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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 흐름 속, 지상파 고유 영역인 공공성에 주목해야

지금 지상파는 위기다. 케이블과 종편이 치고 올라오고 디지털 기반의 글로벌 플랫폼들이 속속 주류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의 입지는 자꾸만 좁아진다. 과연 지상파는 아무런 해법이 없는 걸까. 월화에 MBC가 19금 등급의 《나쁜형사》를 편성한 건 여러모로 이례적인 일이다. 그건 마치 그간 지상파가 보편적인 시청층을 대상으로 해 왔던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이 이제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는 걸 자인하는 듯한 편성이기 때문이다. 19세로 제한을 두면 그 시간대에는 아무래도 채널에 대한 접근성 자체에 차단막이 생긴다. IPTV로 연결해 지상파를 보는 분들이라면 성인 인증을 해 주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겨우 채널로 들어가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나쁜형사》가 장르적 특징으로만 보면 OCN 같은 케이블 채널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란 사실은 MBC 같은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사이의 차이가 거의 사라져버린 현재의 미디어 상황을 말해 준다. 이른바 보편적인 시청층을 대상으로 하며 시청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 왔던 지상파들은 이제 케이블 채널과 시청률 수치 면에서도, 화제성 면에서도 비슷하거나 밀리는 양상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시청률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월화극만을 두고 볼 때 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내고 있는 《나쁜형사》가 6.5%(닐슨코리아)인 반면, 케이블 채널 tvN 《왕이 된 남자》는 8% 시청률로 압도적이다. 
위부터 《왜그래 풍상씨》 《나쁜형사》 《황후의 품격》 ⓒ KBS·MBC·SBS
위부터 《왜그래 풍상씨》 《나쁜형사》 《황후의 품격》 ⓒ KBS·MBC·SBS

지상파의 위기의식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들

이런 위기상황을 지상파들이 헤쳐 나가려 어떤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건 현재의 지상파 수목드라마의 편성표다. SBS 《황후의 품격》이나 KBS 《왜그래 풍상씨》는 사실 주말드라마에 더 어울릴 법한 작품들이다. 《황후의 품격》은 《아내의 유혹》 이후 막장 드라마의 대표적 작가로 지칭되어온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고, 《왜그래 풍상씨》 역시 막장 논란을 항상 일으켰던 문영남 작가의 가족 드라마다. 수목의 드라마 시간대가 지상파들에게는 자존심이 걸려 있어 앞서가는 실험작들이나 장르물들이 주로 편성되곤 했던 걸 떠올려보면 이 두 작품은 마치 ‘지상파의 항복선언’ 같은 느낌마저 준다. 자존심이고 뭐고 당장 시청률을 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이들 작품의 편성에서 느껴진다.  《미스터 션샤인》은 본래 SBS에서 편성이 논의되다 tvN으로 넘어갔다. 이유는 현재의 SBS 제작 시스템이 430억원이라는 이 드라마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제작비의 일정부분을 투자하고 광고매출과 판권수익 등으로 수익을 내는 지상파의 드라마 제작 시스템으로는 적어도 300억원 이상의 출혈을 해서 드라마가 성공한다고 해도 그만한 수익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하지만 CJ E&M의 계열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은 이 문제를 넷플릭스의 300억원 투자로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스튜디오 드래곤 같은 콘텐츠 제작 전문 스튜디오를 자회사로 갖고 있다는 건 그만큼 투자와 제작에서 유연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KBS도 부랴부랴 몬스터유니온이라는 자회사를 차렸다. 무엇보다 KBS에서 타 방송사로 유출되는 인력을 이 자회사가 끌어안겠다는 의도가 컸지만, 역시 문제는 콘텐츠였다. 그간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 KBS를 통해 선보였지만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은 별로 없었다. 결국 최근 몬스터유니온은 서수민 PD와 유호진 PD가 퇴사하고 예능 부문 콘텐츠 사업을 접었다. 온전히 드라마 위주의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16년 9억원, 2017년 53억원 등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몬스터유니온은 여러모로 올해가 그 존폐를 결정짓는 중요한 해가 될 거로 보인다. SBS 역시 드라마본부 분사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현 구조대로 분사된다면 특히 조연출들에게 연출 기회가 돌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와 무한경쟁 속에서 겪을 입지의 불안정 등의 문제로 반대에 부딪혔다. 노조 측은 ‘선 구조개혁, 후 드라마본부 분사’를 요구하며 사측과 대립하고 있다. 결국 지상파 드라마들은 더 높은 완성도와 스케일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회사를 꾸려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불안요소’들을 어떻게 제거해 가야 할지가 숙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반면 지상파 예능이 가진 가장 큰 위험요소는 인력의 유출이다. 이른바 스타 예능 PD라고 불리는 실력 있는 제작진들은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비지상파로 대거 이동했고, 지금도 이동 중이다. 지난해 SBS에서 TV조선으로 이적한 서혜진 국장은 《아내의 맛》에 이어 《연애의 맛》을 성공시켰고, 최근까지 KBS 《1박2일》을 이끌었던 유일용 PD는 퇴사 후 거취를 고민 중이다. 몬스터유니온의 서수민 PD와 유호진 PD 역시 비지상파로 갈 가능성이 높다. 예능 PD의 유출은 심각하고, 그것은 또한 출연자들의 유출로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지상파 예능은 전반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공공성 제고와 콘텐츠 회사로의 전향 필요

현재 미디어의 헤게모니가 인터넷과 모바일로 움직인다는 건 그 자체로 지상파에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개인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지상파가 이른바 보편적 시청이라고 부르던, 매스미디어 시대에 ‘집단화’ 경향을 띠는 콘텐츠 소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개인화로 달라진 시청패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이제 TV 앞에 온 가족이 함께 앉아 있는 풍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일 게다. 이제는 한 집에서도 누군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누군가는 각각의 방에서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본다. 이렇게 ‘개인화’ 경향을 띠는 시청자들에게 ‘보편적 시청’은 구닥다리이자 시대착오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보편적 시청층을 통해 플랫폼 헤게모니를 장악해 왔던 지상파의 시대는 지나버렸다. 그렇다면 남는 건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회사로의 전향이다. 방송국은 콘텐츠를 편성·송출하는 기능을 하고, 대신 다양한 콘텐츠(지상파용이든 인터넷방송이든) 자회사를 스튜디오 방식으로 운용하는 게 훨씬 현재의 환경에 효과적이다. 드라마만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들도 외주 스튜디오 방식으로의 전환은 이제 살아남기 위한 지상파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상파가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버릴 수는 없다. 이를테면 뉴스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외주로 받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지상파가 이른바 ‘보편적 시청층’을 이 시대에도 여전히 겨냥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오히려 지상파는 자체 제작하는 뉴스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공성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근 들어 KBS가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거리의 만찬》 《도올아인 오방간다》 같은 참신한 교양 프로그램들을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건 시청자들이 지상파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 준다.  지상파는 과거의 영광만을 자꾸만 돌아볼 틈이 없다. 플랫폼으로서의 힘은 이미 상당히 약화된 상태이고, 기존 시스템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콘텐츠 경쟁력 또한 점점 하락하고 있다. 콘텐츠 회사로의 전향을 고민하면서, 지상파가 끝까지 가져가야 할 고유의 영역인 공공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동시에 하는 것만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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