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제 더해 막강해진 막장 드라마의 세계
K드라마 시대에도 막장은 새롭게 진화하는가. 최근 방영되고 있는 임성한 작가의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시즌3로 오면서 개연성을 찾기 힘든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가 시즌3에서 지리멸렬해진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솔직히 임성한 작가의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시즌2까지만 해도 그나마 괜찮은 완성도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Phoebe’라는 필명으로 다시 펜을 든 임성한 작가도 그간 그에게 씌워져 있던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의 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시즌2까지 임성한 작가의 ‘전략적인 전개’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물론 소재적으로는 ‘내로남불’을 담고 있어 자극적인 요소가 빠지지 않았다. 시즌1 앞부분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내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전형적인 ‘불륜 코드’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되었지만, 시즌1 후반부로 넘어가자 갑자기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 시점을 아내가 아닌 남편으로 바꾸면서 이야기는 ‘남편들의 로맨스’로 그려졌다. 즉 아내 입장으로 본 전반부는 불륜을 그리고, 남편 입장으로 후반부를 로맨스로 그리며 그 분명한 입장 차를 대비시킨 것. 물론 이러한 대비 자체가 자극적이지만, 이것은 이 드라마가 제목에도 담아놓은 것처럼 결혼과 이혼의 변주를 통해 인간관계의 변화무쌍함을 그린다는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그리고 시즌2로 넘어오면 아내의 관점과 남편의 관점을 교차 편집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러한 시도는 파격적이지만 뻔한 ‘막장의 공식’을 벗어나 욕망에 의해 계속 변화하는 남녀 관계를 관조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시즌2까지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그래서 자극적인 재미와 더불어 나름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담으며 최고 시청률 16.5%(닐슨코리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 시즌3의 막장 본색
하지만 6개월여의 휴지기를 두고 돌아온 시즌3는 어쩐지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무슨 이유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출연자가 교체됐다. 판사현 역할을 했던 성훈 대신 강신효가, 신유신 역할의 이태곤 대신 지영산이, 또 김동미 역할의 김보연 대신 이혜숙이 배역을 맡았다. 출연자 교체는 드라마에서 종종 있었지만, 그것은 방영 도중 생긴 불의의 사건이나 사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작사 이혼작곡3》의 출연자 교체는 방영 도중이 아닌 시즌3의 시작과 더불어 생긴 일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출연자가 더 이상 출연하지 못한다고 했다면, 시즌을 연기하거나 멈추는 게 맞는 일이다. 특별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출연자를 무작정 바꿔 새 시즌을 시작한다는 건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3》가 시작부터 어떤 불안한 조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우려는 현실로 돌아왔다. 《결혼작사 이혼작곡3》는 상상을 초월하는 관계 변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러한 관계의 변화가 기본적인 ‘개연성의 법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거의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건이나 인물의 변심에 의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혼해 송원(이민영)과 재혼한 후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단란한 가족을 꾸릴 것이라 여겨졌던 판사현은, 아이를 낳고 곧바로 아내가 사망하면서 예상 밖의 상황을 맞이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남가빈(임혜영)과 결혼할 것으로 여겨졌던 박해륜(전노민) 역시 갑자기 옛 애인이었던 서동마(부배)의 구애를 받아 남가빈이 변심하면서 입이 돌아가는 천벌을 받았다. 아미(송지인)와 새 살림을 차린 신유신은 그를 좋아하는 새엄마 김동미가 찾아와 동거하게 되면서, 그에게 따라붙는 귀신이 된 신기림(노주현)에 의해 갖가지 기이한 일을 겪게 됐다. 결국 조강지처를 버리고 배신한 남편들이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상황들이 그려진 것인데, 그것은 개연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작가가 내린 ‘천벌’에 의한 것이었다. 신적인 위치에 오른 작가가 자극적인 반전을 위해 자의적으로 상황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또 갑자기 이시은(전수경) 앞에 나타나 어려서부터 알던 사이를 밝히며 구애하는 서반(문성호)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남가빈과 결혼할 줄 알았던 서동마 역시 사피영(박주미)을 찾아와 첫눈(사실은 소리에)에 반했다며 불도저처럼 사랑을 고백한다. 놀랍게도 서동마가 사피영에게 반한 이유는 병원에서 우연히 그가 들은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이건 개연성도 아니고 그저 색다른 관계를 잇기 위한 작가의 ‘변명’처럼 보인다. 작품 내적인 개연성을 따르지 않고 신적인 위치에 오른 작가가 마음대로 그려나가는 ‘막장 본색’이 《결혼작사 이혼작곡3》에 드리워졌다.
최근 들어 시즌제가 드라마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지만, 더 이상 이야기 소재가 고갈된 상태에서 전작의 성공에 기대 이어지는 시즌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걸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즌2까지만 해도 괜찮은 완성도를 보이던 작품이, 무리하게 시즌3를 이어가면서 개연성의 고삐마저 풀어 버리고 폭주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
그런데 이런 흐름은 또 한 명의 막장 드라마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 바 있다. 《펜트하우스》는 시즌1이 다소 과장된 전개는 있었지만 나름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었다. 특히 부동산과 교육 문제를 헤라팰리스라는 100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다루려는 시도는 의미 있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시즌2로 넘어오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더니 시즌3에 와서는 개연성을 찾아보기 힘든 황당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쌍둥이 설정을 통해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하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이를 통해 얼기설기 엮인 이야기들이 시즌3까지 이어지자 드라마의 완성도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즉 《펜트하우스》 역시 시즌1 정도의 분량으로 충분한 작품을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무리하게 시즌3까지 늘림으로써 지리멸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소재보다는 완성도 문제가 더 크게 지적돼
과거 막장 드라마라고 하면 두 가지 기준이 적용되곤 했다. 즉 불륜, 패륜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를 지칭하던 게 그 하나였고, 개연성이 떨어지고 완성도가 부족한 드라마를 지칭하던 게 나머지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를 경험하면서 훨씬 더 자극적인 소재들이 다뤄지는 것을 경험한 대중은 이제 소재적인 것만을 갖고 막장이라 부르지 않게 됐다. 예를 들어 《인간수업》 같은 작품은 청소년 성매매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높은 완성도를 보여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지금의 막장 드라마란 소재가 아닌 완성도 부족이 그 잣대로 드리워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K드라마라는 새로운 지칭이 생길 정도로 한국 드라마에 대한 글로벌한 팬덤이 생기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막장 드라마가 사라진 건 아니다. 드라마의 완성도 부족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막장 드라마는 그 파격적인 전개 속에서 대중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건드림으로써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정도 욕망을 건드릴 수 있는 소재와 전개라면, 완성도에도 좀 더 힘을 기울일 수는 없는 걸까. 완성도까지 담보된다면 글로벌한 인기까지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발 이들 드라마 역시 K드라마의 위상에 걸맞은 최소한의 완성도를 갖춰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