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억제,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집값 상승 자극제 됐나
분양가 상한제(분상제)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도입됐지만 공급 위축과 청약 과열을 초래해 오히려 시장 불안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기 지역에선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집값 자극과 투기 수요 우려 속에 규제 완화도 쉽지 않아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시세차익 기대감에 강남 3구 ‘청약 광풍’
최근 서울 방배동에 공급된 ‘디에이치방배’ 1순위 청약은 650가구 모집에 5만8684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90.1대 1에 달했다. 먼저 진행한 특별공급 청약에서도 594가구 모집에 2만8074명이 몰려 47.2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곳은 청약에 당첨되면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로또 청약’으로 인식되면서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디에이치방배는 분상제 적용 단지로 주변 시세보다 20~35% 저렴하게 공급됐다. 평균 분양가는 3.3㎡당 6496만원이다.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22억4350만원으로 책정됐다. 인근 ‘방배 그랑자이’의 같은 평형대 매물이 최근 28억원에 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첨되면 5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분상제는 주택 분양가격을 ‘택지비+건축비’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분양가 급등을 억제하고 무주택자와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1997년 처음 도입됐으나 1999년 분양가 자율화로 규제가 풀렸다. 하지만 집값 급등과 고분양가 논란이 지속되면서 2005년 정부는 다시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다. 2017년에는 공공택지뿐 아니라 민간택지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최근 규제가 일부 완화되면서 분상제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등 특정 민간택지와 공공택지에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분상제 단지에선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당첨만 되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 수요까지 몰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분상제 단지에선 ‘청약 광풍’이 불고 있다. 지난달 입주자를 모집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는 1순위 178가구 모집에 9만3864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527.3대 1을 기록했다. 이달 초 청약을 받은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403대 1)’와 올해 2월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442.3대 1)’는 1순위 경쟁률이 400대 1을 웃돌았다. 동탄역 ‘대방엘리움 더 시그니처(626.9대 1)’와 과천 ‘디에트로퍼스티지(228.5대 1)’도 역대 경쟁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시장에선 분상제로 인한 공급 감소가 청약시장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사비가 상승한 가운데 분양가를 높일 수 없게 되자, 건설사들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분양을 미루거나 사업을 중단해 왔다. 이로 인해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면서 주택시장의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강남 3구와 같은 인기 지역에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청약 경쟁률이 급증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강남 3구와 용산구의 수요가 인근 지역으로 분산되면서 서울 집값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강남 3구와 용산구의 공급이 제한되다 보니 수요자들이 자연스럽게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고, 이에 따라 동작·강동구나 마포·성동구의 신축 아파트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분산 효과는 단기적으로는 해당 자치구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울 전역의 집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분상제 폐지하면 분양가 급등 가능성도”
실제로 서울 아파트값은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보이며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R114가 올해 7∼8월 계약된 서울 아파트의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서초구와 용산구는 올 3분기 거래가격이 직전 최고가의 99%까지 올라섰다. 또 강남구가 97%를 회복하며 뒤를 이었고, 마포구와 성동구가 각각 95%, 93%를 회복했다. 양천구와 송파·광진·영등포구가 각각 최고가의 92%까지 실거래가를 회복했고, 동작구(91%)와 강동구(90%)도 최고가 대비 90% 수준으로 거래가가 올랐다. 반면 노원구(80%), 금천구(83%), 강북구(83%), 중랑구(85%) 등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곳은 회복률이 80%대에 그쳤다.
분상제로 인해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치열한 청약 경쟁이 벌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이 투기 수요에 밀려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받을 기회가 생겼지만 공급 물량 감소로 인해 당첨 확률이 낮아져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인기 지역에선 청약 당첨이 로또 수준으로 변해 기존 주택시장의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시장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분상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분상제를 폐지할 경우 분양가가 시장가격에 맞춰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지난달 공급된 ‘마포 자이 힐스테이트 라첼스’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3억~4억원가량 높게 책정됐고, 이후 강북 지역 집값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집값 상승이 전세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폐지를 주저하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고 실수요자와 서민층을 보호하는 정책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혼란을 해소하려면 주택 공급 확대와 실수요자 보호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며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활성화와 함께 민간 건설사들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분상제 적용 기준을 유연하게 조정해 실질적인 혜택이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