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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 "세종역은 없다" 선언에 더욱 코너 몰린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해찬씨가 충북에선 XXX여!"
11월21일 오후 KTX 오송역에서 만난 충북택시 기사들이 격앙된 감정을 쏟아냈다.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오송역은 세종시로 향하는 관문이다. 오송역 기준 정부세종청사까지는 16.6㎞, 세종시 청사까지는 20.8㎞다. 가깝지 않은 거리다. 오송역에 쏟아지는 '비효율성' 지적은 '지역(충청권) 균형발전'이란 대명제에 희석됐다. 2011년 말부터 세종시로 입주한 공무원 등 시민들도 초반에 불편함을 호소했다가 지금은 많이 익숙해진 상태다. 이런 '익숙한 불편함' '충청권 평화'에 최근 파동이 일고 있다. 진원지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갈등은 '세종 대(對) 충청권'을 넘어 '이해찬 대 문재인 정부'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오송역은 세종시로 향하는 관문이다. ⓒ 시사저널 오종탁

 


"이해찬 때문에" 격앙된 충북    

 

세종역 신설 논의는 세종이 지역구인 이해찬 대표가 2016년 총선 당시 공약하면서 촉발됐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당시 대선후보)이 "충청권 자치단체의 합의에 따르겠다"고 밝혀 '없던 일'로 덮이는가 했는데, 다시 이 대표가 등판했다. 이 대표는 올해 8월 여당 수장이 된 후 여세를 몰아 세종역 이슈를 되살렸다. 세종시 건설 당시 책임자(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로서 세종역 설치를 반대했던 이춘희 세종시장도 찬성으로 돌아서 이 대표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세종시는 11월8일 내년도 예산안에 세종역 신설 타당성 조사를 위한 연구용역비로 1억5000만원을 편성했다. 세종역과 관련해 시가 따로 예산안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종역 신설을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충북 지역엔 전운이 감돈다. 이날 오송역 1층 커피 자판기 앞에 모인 충북택시 기사들은 너도나도 이해찬 대표를 비판했다. 세종역이 신설될 경우 충북택시 기사들은 오송역에서 세종시로 가는 손님을 잃게 된다. "일단 한 잔 드쇼"라며 커피를 건넨 한 기사는 "(오송역 신설 당시) 도로 깐 거며 건물 올린 거며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또다시 뭐하자는 짓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대표가) 정치적으로 봤을 때 '높은 자리 갔으니 자기 이득 챙기겠다'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이 원래 그렇잖으냐"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기사는 "정부세종청사까지 (세종시 변두리에) 세종역을 지어서 가나 여기(오송역)서 가나 비슷하다"며 "모든 게 이해찬 때문이다. 혼자 공약으로 내세워서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해찬씨가 저쪽 세종에서는 대통령일지 몰라도 여기 충북에선 XXX"라고 욕설을 섞어 힐난했다.

 

오송역행 간선급행버스(BRT)를 기다리는 세종시민 ⓒ 시사저널 오종탁

 


세종시민 반응도 뜨뜻미지근 

 

충북택시 기사들 말처럼 이해찬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 세종에선 환영받고 있을까. 오송역에서 간선급행버스(BRT) 1001번을 타고 '정부세종청사 북측' 정류장에 내렸다. 딱 21분 걸렸다. 정류장 근처에서 만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은 세종역 신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중앙부처를 찾아와야 하는 수많은 민원인의 편의 차원에서, 또 공무원들의 외부 출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세종역이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세종역이 반드시 있어야 하냐'고 재차 질문하니 "솔직히 말하면 오송역이 어느새 편리해지긴 했다"면서 "5년 정도 세종시에서 지내며 (오송역 가는 게) 어느새 습관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바로 앞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만약 세종역 신설이 가능하다면 저 근처에 생기면 좋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나 현재 세종시가 계획하고 있는 세종역 후보지는 세종 금남면 발산·용포리 일대다. 이 대표가 2016년 3월 처음 제시한 세종역 신설 부지와 같다. BRT를 타고 정부세종청사까지 10분, 세종시청까지 5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오송역보다 조금 가까워졌다 해도 세종시민 모두가 바랐던 세종역은 아니다. 천안아산역에서 세종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노선을 새로 깔고 세종시 한복판에 제대로 된 세종역을 설치하는 안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해 거론조차 안 되고 있다. 

