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대학원장
“음식으로 충분한 영양소 섭취…잘못된 영양 기준점 ‘권장섭취량’ 바로잡아야”
‘비타민제를 따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측과 ‘먹을 필요 없다’는 측의 주장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그런데 ‘국민 상당수는 비타민 결핍’이라는 뉴스를 접하거나 건강검진에서 ‘비타민 부족’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당장 비타민 보충제를 먹어야 할 것만 같다. 우리는 비타민 보충제를 따로 먹어야 할 정도로 비타민 부족 상태인 걸까.
수년간 이 문제를 연구한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대학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최근 국제 학술지(Nutrition)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비타민제를 챙겨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현대인은 음식으로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비타민 결핍·부족 진단이 나오는 까닭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권장섭취량(RDA) 탓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는 의학 및 영양 등 관련 학계에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명 원장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봤다.
“비타민C 권장섭취량, 나라마다 달라”
현대인은 비타민이 부족한 상태인가.
“부족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한 상태다. 특정 영양소 섭취량을 조사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 권장섭취량이다. 그런데 권장섭취량 자체에 오류가 있어 건강한 사람이 비타민 부족이나 결핍으로 진단된다. 가령 비타민C 권장섭취량은 나라마다 다른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100mg이다. 미국은 90mg, 영국과 인도는 40mg, 프랑스는 110mg이다. 영국에서 비타민C를 하루 41mg 섭취하는 사람이 한국에 오면 결핍으로 진단되는 것이다. 아무리 인종 간 차이를 고려해도 2배 이상 차이 나는 기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권장섭취량 자체의 문제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있나.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양결핍은 매우 흔했다. 군인도 25%가 영양결핍일 정도였다. 미국 국방자문의원회가 1940년 미국 국립과학한림원에 영양결핍을 해결할 조언을 구했다. 약 50명의 전문가에게 우편으로 의견을 물어 취합한 것이 권장섭취량이다.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상위 2.5%가 먹는 양을 권장섭취량으로 정했다. 그만큼 먹으면 하위 97.5%는 자동으로 충족되기 때문이다.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치긴 했으나 ‘거의 모든 건강한 개인(97~98%)의 영양소 요구량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일일 평균 섭취 수준’이라는 권장섭취량 정의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특정 영양소를 많이 섭취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건강한 사람 100명이 있을 때, 특정 영양소를 조금 먹는 사람과 많이 먹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많이 먹는 사람 2~3명을 기준으로 삼아 그만큼 먹어야 한다는 것이 권장섭취량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나머지 97~98명은 특정 영양소가 부족한 상태가 된다. 가령 국민의 소금 섭취량 평균이 9g이고 짜게 먹는 사람은 13g 먹는다고 하자. 이 13g을 권장섭취량으로 정한 것과 같다.”
그동안 이를 문제 삼는 전문가가 없었나.
“많은 문헌을 찾아봤지만 신기할 정도로 없었다. 결국 수십 년 동안 권장섭취량을 적용한 수많은 연구에는 오류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명 원장이 권장섭취량을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은 없나.
“내 이론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과학은 연구 결과에 반론이 나와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내 문제 제기에 어떤 전문가든 반론을 내주길 바란다. 그래야 권장섭취량의 정의를 새로 제정할 수 있다.”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어느 섭취량 이하에서 영양소 결핍증이나 특정 질병·사망 위험이 커지는지 또는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잘 설계된 연구로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비만의 기준으로 삼는 BMI(체질량지수)도 질병이나 사망과의 관련성을 근거로 도출했듯이 말이다. 모든 영양소의 권장섭취량도 10~20년 후 질병이나 사망 발생을 살펴보고 그 위험도에 맞춰 정해야 한다. 의학·영양학·역학·보건학 등 다학제위원회를 통해 권장섭취량의 과학적 개념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권장섭취량, 평균필요량보다 20% 높아”
한국인 대부분은 비타민D가 부족하다는 발표 또한 권장섭취량의 오류 때문인가.
“마찬가지다. 국민의 70~80%가 비타민D 결핍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이는 비타민D 혈중 농도를 미국 의학한림원(NAM)이 정한 1mL당 20ng(나노그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병의원에서는 30ng/mL을 기준으로 하므로 더 많은 사람이 비타민D 부족으로 진단받는다. 혈중 농도 20ng/mL을 그대로 적용할 때 남아시아인의 68%와 유럽인의 40%가 비타민D 결핍에 해당한다.”
