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환자 정보 공개는 세계의학협회 성명에도 어긋나”…담당의사 “첨언할 게 없다”
서울 강서구에서 생긴 'PC방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담당했던 한 의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 계속해서 논란이다. 피해자, 즉 환자의 정보를 익명의 대중에게 공개한 것은 의료윤리에 반한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자의 정보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는 것은 세계의학협회가 2011년 결의한 10대 권고사항에도 어긋난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피해자 담당 의사는 10월19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피해자의 담당 의사임을 밝히며 "얼굴에만 칼자국이 30개 정도 보였고, 모든 자상은 칼을 끝까지 찔러 넣었다. 모든 상처는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 얼굴과 목 쪽의 상처는 푹 들어갔다. 양쪽 귀가 다 길게 뚫려 허공이 보였다. 목덜미에 있던 상처가 살이 많아 가장 깊었다”는 등의 긴 설명글을 올렸다.
의사들 "의료법 위반으로 윤리위원회 가동될 듯"
이에 대해 의사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료윤리를 위반한 사항이라는 것이다. 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10월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연히 환자의 동의는 구하지 못했을 것이며, 유가족의 동의를 구했다는 언급도 어디에도 없다. 정보공개의 공익적인 목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명백한 의료윤리와 의무의 위반”이라며 "우리는 과도한 영웅심 혹은 반대로 지나친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하며, 이러한 성찰과 실천만이 우리의 업을 여전히 숭고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법엔 '정보 누설 금지' 조항이 있다. 즉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법이 정한 특별한 경우 외에는 의료 업무나 관련 서류 등으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하게 규정돼 있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유명 의사가 환자와 관련된 내용을 사회관계망을 통해 공개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윤리위원회가 가동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공개와 그로 인한 폐해는 세계적인 문제다. 세계의학협회(WMA) 소속 젊은 의사들은 2011년 10월 우루과이에 모여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직업적 및 윤리적 사용에 대한 세계의학협회 성명서(WMA statement on the professional and ethical use of social media)'를 채택했다. 성명서에는 환자 정보를 공개할 때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 의대생과 의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라인에 올린 글도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 등 10가지 권고사항이 담겨있다.
이 성명서를 채택하는 현장에 있었던 신현영 한양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 젊은 의사들이 모여 관련 문제를 토의하고 성명서를 채택했다. 의사가 환자의 정보를 익명의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행위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학협회는 의사가 식별 가능한 환자 정보를 소셜미디어에 게시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사가 환자 정보를 공개하면, 다른 환자도 '내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어서 결국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깨뜨린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담당 의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첨언할 게 없다. (이미 올린) 글로만 생각해주면 고맙겠다"고 짧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