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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차별 발언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 CDU 대표, 우경화 전략 통할까

지난 12월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집권당 기독민주연합(CDU) 전당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예외적으로 독일뿐 아니라 세계 각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8년간 당 대표 자리를 맡아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이 결정되는 자리여서다. 독일 제1당인 기민련의 당 대표는 사실상 차기 총리 후보로 간주된다.

결선 투표를 거쳐 기민련의 새 당 대표가 된 것은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기민련 사무총장이다.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한 그는 두 차례 지방선거를 통해 7년간 자를란트주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는 2017년 3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메르켈 총리의 눈에 띄었다. 당시 사민당 후보를 꺾으면서 사민당의 상승세를 꺾었기 때문이다. 6개월 뒤인 2017년 9월, 메르켈은 4선에 성공했고 2018년 2월 크람프-카렌바우어를 당 사무총장으로 선택하면서 그를 연방 정치무대에 세웠다. 이후 메르켈은 이번 임기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메르켈이 직접 선택한 후계자다.

이 때문에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은 크람프-카렌바우어를 ‘메르켈 2.0’으로 불렀다. 그가 중도와 보수를 동시에 공략한 메르켈의 정치적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뜻이다. 독일의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신임대표가 “조용하고, 신중하며, 정중하며 결코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다. 마지막까지 의중을 숨기고 철저하게 감정 표현을 통제하는 메르켈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그러나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메르켈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기민련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난민, 여성, 동성애자 등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해 크람프-카렌바우어가 극우파인 AfD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이슈들은 산업과 연금 문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가 가라앉고 난 지난 3년간, 유권자들은 각 정당의 소수자 정책, 특히 난민 정책에 큰 비중을 뒀다. 소수자 인권이 독일 정치 판도를 바꿔놓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제1당 신임대표인 크람프-카렌바우어의 소수자에 대한 입장은 곧 앞으로 일어날 변화의 방향을 가늠케 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독일 기민당의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왼쪽) 사무총장이 2018년 12월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뒤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AP 연합
독일 기민당의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왼쪽) 사무총장이 2018년 12월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뒤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AP 연합

신임대표 “난민 추방, 낙태·동성혼 반대”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메르켈과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난민 정책이다. 메르켈은 2015년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내전이 일어난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여론 악화로 메르켈은 EU 국경 수비를 강화하는 등 난민 정책을 대폭 수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국제법이 정한 난민 수용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추방을 요구한 자매 정당의 프란츠 요제프 제호퍼 내무장관과 심각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반면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대표는 2018년 11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범죄를 저지른 시리아 난민 신청자들은 추방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시리아는 내전 중이며, 따라서 시리아로 추방당한 사람은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이 때문에 독일 사법부는 범죄를 저지른 시리아 난민 신청자들이 독일에서 한시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고 있다.

크람프-카렌바우어의 발언은 독일국가민주주의당(NPD)의 ‘범죄자 외국인 추방’이라는 표어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는 한층 더 과격한 주장을 폈다. 범죄를 저지른 난민 신청자들이 독일뿐 아니라 솅겐 협정을 맺은 모든 EU 국가에 “평생 발을 붙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당선 후 나흘 만인 12월10일, 임신중단 시술 광고를 금지한 독일 형법 219b조 폐지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기민련과 사회민주당(SPD)은 연합 정부를 구성하고 형법 219b조 폐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왔다. 특히 사민당은 이 법이 임신중단 시술을 사실상 범죄로 낙인찍으며, 임신중단을 결정한 여성들이 안전하게 시술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시대착오적인 악법이라는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는 좌파당과 녹색당뿐 아니라 자유민주당(FDP) 일부 의원도 찬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민당은 기민련의 동의 없이도 219b조 폐지를 강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기민련과의 연합정부 자체가 깨질 우려가 크다.

한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형법 219b조 폐지 문제를 실리적인 입장에서 재는 중이다. ‘보수색이 옅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기민련은 물론 새 당 대표로서 자신의 프로필을 뚜렷이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기민련은 메르켈 집권기간 동안 중도좌파 성향인 SPD의 정책들을 흡수했고, 그 결과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이 이탈했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극우 성향의 AfD가 지금처럼 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고도 분석한다. 형법 219b조 유지는 원조 우파정당의 이미지를 살리고 AfD에 빼앗긴 지지층을 되찾을 수 있는 묘책이다.

“극우 온건파 유권자 표 가져오겠다”

사실 메르켈 총리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쓴 적이 있다. 바로 2017년 벌어진 동성혼 합법화 논쟁 때다. 당시에도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당은 동성혼 합법화 법안을 내놓고 메르켈을 압박했다. 74.7%의 독일인이 동성혼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메르켈은 기민련과 기독사회연합(CSU) 소속 의원들 개개인이 “양심에 따라” 결정하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연방의회는 상반기 마지막 회기인 2017년 6월30일에 다수결을 통해 동성혼을 통과시켰다. 메르켈 총리는 동성혼 합법화가 예측 가능한 상황인데도 “결혼은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반대표를 던졌다. 실효성은 없지만 보수 성향의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크람프-카렌바우어는 2015년 자를란트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성혼을 허용하게 되면 근친혼이나 3인 이상의 결혼도 허용하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를 혐오 선동 혐의로 고소한 베를린의 변호사 시시 크라우스는 이 발언이 “단순한 동성애 혐오가 아닌 인간에 대한 멸시이며 나치 시대의 발언들에 견줄 만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고소는 기각됐고,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당 대표 선거운동 중 출연한 TV 토크쇼에서 이 같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크람프-카렌바우어 체제의 기민련은 2019년 가을 브란덴부르크주, 작센주, 튀링겐주 지방선거를 통해 첫 성적표를 받게 된다. 이변이 없는 한 이들 세 주에서는 기민련이 전통의 강세를 이어갈 확률이 높다. 섣부른 전망이지만, 이러한 승리를 바탕으로 크람프-카렌바우어가 차기 총리에 오를 경우 유럽 정치의 흐름도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폴란드·헝가리 등 여러 유럽 국가에 이어 마침내 독일에도 자국 우선주의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AfD의 온건파 유권자들의 표를 가져오겠다”는 크람프-카렌바우어가 어느 정도까지 오른쪽으로 기울지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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