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버닝썬과 ‘경찰 유착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버닝썬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이 발단이 됐다. 지난해 11월24일 손님으로 버닝썬을 찾았던 김상교씨(28)는 클럽 직원과의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 김씨는 경찰에 “버닝썬에서 폭행당했다”고 112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김씨를 ‘업무방해죄’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출동한 경찰로부터 2차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장에 도착한 서울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 소속 경찰이 자신을 폭행한 클럽 관계자를 다급히 들여보낸 뒤, 자신을 경찰차에 강압적으로 밀어붙여 수갑을 채웠다고 했다. 김씨는 “‘제가 신고한 신고자이고, 혹시 쌍방폭행으로 보이신다면 현장범으로 둘 다 잡아야지 왜 저만 체포하냐’고 정중하게 물었다”며 “하지만 그들은 (순찰차로 이동하는 동안) 욕설로 대답했다”고 적었다.
김씨는 강남경찰서로 이첩된 후에도 조사과정에서 경찰관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듣고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경찰관들이 가해자들 편에 섰다고도 주장하며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버닝썬과 경찰 유착 의혹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게시됐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지방경찰청은 광역수사대를 전담수사팀으로 지정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각종 신고에도 어려움 없이 운영
버닝썬의 관할 경찰서는 서울 강남경찰서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수조사한 112 신고내역에 따르면 버닝썬은 2018년 2월 개장부터 최근까지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에 112건의 마약·성추행·납치감금·폭행 사건이 접수됐다. 그런데 지금까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운영한 것이 드러났다. ‘봐주기’나 ‘뒷배’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다. 경찰은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을 파악하기 위해 역삼지구대에 신고된 내역과 처리 결과를 집중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했다. 지난해 7월 버닝썬에 미성년자가 출입해 고액의 술을 마셨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강남경찰서는 이 사건을 수사했지만 지난해 8월 증거부족으로 사건을 종결했고,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런데 중간에 전직 강남경찰서 출신인 강아무개씨(44)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는 2011년 해외에서 도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 파면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한 화장품 회사 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버닝썬에서 대규모 홍보행사를 열었다. 행사에 앞서 미성년자 출입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자 행사 차질을 우려한 강씨가 나서 사건을 무마한 정황이 파악됐다.
이를 위해 강씨 측이 강남경찰서 경제팀 소속 수사관 2명에게 뒷돈을 전달한 것이 드러났다. 경찰은 돈 ‘전달책’인 강씨의 부하직원 이아무개씨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이씨는 ‘강씨의 지시를 받아 돈을 배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지난해 8월 강씨와 함께 자신의 차에서 경찰관 2명에게 230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경찰은 또 이씨가 버닝썬 공동대표인 이문호씨에게 2000만원을 건네받아 이를 6개 계좌에 송금한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은 이 계좌의 소유주 가운데 경찰이 포함돼 있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돈 전달책인 이씨는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었다. 그는 호남지역 한 폭력조직 출신이다. 전직 경찰관이 조폭 출신의 부하직원을 통해 경찰과 연결고리 역할을 한 셈이다. 경찰은 강씨를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긴급체포하고, 사건 무마 대가로 경찰관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여자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수수 명목 등도 소명이 돼 있지 않다”며 영장 보완을 지휘했다. 강씨는 일단 석방됐다.
‘경찰발전위원’ 활동 전력까지
버닝썬과 경찰의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버닝썬은 르메르디앙서울 호텔 지하에 입주해 있다. 버닝썬의 또 다른 공동대표인 이아무개씨는 이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전원산업의 이사였다. 호텔 대표 최아무개씨는 강남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었다.
이에 따라 경찰과 클럽의 유착 의심은 더 커졌다. ‘경찰발전위원회’는 경찰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협력자로 구성된 일종의 자문기구다. 한때 각급 경찰서에는 비슷한 협력단체가 30여 개에 달했다. 지난 2010년 경찰청은 실질적인 활동이 없는 단체를 포함해 협력단체를 26개에서 12개로 줄였다. 하지만 설립 취지를 살리기보다는 지역 유지와 경찰의 유착 창구로 활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 전직 경찰서장은 “한마디로 ‘빚 좋은 개살구’라고 보면 된다.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운영이나 관리도 허술하다”며 “이런 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의 협력단체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식이다. 서장은 단체를 통해 관내 유력 인사들과 공식 채널을 만들어서 좋고, 위원들은 이걸 통해 자연스럽게 경찰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민원 해결 등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경찰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최아무개씨는 “친분 있는 경찰 간부들이 저녁 술자리 등이 있을 때 초대를 하는데 가보면 스폰서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술값이나 밥값을 계산해 주곤 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에서도 강남경찰서는 경찰과 유흥업소 관계자들의 유착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대형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 ‘이경백 사건’이 대표적이다.
‘룸살롱 황제’로 불렸던 이경백은 단속 정보를 제공받고 사건 무마를 위해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게 수천만원의 금품을 살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은 한 경찰서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찰들을 무조건 다른 서로 보내는 ‘순환전보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강남서 경찰관들은 한꺼번에 다른 경찰서로 이동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강남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순환전보제도’는 차선책이지 최선책은 아니다. 경찰에 줄을 대려는 측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다. 해당 경찰서와 관계를 맺기 위해 끈을 찾는데 지역 연고, 경찰 입직 동기, 학교 동문 등을 찾아내 어떻게든 연결하려고 한다”며 “나한테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재 버닝썬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청 광역수사대는 클럽과 경찰의 유착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이 잡듯 뒤지고 있다. 금융거래가 의심되는 버닝썬 측 관계자들과 전·현직 경찰관 등의 계좌 및 통신 기록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이 과정에서 현직 경찰관들이 줄줄이 엮어 나올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