그 정도면 팬데믹(대유행)이 아닌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조안 맨슨 미국 하버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016년 세계적인 학술지(NEJM)에 ‘비타민D 결핍, 정말 팬데믹인가’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수십 년 동안 팬데믹처럼 보인 비타민D 결핍 현상은 ‘특정 영양소에 대한 권장섭취량을 결핍의 기준점(cut point)으로 삼고, 전체 인구가 뼈 건강을 위해 적어도 권장섭취량만큼 섭취해야 한다’는 잘못된 개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비타민D의 혈중 농도가 16ng/mL(상위 50%에 해당하는 값)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2018년 미국 미주리대의대 연구진도 비타민D 적정 혈중 농도가 12~20ng/mL이라는 연구 결과를 미국 가정의학회지에 발표했다. 건강한 한국인 대부분은 이 범위에 들어맞는다.”
기준점을 잘못 적용했다는 것인가.
“미국 의학한림원이 제기한 한 집단의 영양소 섭취량의 목표는 권장섭취량이 아니라 평균필요량(EAR)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 문헌이 특정 영양소의 부족 혹은 결핍을 정의할 때 권장섭취량을 기준점으로 잘못 사용했다. 평균필요량(상위 50%·혈청 농도 16ng/mL·400IU)이면 충분한데도, 권장섭취량(상위 2.5%·20ng/mL) 이하인 경우를 결핍이나 부족으로 잘못 정의해 대다수(97.5%)의 건강한 사람들을 비타민D 부족이나 결핍으로 분류했고 급기야 비타민D 결핍의 팬데믹이 출현한 것이다. 평균필요량은 과학적 문헌에 근거해 특정 나이 그룹의 50% 정도가 필요로 하는 요구량이다. 권장섭취량은 평균필요량보다 약 20% 높다.”
비타민D가 부족하다는 발표에 비타민D 보충제를 먹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지 않았나.
“미국에서도 비타민D 보충제 복용이 2000년부터 10년 동안 100배나 증가했다. 그때 미국 임상병리학회와 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USPSTF)는 비타민D 보충제 복용을 반대했다. 일상적인 비타민D 보충은 암·심혈관질환·골절률을 줄이지 못하고 생명 연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도한 비타민D 보충은 신장결석, 연부조직 석회화, 심장 및 신장에 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무증상인 사람이 비타민D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고 비타민D를 보충하는 것도 건강 증진과 관련이 없다.”
과학적으로 확인됐나.
“관련 논문 33편을 종합·분석한 결과가 2017년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렸다. 비타민D 보충제를 단독으로 또는 칼슘제와 같이 복용해도 골절률을 낮추는 효과가 없다는 내용이다. 2022년 세계적인 학술지(NEJM)에도 건강한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비타민D 보충제를 충분히 복용했으나 위약군과 비교해 골절 위험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 비타민D 검사 불필요”
비타민D를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어떨까.
“70세 이상 9440명에게 1년에 한 차례씩 30만IU(단위)를 주사한 결과 3년 후 골절 위험이 49%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2007년 학술지(Rheumatology)에 게재됐다. 2010년 미국의사협회지에는 70세 이상 골절 위험이 큰 사람 2256명을 대상으로 1년에 한 차례씩 50만IU를 복용시킨 임상 연구 결과가 나왔다. 3~5년 후 낙상 15%, 골절 26%로 위험성이 커졌다는 내용이다. 나도 지난해 15편의 관련 논문을 종합·분석했더니 간헐적 고용량 비타민D 보충은 낙상과 골절 예방에 효과가 없고, 오히려 그 위험이 10% 증가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근거로 건강한 사람은 비타민D 검사와 보충제 복용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영양소 보충제는 어떤가.
“그동안 수만 명을 관찰한 결과, 평소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혈관질환이나 암 발생률이 약 10%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성분이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었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도록 장려하면 될 텐데, 기업들은 이를 보충제 형태로 만들고 건강보조식품이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비타민뿐만 아니라 오메가3,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 칼슘, 글루코사민 등 대부분의 건강기능식품은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권장할 수 없다. 심지어 커피도 고콜레스테롤증을 유발한다. 카페스톨에라는 커피 오일 때문이다. 이 오일이 적은 커피는 드립커피(필터링)-인스턴트커피-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유럽식 커피 순이다.”
그렇다면 영양소를 어떻게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보충제를 섭취하기보다는 각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는 음식물을 충분히 먹으면 된다. 가령 비타민D는 등푸른생선이나 버섯류를 먹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또 비타민D는 햇볕을 충분히 쬐면 형성되기 때문에 하루에 10분 이상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의학적 근거로 확인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은 금연, 절주, 표준체중 유지, 10분 이상 햇볕 노출 및 규칙적인 운동, 적색육 과다 섭취하지 않기, 너무 짜게 먹지 않기, 과일 및 채소 골고루 섭취하기 등이다. 여기에 특정 영양소 보충제는 포함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