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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 건의’ 이낙연, 친문 거센 반발에도 “손해 본 장사 아냐” 평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 발언이 새해 정국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내 반발이 거세지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지만, 이번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안고 있는 난제가 하나로 응축된 사건이기에 정치적으로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대표의 발언이 나왔을 때 민주당 지지층을 비롯해 정치권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은 ‘대통령 사면’이 담고 있는 정치적 휘발성이 그만큼 커서다. 어쩌면 이 문제는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지적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그리고 이 대표의 운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당대표실 주변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대표는 이 문제를 꽤 오랜 시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가는 말로 툭 내뱉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표의 사면 발언은 새해 첫날 연합통신·뉴스1·뉴시스 등 통신 3사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보도됐다. 당시 인터뷰는 지난해 12월29일 진행됐는데, 세 매체와 한자리에서 동시에 진행한 것이 아니었다. 매체마다 따로 진행됐는데, 세 인터뷰에서 똑같이 사면 발언을 했다는 것은 이 대표가 이 문제를 작심하고 꺼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다음 날(30일) 모 통신사 기자로부터 신년 인터뷰 주제를 ‘두 전직 대통령 사면’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이 대표에게 황급히 문자를 보냈더니 ‘이 시점에서 그런 걸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답해 왔다. 이 대표가 국민통합을 생각한 것은 꽤 오래됐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7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2021 국민과 함께하는 신년인사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7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2021 국민과 함께하는 신년인사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동교동계 “사면 건의, 대표 취임 이래 가장 잘한 일”

일반의 해석과 달리 이 대표 측근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면 발언은 지지율 만회를 위한 꼼수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총리 내정자 시절 기자간담회에서 “적폐청산과 국민 통합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고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할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NY(이낙연 대표 지칭)계’로 불리는 설훈 의원은 “당내 반발을 모를 대표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이 죽어 나가고 있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사면 건의를 통해) 국민의 뜻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이 대표 주변의 동교동계 선배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사면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주목한다. 같은 동교동계이면서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대표적이다. 문 전 의장은 여권 인사로는 처음 공개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주장했다. 이러한 기류는 호남을 기반으로 한 동교동계 인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이 대표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진 정대철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사면 발언은) 이 대표가 대표에 취임한 이래 가장 잘한 일”이라면서 “문 대통령도 이 대표가 먼저 얘기해 줘 고마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주변 정책자문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한 사립대 교수는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JP(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았기에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면서 “진영 논리로 국론이 쪼개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통합과 전진이며 사면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연말 한 종합지 칼럼에 “대한민국이 증오·모멸의 시대를 넘어 데탕트·대통합의 시대로 가기 위해 3가지를 제안한다”면서 그중 하나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꼽았다. 그러나 당내 반발 후폭풍이 거세게 일자 이 대표는 일단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1월3일 비공개로 열린 민주당 최고위 회의에선 “지도부와 상의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게 어디 있느냐”며 최고위원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빠’로 대표되는 당내 적극적 지지층의 반발도 거세다. 그래서인지 이 대표의 사면 발언에 대해 중도층으로 지지층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조급함이 빚어낸 정치적 실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이 문제가 확대될 경우 문 대통령의 권한이 침해될 소지가 있다. 이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건의’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19일과 26일 두 차례 청와대를 방문해 문 대통령과 독대했다. 만약 사면 이야기가 나왔다면 이 자리를 빌려 자연스럽게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脫여의도’ 추구하는 靑, ‘국민 통합용’ 검토?

발언 직후 청와대와의 교감설이 흘러나오자 이 대표가 직접 나서 “교감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이 대표 주변에선 “신중한 스타일인 이 대표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아무런 상의 없이 언론에 이야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옛 동교동계 정치인은 “여자의 몸으로 4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는 문제는 청와대가 꽤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가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의 국정기조를 ‘탈(脫)여의도’와 ‘정책 중심’으로 가져갈 방침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치인이 맡아오던 대통령비서실장에 비정치인인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임명한 데도 통합과 소통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지지층의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이 대표로선 ‘사면 카드’가 나쁜 선택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설사 당장 진행되지 않더라도 국민 통합에 노력했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만약 문 대통령이 이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화답하면 이 모든 공은 이 대표가 독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최종 선고(1월14일 예정)가 나온 뒤 여론이 어떻게 흐르느냐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쩌면 1월 중순으로 예고된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국민 통합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면 정국이 재현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대표가 이후 여러 언론에 나와 “사면 발언은 사익이 아닌 절박한 충정에서 한 말”이라고 말한 것에서 이러한 기류가 감지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동정 여론 등 사회적 공감대가 조금 형성돼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면 여권 내 친문들의 반대 의견도 누그러질 것”이라면서 “이 일로 문심(文心)이 실리는 순간, 이 대표 지지율도 재반등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현재 청와대 내부 기류를 종합하면 사면의 기본 전제 원칙은 △당사자 사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 △여야 합의 등 3가지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사면 전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마무리되는 것은 고작 첫 번째 절차만을 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실 관계자도 “문 대통령은 원칙과 절차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임기 중 결자해지 차원에서 사면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법이 정한 절차는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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