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풍토병으로 간주할 것”전문가 “5대 조건에서 모든 게 불충분”
정부가 2월22일 ‘풍토병’ 얘기를 꺼냈다. 코로나19를 계절 독감처럼 관리하는 초입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또 김부겸 국무총리는 2월23일 확진자 수만 가지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런 발표는 오미크론을 통제할 수 있으니 안심하라는 신호로 읽힌다.
그러나 의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언젠가는 풍토병이 될 것으로 누구나 전망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풍토병이 될 것처럼 정부가 국민에게 말하는 것은 장밋빛 전망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확진자뿐만 아니라 입원환자·중환자·사망자 등 모든 지표가 증가하고 있다. 또 국제적으로도 입원환자와 중환자가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에서는 감소하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아직 풍토병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치명률·감염재생산지수 여전히 높은 수준
그렇다면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률이 낮아야 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월23일 3차 백신 접종자의 경우 오미크론 감염 시 치명률이 0.08%라고 발표한 후 코로나19를 독감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계절 독감의 치명률은 0.05~0.1%다. 그러나 국내 코로나19 치명률은 3월6일 기준 0.2%이고 백신 미접종자의 오미크론 감염 시 치명률은 0.6%로 매우 높다. 김우주 교수는 “이제 시작한 오미크론 유행기의 치명률이 낮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태풍이 한반도로 다가오는데도 멀리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국민이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코로나19에 걸려도 치명률이 낮은 것이지, 오미크론 자체의 병독성은 낮지 않다”고 반박했다.
풍토병의 또 다른 조건인 감염재생산지수(1명의 환자가 감염시키는 사람의 수)는 3월4일 기준 1.46이다. 최소 1이 돼야 풍토병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6주간 국내 감염재생산지수는 꾸준히 상승해 왔다.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는 백신도 필요하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백신을 접종했으나 접종 간격이 늘어지면서 항체가 줄어든 상태다.
특히 오미크론 예방을 위해 필요한 3차 접종률은 최근 많이 감소했다. 2월말 하루 최대 24만 명이 참여하던 3차 접종이 방역패스 중단 이후 3월초에는 10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3월8일 기준 3차 접종률은 62%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자연면역을 획득한 인구라도 많으면 다행일 텐데 코로나19 누적 감염자는 약 521만 명으로 국민의 9%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코로나19 특히 오미크론에 방어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풍토병 조건 중에는 먹는 치료제도 있다.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도 타미플루라는 치료제가 나온 덕분에 2010년 풍토병이 됐다. 당시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환자는 별도의 진단 없이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현재 코로나19 감염자를 위한 먹는 치료제가 있지만 고위험군, 병용 금지약물, 5일 이내 복용 등 특정 조건이 있어 동네 병·의원에서 손쉽게 처방받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변이 바이러스가 없어야 풍토병화를 기대할 수 있다. 변이가 생기더라도 전파 속도와 치명률이 낮아야 한다. 코로나19는 3~6개월마다 변이했고 최근에는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1.5배 빠른 ‘스텔스 오미크론’이 출현했다. 일본은 4월초 신규 확진자 중 스텔스 오미크론 감염자가 74%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우주 교수는 “일본이 햄스터로 실험한 바에 따르면 스텔스 오미크론의 전파력이 오미크론보다 약 1.5배 빠르다. 병독성도 폐에 염증을 더 심하게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 모델의 실험 결과지만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덴마크도 스텔스 오미크론의 전파력이 강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심지어 오미크론 감염 후에 스텔스 오미크론에 재감염되는 사례도 일부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건들을 고려할 때 국내 코로나19 상황은 아직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체계가 감염병 확산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치명률·감염재생산지수·백신·항바이러스제·변이 등을 고려할 때 아직은 풍토병 얘기를 꺼낼 때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아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 돼야 풍토병으로 진행할 수 있다. 지금은 여러 조치를 하는 중이어서 풍토병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검사자 2명 중 1명은 확진자
과연 오미크론 유행의 정점은 언제,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정부는 당초 3만 명이라고 했다가 이후 13만 명과 17만 명으로 번복했고, 최근에는 3월 중순 27만 명까지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3월9일 신규 확진자가 34만2000여 명으로 급증하면서 이 예상도 사실상 깨졌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확산세가 감소세로 바뀌는 시점은 대체로 인구의 20% 이상이 확진될 때다. 미국은 전체 인구의 23%, 영국은 27%, 프랑스는 34%가 감염되고 나서야 유행이 한풀 꺾였다. 3월9일 기준 국내 누적 확진자는 약 512만 명으로 전 국민의 9%대다. 오미크론 유행이 약세로 돌아서려면 500만 명 이상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해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오미크론 유행은 정부의 예상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재훈 교수는 “앞으로 1년 정도 크고 작은 유행이 진행되면서 인구의 절반가량이 감염된 후 집단면역 효과를 볼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한다”고 말했다.
