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체중, 면역 저하에 치매 유발…비만보다 사망률 2.7배 높아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빙햄턴대 연구진은 마블이 발간한 만화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들의 근육량 등 체형을 분석해 체질량지수(BMI)를 추정했다. 비만의 척도인 BMI는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만화 속 남성 영웅들은 평균적으로 비만이었다. 그 까닭은 상체의 근육이 극단적으로 발달해 어깨와 허리의 비율이 실제 인간 신체의 한계를 벗어난 탓이다. 여성 영웅은 정상 체중과 저체중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영웅의 몸은 실제 여성의 평균치에 비해 허리가 지나치게 가늘고 엉덩이는 비정상적으로 풍만했다. 연구를 주도한 로라 존슨 교수는 “창작자들은 만화 속 인물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과장했다. 남성 영웅의 경우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로 남성성을 강조하고, 여성 영웅은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로 여성성을 강조했다”며 “이런 몸매는 다이어트나 운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도 의상 디자인 등을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과장되게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일반인은 특정 캐릭터나 연예인의 몸매를 부러워하고 일부는 그런 몸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젊은 여성은 자신의 몸무게가 이미 정상 체중 이하인데도 뚱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구보건대학 연구팀은 2009년 대구시에 사는 여대생 101명을 대상으로 ‘체중 인식과 신체 부위별 만족도’를 조사했다. 이들 여대생의 비만 정도는 정상 체중 56.4%, 저체중 27.7%, 과체중 9.9%, 비만 4%, 극심한 저체중 2%였다. 과체중과 비만은 14% 남짓이지만, 정상 체중 이하에 해당하는 여대생은 30%에 육박한 셈이다. 

여대생 3명 중 1명, 저체중 

이런 현상은 여대생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임주원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 교수팀은 1998〜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성인 13만4613명(남 6만1152명, 여 7만3461명)을 대상으로 성별·연령별·연도별 저체중 비율을 분석했다. 연구 대상자의 평균 BMI는 23.5(남 24.0, 여 23.2)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BMI가 18.5 미만이면 저체중, 18.5〜22.9를 정상 체중, 23〜24.9를 과체중, 25 이상이면 비만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저체중 비율은 남성이 3.1%, 여성이 6.3%로 나타났다. 여성의 저체중 비율이 남성보다 2배가량 높은 셈이다.  연령별로 구분할 때, 특히 20대 여성의 저체중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모를 중시하는 20대 여성의 저체중 비율은 16.9%였다. 20대 여성 10명 중 2명 가까이가 저체중이란 얘기다. 이는 50대 여성의 저체중 비율(1.7%)보다 10배 높은 수치다. 한편, 20대 남성의 저체중 비율은 4.9%다.  저체중은 정상 체중보다 15~20% 적게 나가는 상태다. 아시아권에서는 ‘BMI 18.5 미만’을 저체중으로 본다. 한 여성 연예인은 키 167cm에 몸무게 45kg으로, 전형적인 저체중이다. 저체중은 영양 부족 상태여서 비만 못지않게 건강을 위협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젊은 층은 저체중이라도 당장 큰 증상이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힘이 부족해지면 더 먹고 결국 비만이 된다. 따라서 젊을 때부터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게 장기적인 체중 유지를 위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면역력 떨어뜨리고 치매까지 유발

