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 기무사령관 공소장·범죄일람표 분석해 보니…‘댓글+트위터+웹진’ 이용해 여론조작 시도
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가 이명박(MB) 정부 시절 댓글 공작뿐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가 청와대와 긴밀히 협조하며 ‘여론 조작’의 밑그림을 그렸고, 이는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권력기관의 전방위적 댓글 공작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는 각종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한 좌익 성향 인사들의 ID(닉네임) 등을 수집, 이들의 활동내역과 신상정보 등을 청와대에 보고하기도 했다.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시절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기무사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정권 보위 활동’이란 폐습(弊習)을 끊지 못한 셈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65·구속기소)의 공소장과 범죄일람표에는, 기무사가 MB정권이 들어선 직후부터 댓글 공작 조직인 ‘스파르타’를 앞세워 여권 인사를 지지하고 야권 인사를 비방한 정황이 소상히 적혀 있다. 배 전 사령관은 MB정부 시절인 2011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기무사 대원들에게 여권 지지, 야권 반대 등 정치 관여 글 2만여 건을 게시하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받는다.
기무사, ‘트위터+웹진’ 활용해 여론공작 주도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2008년 5월 청와대 대통령실 산하 홍보기획관실은 ‘온라인상 좌익활동 내역 사찰’을 기무사에 요구했다. 당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로 ‘반(反)정부 여론’이 득세하던 시기다. 2008년 5월2일 시작된 광우병 촛불집회는 이후 전국적인 규모의 집회로 번졌다. 대규모 인파가 집회에 참여하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청와대는 기무사와 수시로 연락하며 정부 정책이나 대통령에 대한 온라인 홍보활동과 좌파의 온라인 활동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윗선’의 뜻을 확인한 기무사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여론조작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기무사는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 정치인과 문화·예술인, 노동·시민사회단체 등을 좌익 세력 또는 좌파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온라인상에서의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네티즌들이 모이는 사이트 곳곳에서 정권을 찬양하고 좌익세력을 공격했다. 검찰은 기무사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300여 명 규모의 댓글 조직 ‘스파르타’를 운영해 이 같은 공작 활동을 주도한 것으로 봤다.
검찰의 범죄일람표에는 스파르타 요원들이 자행한 댓글 공작활동이 적시돼 있다. 주된 내용은 MB정부와 대립각에 서 있던 진보진영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비난과 선동이었다. 일례로 기무사의 대북첩보계원 이아무개씨는 2011년 8월23일 자신의 트위터에 ‘RT @000 : 밥노현(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은 원래 민주당의 시다바리였음.ㅋ 교육감은 개뿔.ㅋㅋㅋ...’라는 글을 작성했다. 또 다른 대북첩보계원 최아무개씨는 2012년 1월20일 자신의 트위터에 ‘노무현 비자금 추정 13억 돈상자 사진 폭로 검찰은 왜 수사를 않나?’라는 글을 적었다.
반정부 인사 ID 수집,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 벌여
MB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글도 등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적을 알리기 위해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방도 서슴지 않았다. 2012년 3월30일 예하부대 사이버 전담관 이아무개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RT @000 : 이명박 대통령은 참 훌륭하다! 독도. 좌파정권에 넘기고 뒤집어씌울 때도 사대강, 한미FTA, 제주기지 다 노정권에서 시작한 거 마무리한 건데 묵묵히 그냥 그대로 당했다 / 노무현은 임기내내 남탓 자살전까지 남탓했지’라는 글을 남겼다. 또 다른 대북첩보계원 이아무개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RT @000 : 여기에는 부엉이 바위 번지점프대 없나요..(생략)’라는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기무사가 배 전 사령관 지시하에 당시 여당과 여당 정치인을 지지하고 야당과 야당 정치인을 반대하는 내용의 정치 관여 글을 2만756여 회 가까이 게시했다고 밝혔다.
기무사의 여론 공작은 비단 SNS나 포털사이트 댓글난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기무사는 ‘언론’이라는 간판을 빌려 정부 옹호에 나서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기무사는 2010년 6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총 45회에 걸쳐, 여권 지지·야권 반대 등의 정치 관여 글이 담긴 웹진(코나스플러스)을 제작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 ‘코나스넷’에 게재했다.
