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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 비핵화-後 경제협력’ 기조 필요…주변국 동의·지지 확보도 관건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논의가 다시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엔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주요 내용으로 한 경제협력이 명시됐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8월15일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그리고 올해 세 번째로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금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자”고 합의했다. 철도·도로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 문 대통령이 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논의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동아시아철도공동체란 남한·북한·일본·중국·러시아·몽골 등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문 대통령은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통해 우리의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는 것은 물론 이 공동체가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돼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 공동체는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평화경제, 경제공동체의 꿈을 실현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15일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시 공동체, 기대에 앞선 우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시도는 지난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주춤했던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또 경제와 안보, 평화와 번영을 잇는 구체적인 구상으로 우리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것이다. 구상이 현실화되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운전자론의 성과 또한 배가될 수 있다. 


그런데 어쩐지 낯설지 않다. 우리 정부가 동북아 지역의 다자협력과 공동체에 관한 구상을 내놓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도와 범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대 정부들은 각기 나름의 다자협력 구상을 내놓았다. 민주화 이후만 보더라도 노태우 정부에서는 동북아평화협의회를, 김영삼 정부에서는 동북아다자안보대화를, 김대중 정부에서는 동북아 6자평화협의회를, 노무현 정부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을, 이명박 정부에서는 신아시아 구상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동북아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내세웠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는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철도’라는 구체적인 매개체가 제시됐지만, 이것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신북방·신남방정책, 동북아평화협력플랫폼),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는 허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어서 더 반갑다. 더욱이 이번 ‘9·19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남북 양측의 ‘연내 동해선·도로 연결 현대화 사업 착공식 합의’와 우리 정부가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위해 편성해 놓은 2951억원의 예산 등 구체적인 준비로 인해 구상은 더욱 힘을 얻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경제·산업계 등에서 주가가 올라가며 높은 기대감을 보인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북제재를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 매체에서도 이 구상은 미국의 대북전략에 반하는 것으로 미국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이 이 구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부에서 내세운 다양한 다자협력 구상 가운데 현재까지 어느 하나도 지속되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역대 정부의 어떠한 구상도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 주요 원인으로는 외부적으로 북한 변수의 불확실성과 주변국의 지지 부족, 내부적으로 우리 정부의 미흡한 노력과 정권 임기에 따른 잦은 정책변화 등이 지적된다. 


그간 우리 정부는 다자협력을 쉼 없이 모색해 왔고 역내 불안정한 안보환경 내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또한 이러한 노력의 또 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先 비핵화-後 경제협력’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철도공동체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북한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온 경제와 안보를 잇는 구상이다. 논의의 궁극적 목표는 상생과 공생을 위한 평화이며 좁게는 한반도와 동북아, 넓게는 전 세계의 안전보장이다. 그런데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경제적 지원은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대화의 목적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지켜내기 위함이지 대화가 곧 평화는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주변국으로부터의 동의와 지지가 확보돼야 한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에는 동북아시아 6개국과 미국이 포함돼 있다. 한국이 제안했다 하더라도 관계국들의 동의와 지지가 없으면 시작조차 어렵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중 간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각국의 대외전략과 구상의 차이가 뚜렷한 현재 상황에서 우리의 구상을 주장하는 것만이 아닌 각국의 지역구상과 접점을 찾고 그들에게도 이익이 됨을 설명하며 동의와 지지를 얻어야 할 것이다. 


셋째, 신중하되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정권에 따른 잦은 정책 변경과 유명무실한 제안으로 우리 정부에 대한 주변국의 신뢰는 높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리한 성과 도출을 위한 성급한 시도는 또 한 번의 실망만 낳게 될 것이다. 실현 가능한 중장기적 플랜과 전략을 세우되 지나친 낙관과 속도감은 금물이다. 

 


결국 공동체, 이상향을 향한 기대


다자협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협력의 경험이 부족하고,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은 동북아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다자협력과 공동체 구상은 꿈과 이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목소리에 반박하기 어렵다. 더욱이 북한 변수와 주변 4강 외교에 치우쳐 우리 정부의 다자협력을 위한 노력은 항상 우선순위에 놓이지 못했다. 외교 현장에서도 양자외교에 비해 중요성과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고, 언론과 국민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다자협력은 중견국으로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이며, 역내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기반과 토대를 마련해 줄 역할과 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해 볼 만한다.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많은 지난한 과정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EU의 모태로 소개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동북아 지역에 단선적으로 대입하기에는 이 지역의 역사적·구조적 특성이 유럽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내세운 수많은 다자협력 구상 중에서 이번만큼은 꼭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구상이 허상을 넘어 이상에 도달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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