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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 세계에서 K팝이 성공하는가’ 물음에 제대로 답해
오해 속에 묻힌 비운의 걸그룹
크레용팝은 2012년 데뷔해 《댄싱퀸》을 발표했다. ‘비 오는 금요일 밤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한 소녀가 결국 달빛 아래서 홀로 춤을 추는 모습’을 표현한 곡으로 코믹한 설정이 인상 깊고 음악과 퍼포먼스의 완성도도 높았다. 하지만 대중적인 반향이 없었다. 크레용팝은 동대문 등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며 B급 활동을 이어갔다. 이때 소수지만 뜨거운 남성 팬덤이 생겨 ‘팝저씨’라 불렸다. 2013년에 《빠빠빠》로 떴다. 헬멧 쓰고 뜀뛰기를 하는 직렬 5기통 춤이 선풍을 일으켰다. 인터넷에 입소문이 번지면서 ‘밈’에 등극했다. 2만5000원 주고 산 헬멧이었는데 이것도 히트상품이 됐다. 레이디 가가의 북미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설 정도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뮤지션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 그룹으로만 소비됐을 뿐이다. 그 퍼포먼스 때문에 음악적으론 오히려 저평가됐다. 후속곡도 B급 분위기로 가면서 병맛 이미지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실력 없이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만 하는 팀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 와중에 한 멤버의 손가락 모양이 빌미가 돼 ‘일베 걸그룹’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아무 근거가 없는 소문인데도 사람들은 ‘정의 구현’을 한다며 크레용팝을 단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크레용팝은 잊힌 팀이 되고 말았다. 초아의 공연으로 사람들은 크레용팝의 실력을 뒤늦게 인정하게 됐다. 헬멧 퍼포먼스를 보고 퍼포먼스 팀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헬멧을 씌워 제자리뛰기를 시켰다니’라면서 한탄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대중의 선입견을 바꾼 K팝 아이돌의 힘
자연스럽게 한국 아이돌의 경쟁력도 재평가됐다. 《싱어게인》에서 초아와 제이민은 듀오 무대를 준비하며 ‘아이돌의 끈기와 악바리와 근성과 한을 보여주자’는 대화를 나눴다. 공연을 본 사람들은 아이돌의 힘에 경탄했다. ‘아이돌 메인 보컬이었던 친구들은 다 초인들이구나. 노래 잘해 춤도 잘 춰 거기에 예쁘기까지’ ‘혹독한 과정을 견뎌낸 대한민국 아이돌의 근성을 처음으로 깨닫게 하는 무대입니다’라는 댓글들이 나타났다. 오랫동안 아이돌은 실력 없이 팬덤 지원만 받는, 가수 자격도 안 되는 가수라는 식의 대우를 받았다. 크레용팝의 헬멧춤만 보고 병맛 퍼포먼스 팀이라고 오해했던 것처럼, 아이돌의 춤만 보고 음악적으로 무시했던 세월이 길었다. 하지만 K팝 아이돌이 세계를 휩쓸면서 아이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노래와 퍼포먼스를 혹독하게 수련한 실력자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난다.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진 열정의 주인공이라는 이미지도 생겼다. 초아의 무대를 보며 사람들은 한국 아이돌의 근성에 새삼 감탄했다. 최근 《미스트롯2》에선 아이돌 연습생 출신 홍지윤이 놀라운 가창으로 예선 선에 올랐다. 본선 1차 팀미션에선 아이돌부가 현역부를 뛰어넘는 공연으로 올하트를 받았고, 아이돌 출신인 황우림이 본선 1차 팀미션 진에 올랐다. 퍼포먼스를 하면서도 노래에 흔들림이 없는 아이돌의 진가가 다시 한번 발휘됐다. 이들은 댄스트로트가 아닌 정통 트로트를 소화해 폭넓은 음악적 소화력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건들이 모두 K팝의 힘을 보여줬다. 왜 전 세계에서 K팝이 성공하는지, 왜 지구의 젊은이들이 한국 아이돌에 경탄하는지 말이다.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 아이돌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량을 갈고닦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때 아이돌은 립싱크의 대명사였지만, 요즘은 한국 아이돌처럼 고난도 퍼포먼스와 가창을 동시에 소화해 내는 뮤지션이 세계적으로 드물다. K팝 아이돌의 ‘끈기와 악바리 근성과 한’이 한류 열풍을 만든 것이다. 초아의 무대를 보며 ‘저렇게 춤을 추면서도 숨 한 번 흐트러지지 않고 노래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하며 감동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안일했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초아 신드롬이 사상누각이 아님을 확인시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