ⓒ 시사저널 양선영

 
평일 오후 한산한 정부세종청사 근처 도로 ⓒ 시사저널 오종탁

 

 

세종시 첫 입주 시기에 들어왔다는 한 시민(50대 여성)은 "사실 세종역은 단순히 공무원들의 편의를 위한 측면이 크다"면서 "있으면 당연히 감사하겠지만, 당장 세종역 건설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세종역 신설 이슈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한 공무원은 "정부 차원에선 오래전부터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생겨 세종역이 신설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크게 기대는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세종시 생활 4년차인 40대 남성은 "버스 타는 시간이 10여분 줄어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며 "다른 도시를 생각해 봐도 KTX역 가는 데 20여분 이상 다 걸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빽빽이 들어찬 오송역 인근 주차장 ⓒ 시사저널 오종탁

물론 세종시민들이 오송역을 이용할 때 BRT만 타진 않는다. 택시요금은 꼼짝없이 2만원가량을 기본으로 지출해야 한다. BRT 요금(1600원)의 10배가 넘는다. 본인 차를 들고 오송역에 가서 주차하면 5000~7000원(하루 주차 기준)을 주차비로 낸다. 이날도 오송역 근처 주차장들엔 승용차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다른 시민(30대 남성)은 "그럼에도 세종시민만을 위해, 더군다나 (세종시 개발 초기가 아닌) 이제야 세종역을 짓겠다는 발상은 이해찬 대표의 과욕인 것 같다"며 "당장 주변 분위기만 봐도 혜택을 볼 사람들(세종시민)은 목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고, 불이익을 받는 이들(충북도민 등)은 극렬하게 저항하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 10월8일 민주당 소속 이시종 충북지사는 이해찬 대표 앞에서 직접 세종역 신설 논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 지사는 "세종역 신설은 충청권의 심각한 갈등과 (고속철도의) 저속철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충북도민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문제"라며 "이 문제가 충청권 상생 차원에서 더는 나오지 않도록 당 차원에서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세종역 신설의 당위성만 재확인했다.

 


점점 더 커지는 정부와의 갈등

 

이해찬 대표의 외곬 행보에 정부도 제동을 걸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11월5일 "오송역 분기는 2005년 전국 지자체 추천 위원 75명이 회의를 거쳐 결정했다. 세종역 신설과 호남선 직선화는 현실적이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민주당 의원이기도 하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11월14일 호남지역 국회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종역 신설은 없다"고 못 박았다. 여당 대표, 그것도 정권 실세의 지역구 공약을 총리가 뭉갠 것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총리 개인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교감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얘기"라면서 "문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경고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하 의원은 또 "여당 대표 정도 되면 국가를 생각해야 할 텐데, 이 대표가 억지 지역구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며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27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체코 프라하로 출국하기 전 환송 나온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밖에 이 대표는 이재명 경기지사 문제를 놓고도 정부는 물론 당 내부와도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 채용특혜 의혹까지 다시 꺼내들면서 청와대와 당내 반발을 샀다. 당 지도부가 어떤 식으로든 조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치는데도 이 대표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11월19일 이 지사에 관한 취재진 질문에 "그만하라니까!"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당 운영, 지역구 공약 등 어느 것 하나 잘 풀리지 않는 이 대표의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란 평가가 나온다.

 

석양이 드리운 오송역 열차 탑승구 ⓒ 시사저널 오종탁

 

 

세종시에서 돌아오는 길. 오송역으로 향하는 BRT 창문 밖으로 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천에서 노니는 철새들도 도시에선 거의 보기 힘들다. 잠깐 정취에 휩싸일 새도 없이 오송역에 도착했다. 석양이 드리운 오송역사 안에 정부세종청사를 찾았다가 돌아가는 정부 산하기관 직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휴대전화로 서로의 좌석을 확인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수년 전 '비효율의 끝판왕' '미완의 정책이 만든 반쪽짜리 행정수도'라는 비판을 한몸에 받았던 세종시는 나름대로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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