저체중은 면역력을 떨어뜨려 각종 감염병 위험을 높인다. 영양 공급이 부족하면 당장 면역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고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감염에 취약해진다. 실제로 저체중인 사람은 결핵이나 간염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잘 걸리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저체중인 사람의 폐결핵 발생 위험이 정상 체중자의 2.4배다.  저체중인 사람은 단백질·칼슘·비타민D 등 영양소 섭취가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근육세포가 위축되고 근육량이 줄어든다. 근육량이 부족하면 낙상했을 때 골절 위험이 더욱 크다. 적당한 근육은 뼈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근육이 없어지면서 뼈가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이다. 실제로 골다공증의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가 저체중이다. 체중이 있어야 뼈에 무게를 가해 골밀도를 증가시킨다. 체중이 적을수록 골밀도가 감소해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이 크다.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인 비타민D·E가 부족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저체중인 사람은 치매 위험도 높다. 영국에서 45~66세 성인 195만여 명을 15년간 추적 관찰했는데, 저체중군은 정상 체중군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34% 높았다. 호흡기 근육이 약해져 만성폐쇄성폐질환 같은 호흡기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도 높다. 네덜란드 웁살라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만성폐쇄성폐질환자 중 저체중인 사람은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1.7배 높다. 호흡기질환자는 숨 쉬는 것이 힘들고, 잦은 기침으로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져 질환 자체가 저체중을 유발하기도 한다. 저체중인 사람은 과체중인 사람보다 우울증도 심해진다. 계명대 동산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2006년 45세 이상 남녀 중 우울증이 없다고 진단된 6811명을 대상으로 체중과 우울증의 상관성을 분석했다. 8년 후 저체중인 사람 10명 중 7명 이상(74.3%)에서 우울증이 발생해, 정상 그룹의 63.1%와 과체중 그룹 59.5%보다 높았다. 
ⓒ freepik
ⓒ freepik

마른 사람을 표준으로 보는 분위기도 바로잡아야

저체중은 사망 위험까지 높인다. 저체중으로 뼈·근육·장기 등이 약해지면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유근영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팀은 2011년 한국인 1만6000여 명을 포함한 아시아인 114만 명을 평균 9.2년간 추적 조사하고, 체중에 따른 사망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저체중 그룹의 사망 위험도는 비만 그룹보다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망 위험도는 정상에 속하는 그룹과 비교하면 2.8배 높았다. 또 2006년 2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이 발병한 사람 가운데 저체중군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내용이 국제의학저널(란셋)에 발표됐다. 박민선 교수는 “어떤 질병이라도 저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이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높다”고 말했다.  암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도 저체중인 사람에게서 더 높다. 저체중인 유방암 환자는 암 재발과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더 많으며, 두경부암이나 식도암 환자는 암 진단 시 저체중이었을 때 사망 위험도가 높다는 보고가 있다. 대장암 진단 후 저체중인 여성은 사망 위험이 89% 높다는 미국 연구 결과도 있다. 김영우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같은 위암이라도 저체중 환자는 비만인 환자보다 예후가 좋지 않다. (저체중으로)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환자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질병 발병·사망률과 관련이 있는 저체중은 수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저체중은 당뇨병보다 수명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됐다. 서일대 간호학과 연구팀은 2008년과 2011년 노인실태조사에 참여한 노인 8532명(생존자 7846명, 사망자 686명)을 대상으로 영양 관련 사망 위험 요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노인의 사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성별, 당뇨병, BMI, 연하곤란(최근 6개월 이내에 음식을 삼키지 못하거나 삼키는 도중 사레가 든 경우), 씹기 능력(고기·사과 등 딱딱한 음식을 씹는 정도), 영양 상태 등이었다. 이 가운데, 노인의 사망 위험을 높이는 요인 1위는 저체중이었다. 저체중 노인의 3년간 사망률은 21.3%로 가장 높고, 사망 위험이 정상 체중·과체중 노인보다 2.7배 컸다.  신현영 한양대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저체중은 비만보다 더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병원 검사를 통해 저체중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원인을 교정해 정상 체중을 되찾아야 한다. 영양 부족, 운동 부족, 질병 등 저체중의 원인은 다양하다. 살이 찌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호르몬 문제가 아닌지 의심할 필요도 있다”며 “연예인 등 마른 사람이 표준인 것처럼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의 신호 ‘저체중’ 

저체중이 질병의 신호일 수 있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살이 빠진다면 특정 질병이 없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갑상선기능항진증, 당뇨병, 부갑상선기능항진증, 암, 감염성 질환, 심질환, 콩팥 질환 등에 걸리면 따로 다이어트하지 않아도 저절로 살이 빠진다. 아무 이유 없이 1년에 체중의 4~5% 이상 빠지면 특정 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다이어트하지 않았는데도 체중이 5년간 5% 이상 빠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18%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