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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단식·투쟁…‘모범생’ 이미지 버리고 ‘강경 보수’ 상징으로 우뚝

해마다 정치인들은 ‘올해 최악의 인물’ 단골 후보로 등장한다. 욕을 먹는 게 숙명이라지만, 올해만큼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분노가 컸던 적은 또 없었다. 시사저널이 ‘올해의 정치 인물’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부정적 여론이 빗발쳤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가 펼친 ‘4파전’ 양상은 황 대표와 조 전 장관으로 최종 압축됐고, 난상토론 끝에 황 대표를 올해의 정치 인물로 선정했다.  1월 한국당 입당, 2월 당 대표 선출로 2019년을 열었고, 9월 삭발 투쟁, 11월 단식 투쟁, 12월 국회 규탄 대회 등으로 2019년을 마무리하는 등 한 해를 관통하는 영향력 면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한다는 평이 절대적이었다. 무엇보다 황 대표의 영향력은 내년 총선까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 전 장관도 이른바 ‘조국 사태’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지만, 10월 장관 사퇴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왔다.      황 대표는 검찰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2013~15), 국무총리(2015~16), 대통령권한대행(2016~17) 등 공직자로서 누릴 수 있는 화려한 이력을 다 거쳤지만, 정작 황교안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가장 강하게 각인시킨 해는 2019년이었다. 삭발을 하고, 노숙 단식을 하고, 투쟁을 외치는 사이 그의 이미지는 ‘반듯한 모범생’보단 ‘거친 싸움닭’에 가까워졌다. 여권과 타협하지 않는 강경 일변도에 많은 ‘안티’를 양성했지만, 동시에 태극기부대를 포함한 강성 보수세력을 팬덤(fandom)으로 하는 보수진영 대권주자 1위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정치 초보’ 딱지를 떼고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월17일 국회 밖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월17일 국회 밖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엘리트 공직자’에서 ‘프로 정치인’으로

황 대표는 전형적인 ‘엘리트 공직자’의 삶을 살았다. 황 대표는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하고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3년 8월 청주지검 검사로 임명되면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서가 청와대에 송달된 2016년 12월9일부터 차기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10일까지 5개월간 대한민국 국정을 이끌었다. 이후 이른바 ‘문재인의 시대’가 열리고, 대중의 지지가 보수에서 진보로 급격히 쏠리면서 황 대표의 행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올해 1월15일 한국당에 입당하면서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 이후 2월27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입당 43일 만에 한국당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야권의 ‘간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다만 입당 초기에는 당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이른바 ‘정치 프로’들이 즐비한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 공직 생활만 해 왔던 황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팽배했다. 실제 당시 자유한국당의 실세가 황 대표가 아닌 나경원 전 원내대표였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당 한 3선 의원실 관계자는 “보수 집회에 황교안과 나경원이 동시에 뜨면, 당직자들이나 의원들이 황 대표보다는 나 전 원내대표 주변으로 더 많이 몰려들곤 했다”며 “가뜩이나 보수당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모범생 이미지인 황 대표를 두고 ‘정치판에서 오래가긴 힘든 스타일’이라며 평가절하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한국당이 걱정했던 것은 황 대표의 ‘야성(野性)’이었다. 그는 총리 시절부터 정제된 수사와 원론적인 입장 외에는 발언을 삼갔다. 이 탓에 그가 여권이 주도하는 정국을 반전시킬 수 있겠느냐는 의심도 많았다. 그러나 올해 가장 큰 정치 이슈인 재보선과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황 대표는 의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재보선이 치러진 두 곳 중 한 곳에 당선자를 내면서 데뷔전치고는 양호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조국 사태’가 정국을 강타하자 머리를 미는 삭발 투쟁에 나섰다. 이후 그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철회 등 3가지 조건을 내건 노숙 단식 투쟁에도 돌입했다. 여권에서는 타협 대신 투쟁을 택하는 황 대표를 두고, ‘낡은 정치쇼’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황 대표가 입이 아닌 몸으로 정치를 해 나가자, 일각의 ‘유약하다’는 비판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조국 사태’가 정국을 강타하면서 한국당의 총공세 전면에 황 대표가 있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조국 사퇴’를 외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 투쟁을 한 것이었다”며 “모두가 설마 했지만 강단 있는 모습을 선보였다. ‘조국 블랙홀’ 반사이익을 누리면서 정당 지지율은 높아졌고 자신의 개인적인 경쟁력까지 덩달아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1년 새 황 대표의 당내 장악력도 확실히 뒤집혔다. 원외 대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사권을 앞세워 당을 휘어잡았다는 평가가 대세다. 대표적으로 그와 ‘투톱 체제’를 유지했던 나 전 원내대표를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투쟁’은 양날의 검, 적도 많아졌다

정치평론가들은 황 대표의 진정한 승부처는 2020년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4월 총선이 그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란 얘기다. 지금은 대안 부재로 숨죽이고 있지만, 조금만 틈이 보이면 당 안팎의 ‘정치인’들이 황교안 체제를 흔들 가능성은 늘 상존한다. 그만큼 당내에서 황교안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진 만큼, ‘적’도 많아졌다. ‘친황 체제’의 전면 포진에 대한 당내 우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연일 ‘우회전’하면서, 당내 초선 의원들이나 중도보수 색채 의원들의 불만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김세연과 김영우라는 걸출한 두 미래 자원을 잃었다. 11월17일과 12월4일 연이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11월19일 시사저널과 만난 김세연 의원은 “안팎에서 가하는 어떤 자극에도 당이 도통 반응을 안 한다. 심각성을 알리면 ‘심각하구나’ 자각하고 사고나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흔들기’ ‘내부 총질’이라며 공격으로 인식하고 되레 역공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황 대표의 ‘불통 리더십’을 꼬집기도 했다. 황 대표가 이른바 ‘태극기 세력’과 손잡고 2020년을 맞이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여(對與) 투쟁 전선을 고집하는 게 기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는 가져올 수 있지만, 당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는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래 세대’의 실망을 낳은 게, 한국당에는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황 대표의 인사가) 젊은 세대의 표를 잃는 대신 50대 이상 지지층에 결집의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 단기적으로만 보면 잃은 것만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라면서도 “젊은 세대가 향후 20년 이상 정치권의 핵심 투표층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이 과연 한국당을 지지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정치평론가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는 “한국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보수 결집만으로는 힘들다. 예상을 벗어나는 참신한 인사를 영입해야지, (태극기 세력을) 끌고 가다가는 당내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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