호평을 쏟아냈다.

엄마는 미주씨가 취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극성맘’이었다. 미주씨와 동생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따가워지도록 했다. 그랬던 엄마가 최근 들어 많이 달라졌다. 미주씨는 “엄마가 자식들을 어느 정도 다 키워놓고 나니 옥죄던 것들에서 해방된 것 같다”며 “이제 악착같이 노력해서 남에게 인정받는 것보다는 스스로 행복한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미주씨 생각도 같다. 돈이 모이면 자기계발보다는 여행 등 여가생활에 아낌없이 쓴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걸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여기지 않는다.



굴곡진 1980년대, 그래도 가끔은 향수의 대상

30년 전, 엄마가 미주씨 나이였을 때는 어땠을까. 1988년으로 돌아가 보자.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이 두 명 이상은 기본으로 낳던 시절, 각 동네에선 거의 모두가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했다. 건국 이래 최대 행사인 ‘88 서울 올림픽’이 열렸고, 나라 경제는 고속 성장기였다. 사람들은 ‘나도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실제로 찢어지게 가난하던 1960~70년대에 비해 급격히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있었다. 직장에서 주는 월급이 좀 적어도 가족 부양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행복의 분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포스터 ⓒ tvN

 

이 프로그램의 소개 글은 그 시대의 행복을 이렇게 설명한다. ‘월급날 아버지가 사 오던 누런 통닭 봉투. 이불 깊숙이 아버지의 밥공기를 넣어 놓던 어머니. 온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보던 한 지붕 세 가족. 앞집·옆집·뒷집 너나없이 나누고 살았던 골목 이웃들을 기억한다. 지나온 추억은 아련히 떠올라 밤잠을 뒤척이게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발판이 된다.’

한편 《응답하라 1988》은 2015년 방영 당시 모순된 1980년대 사회상은 외면하고 좋은 면만 그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1980년대 서민의 삶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군사 정권의 폭압적인 통제 속에서 인권은 심심찮게 유린 당했다. 국민의 삶엔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이 침투해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방해했다. 사회 전반에 ‘뒷돈’이 만연하고 불법·탈법으로 부를 일구는 데는 서민·재벌 할 것 없었다. 입시 지옥은 갈수록 심해지고 학벌·재산·혼인 등에 따른 계급사회가 심화하는 시기였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콘텐츠, 영화 《​박하사탕》은 《​응답하라 1988》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표정의 주인공을 조명한다. 주인공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군인으로, 1984~87년 형사로 엄혹한 1980년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점점 자기 본모습을 잃어간다. 이어 1999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기차 철로 위에 서서 외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유명한 이 대사는 주인공이 순수했던 1979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 대학 졸업생들 뒤로 월세 전단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응답하라 2018'을 외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어떨까. 1980년대의 경우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사람들이라도 있다. ‘2018년’이 30년 뒤인 2048년에 ‘응답하라’는 소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나의 불행을 물려주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국의 2010~15년 평균 합계출산율은 1.3명으로 세계 198개국 중 196위였다. 전 세계(2.5명), 아시아·태평양(2.2명), 유럽(2명)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엔 역대 최저인 1.05명이었는데, 올해는 1명대 사수도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가임기 여성(15~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가 1명도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출산에 영향을 주는 혼인 건수 역시 감소 추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대라면 열 가지도 제시할 수 있는 요즘 젊은 세대다. 결혼 정보회사 듀오의 2018 출산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 남녀 10명 중 2명꼴로 결혼 후 출산 계획이 없다. 듀오는 보고서 작성을 위해 지난해 11월6일부터 20일까지 전국 25~39세 미혼남녀 총 1000명(남성 489명·여성 51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들은 저출산의 원인으로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29.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28.5%), ‘결혼의 지연과 기피 의식’(14.9%), ‘실효성 없는 국가 출산 정책’(9.7%) 등의 대답이 다음으로 많이 나왔다.