범죄일람표에는 당시 기무사가 제작한 웹진 제목 목차가 나열돼 있다. 예시로 기무사는 2010년 6월28일 《‘천안함 논리’ 똑같은 北과 南 좌파》라는 글을 게시했으며, 2010년 10월18일 《광우병, 천안함, 그리고 타블로 기사》라는 글을 올렸다. 기무사는 웹진을 통해 진보진영이 SNS를 앞세워 여론조작에 나서고 있다는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기무사는 2011년 6월27일, 7월11일, 7월25일 세 차례에 걸쳐 《좌파·종북세의 SNS 활용 실태》라는 글을 게시하며, SNS상에서의 보수 결집을 유도했다. 기무사는 이렇게 만든 게시물을 수십만 명의 예비역 등에게 이메일로 전송하기도 했다.
기무사의 ‘일탈’은 비단 여론조작 활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기무사는 ‘반(反)정부 인사’를 색출한다는 미명 아래, 온라인상에서 MB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게시한 닉네임 수백 개에 대한 가입자 정보를 조회하기도 했다. 앞서 1990년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는 ‘민간인 사찰’ 논란 끝에 기무사로 이름을 바꿔달았는데, 당시 국방부는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 등을 하지 못하도록 부대(기무사)의 기구와 인원을 축소하고 임무와 기능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28년 뒤 기무사는 정치적 목적을 띤 민간인 사찰을 또다시 감행하면서, 같은 논란을 재현했다.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기무사가 2008년 하반기 경부터 ‘대통령 국정운영지원’을 목적으로 사이버상에서 대통령·정부를 비판하는 ID를 수집해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하는 등 지속적으로 대통령·정부를 비판하는 민간인에 대한 신상을 수집·관리했다고 밝혔다. 일례로 대북첩보계장 형아무개씨는 방첩요원 최아무개씨에게 기무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게시한 18개의 ID를 전달하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요청해 ID 사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을 모두 수집해 올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실제 기무사는 포털사이트로부터 관련 정보를 넘겨받은 뒤 지휘 계통을 통해 관련 민간인의 신상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의 ‘여론 조작 현황’, MB는 알고 있었다
기무사의 여론 조작 및 민간인 사찰 행위는 당시 MB정권의 강력한 비호 아래 이뤄졌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청와대가 ‘좌익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대응책 마련을 기무사에 직접적으로 지시했으며, 기무사가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댓글 공작 및 민간인 사찰 등을 저질렀는데 이 모든 활동이 청와대에 보고서 형태로 지속적·장기간에 걸쳐 전달됐다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기무사가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8월부터 사이버 여론현황 및 분석 등을 담은 ‘일일사이버검색결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인편으로 제공한 것으로 나온다. 이후 기무사는 2010년 10월부터 보안성이 뛰어난 국가안보망을 통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올리기 시작했으며,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은 이 보고서를 활용해 ‘일일 여론동향 보고서’를 작성한 후 대통령과 홍보수석, 청와대 수석실 선임 행정관 등에게 배포했다는 것이다. 배 전 사령관이 기무사령관으로 재직한 2010년 4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작성된 ‘일일사이버검색결과’ 보고서만 759개에 이른다.
결국 MB정권 당시 여론 조작은 청와대와 기무사가 그 기초를 닦았고, 이것이 국정원과 경찰의 광범위한 댓글 조작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종합하면 기무사가 사이버 여론을 수집하고 분석한 시점은 2008년 말부터 댓글 공작팀인 ‘알파팀’을 꾸린 국정원이나 2010년 조현오 전 경찰청장 부임 후 ‘사이버여론대응팀(SPOL)’을 창설한 경찰보다 앞선다. 지난 4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무사가 2008년 6월4일 청와대에 보고한 ‘여론조작 공작 보고서’를 공개하며 관련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이 의원이 공개한 ‘참고자료(6.4 청와대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기무사는 국정원·경찰청·합참·기무사 등 ‘기관별 사이버 인력’ 현황을 일별한 뒤 ‘비노출 특수팀 운영’을 건의했다. “좌익세(력)의 반정부 선전·선동에 대응, 정부 지지 여론 확산”을 특수팀의 임무로 설정하고 △좌익 성향 기사·칼럼에 대응하는 성명·논평 게시 △세미나 등을 통한 홍보 및 좌파 불법행위 비판 △새로운 엔지오(NGO)를 만들어 대학생 교육·조직화 등 단계별 활동을 제시했다. 기무사는 또 “인터넷상에서 좌익세와 이념·사상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전투적 미디어”를 설립해 “특수 민간팀 운영과 병행”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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