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치매 환자 빅데이터 활용…치매가 가족과 지역사회 붕괴는 물론 국가에도 큰 영향 미친다는 공감대 형성

1970~80년대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소니의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 가전제품 등이다. 그렇다면 요즘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바로 ‘초고령사회’다. 일본 총무성이 지난해 10월1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362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9%를 차지한다. 2038년에는 33.3%로 인구 3명당 1명이 고령자로 예상되고 있다.

고령자 인구가 33.3%에 이르는 초고령사회를 떠올리면 대략 그 사회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노노부양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미 그로 인한 각종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2019년에는 후쿠이현 쓰루가시에서 71세 여성이 70세 남편과 90대 시부모 등 3명을 살해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2016년 사이타마현 오가와정에서는 83세 남성이 치매에 걸린 77세 아내를 살해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노노살인 중에는 고령자 중 한 사람이 치매에 걸려 발생한 경우가 많다. 초고령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단독세대, 독거노인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독거 고령자들의 경우 사회적 접촉 빈도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고독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독거 고령자들의 고독한 생활은 치매와 고독사로 이어지고 있다. 치매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고령화이고 독거 생활이다.

일본의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고령자가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40~50대 젊은 치매 환자 늘어나

미국 보스턴대 의학부 웬디 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독을 느끼는 중년들이 그렇지 않은 중년들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2배 정도 높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2021년에 고독사 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고독·고립대책 담당대신(장관) 제도를 만들어 1억총활약 담당대신이 겸직하고 있다. 일본의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가 실시한 치매 예방에 관한 의식조사(2021년) 자료에 의하면 ‘가장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질병’ 1위가 치매다. 조사 대상 전체의 42.6%로 2위를 차지한 28.7%의 암보다 훨씬 높다.

2019년 일본 후생성 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치매 환자는 600만 명이며 2025년에는 700만 명으로 고령자 5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릴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5명 중 1명이 치매라는 것은 4명은 치매가 아니라는 추계지만, 한편으로는 치매 예비군인 경도치매환자(MCI)가 되는 셈이다.

일본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 중 하나는 치매 양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치매 발병 연령대가 65세 이상 고령자에서 좀 더 젊은 층으로 낮아지고 있다. 통상 치매는 고령자에게 발병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추세는 변화하고 있다. 2020년 후생성 자료에 의하면 65세 미만의 치매 환자는 3만5000명에 이른다. 40대와 50대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시절에 걸리는 치매의 경우 ‘치매는 고령자들의 병’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진단받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치매는 가족의 붕괴를 가져온다. 부부 중 부인이 갑자기 치매 판정을 받은 경우, 퇴직한 남편은 65세가 되지 않아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고 치매에 걸린 부인은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치매 판정 후 1년 반이 지나야 한다. 결국 치매 발생 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무수입으로 살아가야 하는 금전적 고통을 겪는 치매 가족들이 있다. 또 무작정 배회하다 열차에 치여 죽은 경우 철도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을 유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2022년 일본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치매 증상으로 행방불명된 환자 수는 1만7636명에 이르고 있다.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2년 이래 매년 증가하고 있다. 치매 환자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금융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인들의 총 개인재산은 2043조 엔 이상이다. 이 자산 중 63.5% 정도가 고령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고령자 중에서 금융거래를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판단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치매 환자들의 금융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고 환자를 대신해 가족들이 마음대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증 치매 고령자들을 대신해 금융거래를 결정하는 법적 성년후견인제도가 있다. 변호사, 법무사 등 친족 이외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렇듯 가족과 지역공동체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치매 대책 마련에 지자체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역별로 고령화율을 보면 주고쿠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시마네현, 도쿠시마현, 히로시마현의 고령화율이 35%로 일본 평균 29%보다 월등히 높다. 해당 지역에서는 일찍이 고령자 대책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지역별로 치매 카페를 만들어 치매 환자 및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사회단체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치매 카페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일본 도쿄의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노인들이 치매 예방을 위해 두 그림 중에서 서로 다른 부분을 찾는 놀이를 하고 있다. ⓒ뉴스뱅크
일본 도쿄의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노인들이 치매 예방을 위해 두 그림 중에서 서로 다른 부분을 찾는 놀이를 하고 있다. ⓒ뉴스뱅크

AI 기반 치매 진단 솔루션, 민간에 서비스

시마네현의 경우 시마네대학 의학부에서는 30여 년간 치매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이 대학은 그간 축적된 많은 치매 환자 빅데이터를 활용해 AI 기반의 치매 진단 및 분석과 예측 솔루션을 개발해 민간기업인 엘리사를 통해 일본 내 여러 곳에 서비스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 운전사가 많은 택시회사의 경우, 그들을 대상으로 AI 치매 진단 및 예측 솔루션을 사용해 치매 유무 및 잠재적 치매 환자를 분별한다. 고령 운전자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학적으로 치매를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은 없다. 치매 대책으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엘리사의 기술총괄책임자(CTO)이자 AI 치매 전문가인 이시다 마나부는 “치매라고 판정되면 그 증상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돼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매 방지를 위해서는 치매 발병률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이 중요하다. 또 치매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신경학회 치매 진단 가이드라인(2017년)에 의하면 경증 환자의 경우 16~41%는 인지기능이 회복된다는 보고서가 있다고 발표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약으로 미국의 바이오젠과 일본의 에자이가 공동으로 개발한 신약 아듀카누맙에 대해 미국 FDA가 승인했다.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신약이 뇌의 다른 부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분석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적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매년 1000만 명으로 약 3초당 1명꼴로 치매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WHO와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ADI)는 1995년부터 매년 9월21일을 알츠하이머 날로 제정했다. 치매는 이제 한국과 일본 사회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가 돼가고 있다. 치매는 개인은 물론 가족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라도 조기 진단 기술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치매의 종말’ 특집 관련 기사
‘치매의 종말’ 시작됐다
생활 속에서 치매를 늦추는 방법은?
초고령사회 일본, 치매 대응에 정부·지자체 발 벗고 나서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