“없으면 없는 대로 결혼해서 같이 재산을 늘려가는 게 행복이다.” 지금 결혼적령기 남녀에게 이런 말을 섣불리 꺼냈다간 ‘꼰대’ 소리를 듣는다. 30년간 물가는 폭등했으나 월급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경제는 연 3.0% 성장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서민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집을 장만하려면 은행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야 한다. 과거에 부동산 등으로 재산을 바짝 불려놓은 집안 정도는 돼야 3·4대가 풍족하게 산다.

이제 ‘한국은 계급사회’라고 하는 데 누구도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는다. 살기 팍팍한 가운데 이기주의에 가까운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직장 동료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2018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고 싶을 듯하다. “나 그냥 혼자 살래!”

물론 한국이 30년 전보다 못 산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토종 기업들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공룡으로 성장해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각종 제도와 재화는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민은 왜 ‘꿈의 나라’에 사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낮은 출산율, 가장 높은 우울 지수에 대해선 우리 자신도 별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실제로 한국에서 일부 사회 취약계층을 제외하고 대부분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오히려 너무 잘 먹는 데 치중하고, 일부는 과시형 혹은 충동적 소비를 일삼기도 한다. 현 시대를 반영한다는 TV 드라마는 십중팔구 재벌가 등 부잣집을 배경으로 한다.

이와 관련해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8월 출간한 칼럼집 《선망국의 시간》에서 군부가 주도한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한국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질문하는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출세와 돈벌이에 골몰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후진국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그럭저럭 물질적 풍요는 이뤘지만, 돈과 권력만 좇게 됐다는 것이다. 책 제목 중 ‘선망국’은 선망하는 국가가 아닌 먼저(先) 망한(亡) 나라라는 의미다. 조한 교수는 “쓰나미처럼 몰려온 물신(物神)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프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괴물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하니까 애써 행복을 찾는 모습도 나타난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나 혼자 산다’(1인 가구) ‘자발적 고립’ ‘비혼’ ‘딩크’(Double Income No Kids)….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행복’이란 주제에 따라오는 키워드들이다. 기저에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나 ‘외로움’과 같은 이미지가 깔린 것이 사실이다. 직장 생활 3년 차 강인선씨(가명·28·여)는 “억지로라도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변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인선씨가 행복을 위해 택한 방법은 여행이다. 주말 혹은 휴가를 맞을 때마다 국내외로 훌쩍 떠난다. 그렇게 해도 맘 속에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고 인선씨는 말했다. 그는 “평소에 힘들고 희망 없는 ‘마이너스’ 삶을 살다 보니 주말에 여행을 다녀온다고 행복감이 ‘플러스’되진 않는 느낌”이라며 “그냥 ‘0’이 될 뿐이다. 그러곤 다시 마이너스와 제로 베이스를 반복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외국인, 특히 우리가 부러워해 마지않는 유럽 사람들은 한국을 찾았다가 ‘행복 신드롬’에 놀라움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 어디를 가봐도 한국처럼 행복, 행복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한 나라에서 왔군요. 나는 힘들게 살고 있는데. 당신 나라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한국인의 질문에 유럽인들은 당황하기 일쑤다.

때때로 이런 행복 추구가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SNS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선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추억 등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찾는다. 문제는 SNS의 바다에선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과거엔 개개인이 자신의 동네나 지역사회에서 어떤 것 하나쯤은 내세울 게 있었다. 이를테면 ‘훌라후프 하나는 내가 제일 잘한다’고 말하는 게 가능했다. 과거엔 그런 것도 행복이었다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회상했다. 현대 사회는 아니다. SNS상에 훌라후프 천재, 달인, 도사들이 즉각 나타나 ‘동네 스타’는 고개를 들 여지가 없다. 더 비싼 차를 타고 예쁜 집에 살고 좋은 곳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을 숨 쉬듯 접한다. 최 교수는 “SNS 시대를 맞아 전 세계 70억 명이 70억 명을 상대로 경쟁하고 있다”며 “비교 대상이 무한대로 커지면서 삶의 재미가 없어지고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 된다”고 했다.


