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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홍수 속에서 《싱어게인》이 부각되는 이유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 의미 있는 질문 던져
이름과 장르를 지운 결과
우선 이름이 없다. 《싱어게인》이 다른 오디션과 차별화되는 첫 번째 지점이다. 가수들을 ‘찐 무명’ ‘슈가맨’ ‘오디션 최강자’ ‘OST’ ‘재야의 고수’ ‘홀로서기’ 등으로 조를 분류해 그들의 과거를 짐작하게 하고, “나는 ○○ 가수다”라는 한 줄의 설명을 추가해 그들의 최소한의 정보만을 알렸을 뿐이다. 가수들을 나타내는 것은 ‘번호’뿐이다. 가수들은 1호부터 71호까지,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며 무대에 오른다. 제작진이 이름 대신 번호를 선택한 건 가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혹은 옅게 남아 있을지 모를 인지도를 제거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다면 대중은 이들을 모를까. 그렇지 않다. 익명이기 때문에 가수에 대한 관심도는 더 커진다. 가수의 노래를 듣고, 직접 그를 찾아보고 싶어지면서, 직접 그를 검색해 보면서 이름과 노래는 뇌리에 더욱 각인된다. 그렇게 《싱어게인》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직접 ‘○호’를 찾아보게 만들며 ‘리부팅’이라는 기획 의도를 현실화시킨다. 실제로 방송 이후에는 ‘싱어게인 ○호’가 실시간 검색어 창을 장악한다. 무명 가수들을 유명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했던 기획자, 윤현준 CP의 ‘한 수’가 통한 셈이다.불화와 경쟁 강조하는 과도한 편집 없어
극한의 경쟁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종종 등장하는 부정적인 장면도 없다. 짧은 연습시간 속에서 합동 경연을 준비하면서 나타나는 참가자들의 불화는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처럼 여겨졌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서로 ‘센터’를 차지하기 위한 심리적 상태를 부각시키며 특정 참가자를 욕심 많은 모습으로 그려냈고, 불화 속에서 진행된 무대를 성공시키는 모습으로 극적인 반전을 꾀하는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싱어게인》은 이런 갈등의 서사를 과감하게 삭제했다. 스승과 제자가 만나 ‘뜻밖의 재수강’을 하게 되며 ‘세월의 벽’에 웃음을 터뜨리고, 함께 무대를 하던 참가자와 다음 무대에서 라이벌로 맞닥뜨리는 상황에서도 서로의 무대를 즐기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한다. 이것은 과도하거나 자극적인 편집이 없다는 《싱어게인》의 장점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참가자들의 행동을 교묘하게 편집해 긴장감을 유도하거나, 인물들 사이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는 ‘악마의 편집’은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도 방송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책임지는 ‘치트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과 발표를 앞두고 시간을 질질 끄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 화제를 모으기 위해 출연자의 실수를 먹잇감으로 삼아 무한 반복으로 보여주는 편집을 여기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갈등을 전시하고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보다 그들의 음악과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통한다는 걸, 《싱어게인》은 시청률을 통해 직접 증명한다. 특유의 억지스러운 장치에서 벗어난 이 방송이 지난했던 음악 예능의 단비 같은 존재로 떠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를 끌어안기 위해 심사위원 구성의 연령대도 넓혔다. 심사위원을 시니어와 주니어로 나눈 것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첫 시도였다. 기존의 오디션처럼 신인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음정이나 박자 같은 기본을 논할 필요는 없다. 심사 기준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다. 그래서 현역에서 인정받는 주니어의 관점도 필요했다. 작사가, 프로듀서, 보컬, 래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열일’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였다. 저마다의 시선을 통해 느끼는 솔직한 평으로, 전혀 다른 의견들을 내놓는다. 전문적인 조언을 내놓는 시니어 심사위원도 있고, 마치 시청자처럼 무대에 대한 진한 감상만을 내보이는 주니어 심사위원도 있다. 단순히 ‘평가’하는 윗사람들이 아니다. 심사위원 역시 시청자와 함께 음악을 ‘감상’하는 청자임을 감추지 않는다. 심사위원들끼리도 다름을 인정해 가면서 프로그램의 폭은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