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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폭탄 발언 ‘진짜 속내’ 드러나…A4 13장 분량, 장문의 건의서 단독입수
지난 1월 직접 작성…부모가 협회장 면담 때 전해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셔틀콕 천재’ 안세영(22·삼성생명). 그가 8월5일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 쾌거 직후 기자들이 기다리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와 이어진 공식 기자회견 등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를 비판하는 격정 발언을 쏟아낸 후 그 파장이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안세영 발언의 시기와 장소의 적절성에 대한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대표팀 막내로서 그가 겪었던 진짜 속내를 알 수 있는 문건까지 나와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안세영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제출하기 위해 지난 1월 A4 용지 13장(1만5000자 정도) 분량의 건의서를 직접 작성했고, 이는 그의 부모와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의 직접 면담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회장도 몇 달 전 이런 사실을 토로한 바 있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이 8월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세영은 금메달 획득 후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이 8월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세영은 금메달 획득 후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금메달 3개 땄는데, 포상금 1000만원”

“안세영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장문의 글에는 여러 가지 건의사항이 포함돼 있는데, 지난해 12월20일 충남 서산시 한 호텔에서 협회가 진행한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포상금 수여식에 대한 불만도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협회는 지난해 8월 열린 2023 코펜하겐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안세영 여자 단식 금메달), 그리고 10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안세영 여자 단체·단식 금메달)에서 쾌거를 이룬 국가대표 선수단을 위해 1억5000만원을 들여 포상금 수여식을 진행했다. 

“협회에도 묻고 싶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대표팀 성적을 거뒀습니다. 귀국 축하 식사자리에서 기자님께서 특별 포상금 준비하셨느냐 하셨고, 준비하시겠다고 하셨던 말씀도 기억합니다. 아시안게임까지 진짜 대표팀 최선을 다해 달려왔고, 저는 개인적으로 아시안게임 2관왕, 세계선수권 첫 여자 단식 메달자가 되고, 연말 협회에서 특별 포상금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셔서 나름 기대하고 참석했었습니다. 금액은 총 1300만원(세전). 여기에도 체육회 지원 포상금 500만원 빼고 800만원이 저의 메달 3개에 대한 포상이었습니다. (중략) 다른 종목 선수들이 협회 포상금만으로도 몇천, 몇억을 받는 동안 제가 무릎을 잃고 얻은 포상금이 세액 제외하고 1000만원 정도였습니다. (중략) 이게 진짜 최고의 성적을 내온 선수단에 최고의 격려라고 생각하시나요? (중략) 진짜 선수단 격려에 힘써 주셨더라면 더 빛나고 존경받는 협회가 되셨을 텐데 하는 마음에 또 속상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선수단 누구 하나 힘들다 궂은 목소리 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어줘서 그냥 조용하니 편안하시고 좋으신가요?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선수들은 자부심도 못 느끼고 그렇게 대우받고 있음을 속상해하고 있었음을 기억해 주세요.”

대한양궁협회처럼 대기업 총수가 아닌 생활체육인 출신이 협회 회장을 맡다 보니, 업적에 비해 초라한 포상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던 협회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던 것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2010년대 초 대교그룹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으나 당시 강영중 회장은 배드민턴계 핵심 인사들과의 갈등으로 중도 하차했고 신계륜 의원이 바통을 이어갔다. 이후 박기현(작고) 한체대 교수가 김택규 현 회장 이전에 협회를 이끌어왔다.

김택규 회장은 2021년 엘리트 선수 출신 인사들과의 경선을 통해 한국 배드민턴계의 수장이 됐다. 협회는 현재 메인스폰서 요넥스의 후원금(연간 40억원)을 기반으로 대표팀의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투어 대회 출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안세영이 포상금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협회를 저격한 것은 아니다. 선수촌 내에서의 잘못된 대표팀 선후배 문화, 협회가 독점하고 있는 스폰서십, 선수에게 불리한 각종 제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안세영은 장문의 건의서에서 맨 먼저 중3 만 15세의 나이에 대표팀을 시작한 막내로서 7년 동안 진천선수촌과 BWF  투어 국제대회 출전 중 겪어야 했던 설움을 호소했다. “진천은 학생선수가 혼자 버티기에는 너무도 외로운 곳이었습니다”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면서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에 걸맞은 대우도 당당히 요구했다. 

“팀 막내에서 7년을 버텨내다 보니 어느덧 세계랭킹 1위라는 위치가 되면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그 위치에서의 역할들이 생겨나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배드민턴을 사랑하신 선배님, 선생님들도 자랑스럽다고 말씀해 주시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중략) 부족함 많고 아직 실수투성이인 인생 왕초보 안세영은 운동과 재활만으로도 버겁고, 용량 초과 과부하의 시간들을 보내느라 힘이 들어서 정말 먹고 쉬고 하는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생각해 보니 운동하는 것만 배웠지 잘 쉬는 법, 잘 먹는 법도 배우지 못해서 더 어렵고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선수촌 내 잘못된 선후배 문화 등도 비판

안세영은 이렇게 어려웠던 7년 세월을 호소하면서 “막내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제 목소리는 그저 떼쓰는 어린이의 투정으로 생각하셨을 거 같습니다. 성적이 좋아지면 저의 목소리에도 힘을 실을 수 있을까 하는 믿음으로 버텼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성적을 내온 저희 배드민턴 선수들은 진짜 대단한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오늘 이렇게 말씀드리는 내용은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려고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느끼기에 이런 문화는 바뀌어야 하고 모든 선수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목소리를 냅니다. 저 하나뿐만이 아니라 저 이후의 후배 선수들은 이런 문화를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안세영은 이어 “선배들이 해왔고 지금까지 지속되는 문화”로 먼저 ‘선수촌 안에서 청소·빨래’를 지적했다. “저희 종목이 유난히 안 바뀌는 문화인지 모르겠으나, 본인방 청소와 빨래는 본인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같은 국가대표 선수인데 청소하고 빨래하러 대표팀 갔다고 하면 좋아하실 부모님 계실까요?” 그는 또 불편한 ‘보고 문화’도 꼬집었다. “저는 막내로서 어디 나가야 되거나 하면 1번부터 끝번까지 보고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20명 단체 톡방에 ‘외출합니다’ 한 번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1번부터 끝번까지 개인적으로 보고하고, 솔직히 말하면 그 보고가 귀찮아서 방콕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문화입니다. 이 문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외에도 집합 문화, 부당한 규정 등도 지적했다. “최저임금도 오르는 시대에 저희 고등학교 졸업자 선수들은 연봉 5000만원이 최대인 채로 살고 있으나, 모 소속팀들은 그마저도 깎아서 선수들의 계약금 연봉의 하향화를 방치하고 있었고 이 문제에 대해서 부당함을 인정하기보다 소속팀들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이 규정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안세영은 “제가 아시안게임 이후 수십억을 벌었을 거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방송 출연하고 광고 계약하고 했으면 가능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런 일정을 다 소화하고 선수로서의 본분까지 해내기란 쉽지 않음을 알기에 고사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안세영의 이런 건의가 이후 얼마나 개선됐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협회의 고민도 적지 않았으나 올림픽을 앞둔 마당에 파장이 커질까봐 회장 등 임원진은 노심초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올림픽 도중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창설 이후 최대 시련기를 보내고 있다. 

“부디 중3 때 국가대표가 되어서 7년을 겪어온 꼬맹이 안세영이 하는 이야기 한번은 고민하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협회 수뇌부는 과연 이런 안세영의 당찬 건의를 처음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했을까? 이후 소통이 잘됐다면 두 당사자 간의 이런 파국은 없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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