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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日 등은 백신 100% 이상 확보하고 있는데, 우리는 선구매 관련 법적 근거조차 없어

미국은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작전(ope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영화 《스타트렉》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속도를 의미하는 워프스피드(warp speed)를 붙인 ‘워프스피드 작전(OWS)’이다. 코로나19 백신 확보 타이밍을 중요하게 판단한 최고속 작전이다. 백신의 개발·승인·보급별 세밀한 계획을 담은 이 작전에 미국 국방부·연방비상관리국·국토안보부·보건후생부·국무부가 참여했고 미 육군 사령관이 지휘했다. 화이자·바아오엔테크 백신의 사용 신청이 들어오자마자 미국 백신·생물의약품자문위원회(VRBPAC)는 12월10일 긴급사용 승인을 식품의약국(FDA)에 권고했고, FDA는 그다음 날 이를 바로 수용했다. 그와 동시에 화이자 백신은 미국 각지로 공급됐고, 12월14일 뉴욕주 롱아일랜드 유대인 의료센터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미국인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의료계 종사자와 중증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백신을 투여한 후 내년 2월까지 미국인 1억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목표다. 또 미국은 12월18일 모더나 백신에 대한 긴급사용 승인을 허가할 전망이다. 
12월 8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와 수급 계획 발표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백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았다고 징계하는 게 말이 되나”

영국도 12월8일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처럼 백신을 선구매한 국가들은 내년 상반기에는 코로나19 종식 단계를 밟는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년 상반기에도 백신 접종이 불투명하다. 선구매로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는 백신을 선구매할 법적 근거가 없다. 김우주 교수가 오래전부터 선구매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은 감염병 팬데믹(대유행) 상황일 때 백신 개발비와 계약금을 주고 백신을 확보하는 선구매 계약(APA) 관련 법적 근거를 갖췄다. 백신 개발에 실패하면 돈을 날리는 위험이 있지만, 성공하면 백신을 선점할 수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APA를 위한 법적 근거가 없으니 공무원이 선구매에 나설 수 없다. 대통령의 구두 지시라도 있으면 그것을 근거로 행동할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 우리는 백신이 없어 글로벌 제약사에 구걸하는 상황이라고 국감에서 지적까지 받았다. 다행히 녹십자에서 백신 2500만 개를 만들어 접종을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백신이 남았다고 담당 공무원이 감사에서 징계를 먹었다. 백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아서 징계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와 같은 법적 책임 부담 때문에 이번에도 백신 선구매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선구매가 늦어진 것에 대해 정부는 늘 안전성을 앞세워 해명했다. 보건복지부는 12월8일 “빠르게 했다면 지난 7월에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안전하고 유효성 있는 백신을 선택하기 위해 제조사에 임상 자료를 요구했다. 이를 검토하면서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임상 중 사망 사고도 유심히 살펴봤다. 안전하고 유효성 있는 백신을 선택하기 위해 꼼꼼한 검토와 절차를 밟았다”고 밝혔다.
12월8일은 인간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반격을 시작한 날로 기록됐다. 영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90세 여성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AP 연합

