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30대 성악가…실력파 베이스 김일훈씨 인터뷰
성악에서 남성의 가장 낮은 영역을 맡는 ‘베이스(bass)’는 묵직한 목소리로 악곡의 최저성부를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높은 고음을 부르는 소프라노나 테너와 달리 저음이기 때문에 노래하기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악 훈련을 통해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원래 음역보다 낮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사실상 어렵다. 또 저음의 굵은 목소리가 매력인 베이스는 왕이나 아버지 등 무게감이 있는 노역(老役)을 맡는 일이 많아 젊은 나이에 연륜이 있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10월12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34회 대한민국국제음악제는 10월13일 펼쳐진 영국 가수 폴포츠의 내한공연으로 더욱 이슈가 됐다. 폴포츠가 테너로 오른 이 무대에 젊은 한국 성악가가 함께 올라 최고의 기량을 뽐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 베이스라 불리는 연광철씨와 함께 오페라에 더블캐스팅 되면서 이미 성악가로서의 능력을 입증한, 30대의 나이에 최고 성악가들과 같은 무대에 선 실력파 베이스 김일훈씨를 10월14일 만났다.
한국 대표적 클래식 음악제로 알려진 대한민국국제음악제에서 공연을 한 소감은.
<명태>와 <신고산타령>이라는 가곡,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이렇게 세 곡을 공연했다. 공연을 마치니 밤 11시가 넘었다.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노력했는데 잘 됐을지 모르겠다. 공연은 열심히 했고, 만족스러웠다.
성악을 공부한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중학교 때 성악의 길을 선택했다. 예고를 거쳐 추계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망설였지만 독일 쾰른국립음악대학에 합격해 독일에서 공부를 하게 됐다. 퀼른국립음대에서 오페라를 전공했고, 5년 간 독일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귀국했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공연을 시작으로 국내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보통 성악이라고 하면 ‘테너’를 떠올린다. ‘베이스’로 성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대부분의 공연에서 주연을 맡는 것이 고음을 담당하는 테너이기 때문에 보통 성악가라 하면 테너를 생각하는 것 같다. 주로 테너로 성악을 시작한다. 나는 스물한 살 때 내 목소리가 굉장히 낮은 저음까지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음 자체는 발성으로는 한계가 있고, 성대에 따라 결정된다. 처음에는 저음만 냈지 ‘좋은 저음’을 낼 수 없었는데, 발성을 배우면서 어느 정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듣기 좋은 소리가 좋은 소리라는 철학을 가지고 음악을 하고 있다.
유학을 가기 전에도 공연과 수상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14년 세계적 콩쿠르 입상 경험도 있는데.
유학 가기 전 국립오페라단 작품에서 7회 정도 조역과 단역을 맡아 공연한 경험이 있다. 2008년 한국성악콩쿠르 남자부 1위, 유네스코 국제콩쿠르 입상, 2009년 중앙콩쿠르 3위 등 수상을 했다. 2014년에는 오스트리아 도이칠란츠베르크에서 열린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수상을 하면서 큰 힘을 받았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공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세계적인 베이스로 손꼽히는 연광철과 더블캐스팅 돼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많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오디션을 통해서 주역으로 캐스팅이 됐는데, 유학가기 전 국립오페라단 작품 공연을 한 것과 유학 생활 당시 독일 아헨 오페라하우스, 오스트리아 오페라하우스 등 무대에 선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연광철 선생님과 공연을 준비하면서 배우게 된 것도 굉장히 많다. 젊은 나이에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주로 맡아왔는가.
낮은 음을 다루는 베이스의 특성상 왕, 노인, 장군, 아버지 등의 역할을 주로 맡는다. 2014년에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타타르국의 쫓겨난 왕 ‘티무르’ 역을 맡았고, 지난해 연광철 선생님과 공연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는 ‘달란트 선장’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노년의 인생을 이해하고 연륜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노인을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깨의 힘을 빼보기도 하고, 목소리에 에너지를 빼보기도 했다. 배역을 맡은 경험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역할을 표현하는 법을 알게 됐다.
배역을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다. 노래와 연기 뿐 아니라 연주자와의 앙상블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화음’을 이루는 일이다. 이 세 가지가 함께 갖춰져야만 좋은 공연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페라 이외에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나.
가곡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성가대에서 교회 음악을 듣고 부르며 자라왔고, 리트(가곡)∙오라토리오(종교적 극음악) 전문 가수이셨던 한국 성악 선생님께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국내외 가곡 연주 및 오라토리오 프로젝트에도 300회 이상 참여했다. 앞으로 가곡 연주를 많이 하고 싶다.
오페라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오페라의 대중성을 넓히고 싶다. 사람들은 아직 오페라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방송 등을 통해 오페라를 알리는 일도 하고 싶다. 주변에서 성악을 하는 친구들도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서 성악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창작 오페라 등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페라의 색다른 변신은 공연의 수요를 높이고, 나아가 성악 가수들도 많이 길러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다음 공연 일정은.
12월8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로랑신부 역할을 맡았다.
하고 싶은 음악, 되고 싶은 성악가에 대해 설명한다면.
관객과 공감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관객들이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 노래한다. 가벼운 음악에 그치고 싶지 않다. 한 곡을 부르더라도 이 노래가 관객들에게 주는 메시지의 무게는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이스의 톤처럼, 내 노래가 관객들에게 묵직한 무게로 전달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