30년 뒤는 디스토피아?…‘행복路‘ 찾아갈 수 있을까

슬슬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다간, 30년 뒤는 모든 사람이 불행한 ‘디스토피아’라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30년은커녕 10년 안에 패닉 사회가 올 수 있다고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측한 바 있다. 장 교수는 2016년 희망제작소 창립 1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앞으로 숙제할 시간은 7~8년밖에 안 남았다. 이후에는 어떤 정책 수단도 소용없게 된다”고 진단했다. 저출산 고령화와 계급 양극화, 민주주의 훼손 등 얽히고설킨 문제를 시급히 해소하지 않으면 불행의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의 부산물인 노인부양률 증가는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트리거다.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돌아보는 모습 ⓒ 연합뉴스

 

장 교수가 2023~24년을 임계점으로 잡은 근거도 노인부양률이다. 예측상 노인부양률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지금은 학자들만 그래프를 보며 큰일 났다고 하지만, 그때는 길에 나서면 두 명 중 한 명이 노인일 테니 보통 사람들도 느낄 거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계산하기 시작한다. ‘힘들게 일해서 소득 절반을 노인에게 쓰느니 이민을 가 버릴까?’ 하고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30여 년 후인 2050년 한국의 노인부양률은 72.4%에 달할 전망이다. 2015년 19.4%의 3.7배다. 근로 인구(20~64세) 100명에 의존하는 노인(65세 이상) 수가 2015년 19명에서 2050년 72명으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해당 35년간 한국의 노인부양률 상승 폭은 1.9배인 OECD 평균의 2배 수준에 달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행복한 사회, 아니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상(正常)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변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 켜진 ‘빨간불’을 보다 선명하게 느끼는 학자들은 ‘안 변하면 그럼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한다.

국가와 국민 모두 해야 할 일이 있다.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의 틀을 만들고 국민 행복과 직결된 장기적인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고 장덕진 교수는 강조했다. 최재천 교수는 개개인을 향해 “모든 것에 다 자기를 비교하지 말자.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관에 기반을 둔 이들의 호소는 희망이 남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한혜정 교수는 국가 최고 권력자를 파면시킨 촛불 집회처럼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 사회의 역동성에 희망이 있다고 했다. 조한 교수는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 시민들은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안락한 지대’(comfort zone)에 익숙해진 나머지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현 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말을 전했다”며 “자기들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안락하게 죽어가는 개구리 꼴이지만, 한국 시민들은 급하게 뜨거워진 물을 감지한 개구리처럼 튀어 올라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비유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 늦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충동적인 삶을 살아온 ‘우리’ 모습을 바라볼 때가 왔다”며 “그간 인간·현세대·성장·국가 중심으로 굴러온 근대의 시간을 넘어 이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미래 세대·지속가능성·지구마을 중심의 탈근대의 시간으로 이동할 때”라고 말했다.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미래의 삶에서 행복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99세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중국 철학자 린위탕(林語堂) 박사가 1968년 한국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의 한국은 가난과 고난의 시련을 겪는, 가장 살기 힘든 나라였다. 린위탕 박사는 서울 광화문 시민회관에 모여든 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의 젊은이들은 장관이나 사장의 아들딸 같아서 부모의 혜택을 받고 태어났다. 부(富)나 보람의 측면에서 다 올라가 있으므로 앞으로는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아시아와 한국의 여러분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딸로 태어났기에 더 내려갈 곳이 없다. 위로 올라갈 길만이 주어져 있다. 그 높은 희망과 가능성이 곧 행복인 것이다. 불평과 원망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과 용기를 갖고 새 출발을 해주길 바란다.”

딱 50년이 지난 지금, 린 박사의 지적은 옳았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김 교수는 “희망은 행복을 안겨주며,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과 공존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책에 적었다. 과거와 다른 차원일지언정 희망은 아직 있다. 앞으로 30년, 50년 뒤 우리는 감사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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