3월3일 방역 당국이 집계한 코로나 양성률은 51.3%다. 선별진료소에서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받은 사람 2명 중 1명이 확진자인 셈이다. 그만큼 오미크론 유행 상황이 심각하다. 특히 최근 신규 확진자 가운데 60세 이상 고령자는 약 15%이고, 18세 미만 소아·청소년은 약 24%다.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3월9일 기준 위중증 환자는 1087명으로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고 사망자도 158명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50%를 넘어섰고 재택치료자도 3월8일 기준 120만 명에 근접했다. 김우주 교수는 “하루 500~600명의 위중증 환자가 적은 것처럼 보이나 중환자실 외에 현재 일반 병실이나 집에도 위중증 환자가 있으므로 실제 위중증 환자는 1000명 이상이다. 중환자 병상 가동률 50%는 정부의 계산일 뿐, 병원 현장에서는 이미 70~80%에 도달했다. 사망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누적 사망자가 9000명을 넘었는데 정부가 다른 나라보다 사망자가 적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옳지 않다. 단 한 명의 생명도 지켜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정부는 3월 중순을 정점 시기로 보지만 그때 가봐야 안다. 방역은 미래를 대비해 강화해야 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방역을 풀고 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의료 시스템이 코로나19를 감당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게다가 병원 자체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어 의료 시스템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이재갑 교수는 “병원에서 감염이 확산 중이다. 일반 진료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상은 정부의 말과 달리 이미 포화상태다. 요즘 하루 150명씩 사망한다. 앞으로 하루 30만 명씩 확진되면 500~600명이 하루에 사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방역보다 경제에 방점⋯청와대는 침묵
정부는 최근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오후 11시로 연장했다. 또 3월21일부터는 방역을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이런 결정은 일상회복지원위원회의 논의를 거친 후 정해진다. 이 위원회에는 경제·민생, 사회·문화, 자치·안전, 방역·의료 등 4개 분과위원회가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월4일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서 방역 전문가들은 반대했지만 경제·민생, 사회·문화, 자치·안전 등 모든 분과는 거리 두기 조정을 요구했다. 다음번 거리 두기 조정부터는 본격적으로 완화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역을 푼다고 한다.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것은 하지 않으면서 전문가의 전망과 지적을 외면하고 방역을 푼다. 방역을 풀면 그 대가는 너무 가혹하다. 확진자가 늘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가족 간 전파가 일어나는 등 국민은 온갖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생명에 위협도 받는다. 기업과 병원 등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경제적 타격도 받는다. 이처럼 국가적 피해는 너무 크다. 결국 모든 국민이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부는 전문가의 의견보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방역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나마 청와대가 이를 보완하면 좋은데 그렇지도 않다. 방역정책에 전문가적 조언을 하는 사람이 의사 출신인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이다. 지난해 4월 임명된 그는 지금까지 언론 브리핑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모란 책임론’이 제기됐으나 청와대는 기 방역기획관이 컨트롤타워가 아닌 가교 역할을 한다며 선을 그었다.
김우주 교수는 “감염병은 정점을 찍고 감소할 때 방역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 지금처럼 상승세에 방역을 완화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로 결정할 수 없는 조치다. 이성적인 판단인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하루 확진자가 40만 명까지 나올 수 있다. 지금 26만 명이 나오는 것은 주로 60세 이상을 위주로 검사한 결과치여서 실제로는 이미 40만 명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거리 두기를 강화해 신규 확진자를 1만 명대로 줄여야 한다. 국민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국민이 필요할 때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증상이 악화하면 치료를 받고, 먹는 치료제를 빨리 투여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