캐나다 527%, 일본 115% 백신 확보

정부가 확보하려는 백신 물량은 4400만 명분이다. 일반적으로 이 백신 접종률이 60~80%면 집단면역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전 국민에게 투여하고도 남을 백신을 확보했다. 미국 듀크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의 ‘국가별 코로나19 백신 선구매 현황’ 자료를 보면, 12월15일 기준 미국은 6개 제약사로부터 10억1000만 개를 확보했다. 미국 인구 대비 169%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유럽연합은 인구 대비 199%(7개사 15억8500만 개), 캐나다 527%(7개사 3억5800만 개), 영국 290%(7개사 3억5700만 개), 일본 115%(3개사 2억9000만 개) 등의 백신을 비축했다. 우리는 인구 대비 66%에 해당하는 백신을 확보했거나 확보할 예정이다. 김우주 교수는 “평상시 10년 이상 걸리는 백신 개발을 12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맞추려고 하니 불확실성이 크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지만, 아스트라제네카·GSK·사노피 등은 안전성 문제 등으로 임상시험을 다시 하면서 일정이 뒤로 밀렸다. 또 임상시험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투여하다 보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이런저런 불확실성 때문에 미국 등 다른 나라는 국민 수의 2~3배에 해당하는 백신을, 그것도 여러 채널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다.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보수적으로 잡아 최소한 50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하자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12월8일 공개한 백신 확보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자. 전체 4400만 명분 가운데 3400만 명분은 4개 제약사를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즉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모더나에서 각 1000만 명분, 그리고 얀센에서 400만 명분을 사온다. 나머지 1000만 명분은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의료 국제기구들이 백신의 공정한 배분을 위해 만든 ‘코백스 퍼실리티’에서 공급받는다. 이 가운데 정식 계약을 맺어 확보한 실제 백신 물량은 12월16일 기준 1000만 명분뿐이다. 이 분량은 11월27일 아스트라제네카와 선구매 계약을 맺어 확보했다. 나머지 3개 제약사와는 구매 약관을 체결한 상태여서 정식 구매 계약 단계가 남아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인도·브라질·한국 등지에서 백신을 생산할 예정인데,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을 생산하는 만큼 다른 백신보다 공급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도즈(1회 투여량)당 4달러로 가격이 싸고, 보관 온도도 2~8도로 높아 관리와 유통이 쉽다. 화이자는 도즈당 24달러, 모더나는 37달러로 비싸고, 보관 온도도 -70도와 -20도로 까다롭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에서 이미 접종하기 시작한 화이자 백신 그리고 곧 사용할 모더나 백신을 우리는 확보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5000만 명분 외에도 화이자 백신 5100만 명분, 모더나 백신 2500만 명분을 확보했다. 김우주 교수는 “얼마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임상시험 대상자가 적어 학문적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임상시험에 각 3만~4만 명이 참여했는데도 대상자가 적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스트라제네카 임상시험 참여자(약 4만 명)가 매우 많은 것도 아니다. 그때 알았다. 정부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선구매에 실패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특성상(mRNA 백신)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 화이자 백신은 생산공장이 있는 벨기에·독일·미국 그리고 선구매 계약을 맺은 영국·유럽연합·일본 등에 우선 공급될 것이다. 내년 생산량은 거의 선점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자국민에게 우선 접종한 후 남는 백신을 다른 나라에 주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월8일 백악관에서 ‘백신 최고회의’를 열고 “미국인이 미국 백신을 접종할 우선권을 갖도록 보장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계획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12월9일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점검 회의에서 “이르면 내년 2월에서 3월 사이 정부가 확보한 백신 초기 물량이 들어와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초기 물량’이란 사실상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 명분을 의미한다. 이 물량을 내년 2~3월 받을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공급 시기가 애매하다. 11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3상 임상시험 결과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안전성 논란이 생기자 아스트라제네카가 추가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보한 백신도 앞날 ‘미지수’ 

임상시험 결과가 언제 나올지 불투명한 데다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미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사용 승인을 순조롭게 해 줄지도 의문이다. 마지막 백신 접종 2개월 후 전체 참여자의 절반 이상에서 안전성이 입증돼야 FDA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안전성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만일 미국 FDA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 문제는 또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미국 FDA 승인과 무관하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과 효과를 검토한 후 승인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우주 교수는 “미국이 자국민 1억 명에게 백신을 투여하는 내년 2월께는 mRNA 백신(화이자·모더나 백신)에 대한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긴급사용 승인(EUA) 과정을 거치면 바로 접종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안전성 운운하며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변수가 생기지 않았나. 안전성 확인, 식약처의 단독 승인 부담, 백신 품질 확인 등의 과정에서 실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시기는 불투명하고 자칫하면 내년 상반기도 힘들 수 있다. 이에 대비해 백신 공급 채널을 다양화해야 한다. 예컨대 3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노바백스 백신에 대한 선구매도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정부는 백신 접종 시기를 정하지 못했다. 코로나19의 국내 상황과 외국 접종 동향, 부작용 여부, 국민 수요 등을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이재갑 교수는 “백신 도입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접종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쯤이면 백신 전담팀만 2~3팀이 움직여 실제 접종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신 접종 후 항체 유지 기간도 고려할 부분이다. 모더나 백신의 경우 2차 접종 후 90일(3개월)까지 항체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월3일 국제 의학저널(NEJM)을 통해 발표된 모더나 백신 임상 1상 논문에 따르면 백신 1차 접종 후 119일(2차 접종 후 90일)까지 연령과 무관하게 중화항체와 면역원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역원성이란 바이러스 감염성을 없애거나 낮추는 중화항체 증가 비율을 말한다.  김우주 교수는 “모더나 백신은 일단 1차 접종 후 4개월까지 항체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고 앞으로 6개월, 1년 이상 추적하면서 항체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항체 유지 기간에 따라 코로나19가 매년 겨울 독감처럼 유행한다면 매년 백신을 접종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백신의 효과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 백신 접종에 큰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어깃장을 놓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실제로 이번 독감 백신의 유통 문제로 현재 독감 백신 접종률이 저조하다. 백신 확보부터 안전하게 접종하는 문제까지 치밀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가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해 계획을 짜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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