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형 선고해 달라” 호소하며 분노와 불안감 표출
세 자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씨에 대한 결심공판을 하루 앞둔 12월20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아버지 김종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김씨의 딸은 “오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60일이 되는 날”이라면서 “저희 가족들은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살인자가 돌아가신 엄마와 저희 가족 중 누구를 죽일까. 목숨을 가지고 저울질을 했다 한다. 이에 또 한 번 저희 가족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저는 살인자인 아빠의 신상 공개를 하려 한다. 이 잔인한 살인자 김종선이 다시는 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저희 가족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멀리 퍼트려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인 12월21일 검찰은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심형섭)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김씨에게 무기징역과 위치 추적 전자장치 부착 10년 등의 처벌을 내려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둘째 딸(21)은 “한때 아빠로 불렀지만 이제는 엄마를 돌아올 수 없는 저세상으로 보내고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 살인자 앞에서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살인자에게 벌을 준다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겠지만 우리의 소중한 행복과 미래를 앗아간 살인자에게 법이 정하는 최고의 벌을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유족이자 피의자 직계 가족인 세 자매가 사적으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 자매는 왜 이 같은 분노를 표출하며 아버지의 신상을 공개했을까.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던 가족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에 살던 피해자 이씨는 1993년 김종선과 결혼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던 이씨에게는 지옥 같은 생활의 시작이었다.
남편 김씨는 결혼 직후부터 폭력을 행사했다. 아내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이며 사사건건 간섭하고 일상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부부 사이에는 딸 셋을 뒀는데 아이들도 아버지의 폭력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김씨는 어린 딸들을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점점 그 강도가 심해졌다. 심지어 중학생일 때는 밧줄로 묶고 구타를 한 적도 있었다. 김씨는 딸들을 때릴 때마다 “짐승도 때리면 말을 듣는다”라고 말했다. 딸들은 몸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한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녀야만 했다.
김씨는 두 얼굴의 남편이자 아빠였다. 집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면서도 밖에서는 자상한 남편, 다정한 아빠처럼 행세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폭력과 폭언을 일삼으며 가족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신고를 하고 싶어도 보복이 두려워 할 수 없었다.
김씨는 철저히 계산적이었다. 아내와 딸들에 대한 폭력을 ‘심신미약’으로 포장하기 위해 꾸준히 정신과를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다. 아내를 폭행하면서 “너를 죽여도 감옥에서 얼마 살지 않고 6개월이면 나온다”고 말했다.
2015년 아내 이씨는 친구들과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날 남편 김씨는 아내를 따뜻하게 맞아주기는커녕 또다시 욕설과 폭행으로 대신했다. 엄마가 맞는 것을 본 둘째 딸이 112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 긴급임시조치(주거·직장 100m 내 접근금지 및 전화·이메일 접근금지)를 했고, 법원은 접근금지명령을 내렸다.
이 일을 계기로 이씨는 가까스로 김씨와 이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남편에게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김씨는 이씨에게 병적인 집착을 하며 스토킹을 시작했다. 이씨는 세 딸들과 함께 남편을 피해 계속 주거지를 옮겨 다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어떻게든 이씨의 주거지를 찾아내 폭언·폭행·협박을 일삼았다. 이씨는 이런 김씨를 피해 여섯 번이나 거처를 옮겼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김씨는 이씨 차량 범퍼에 몰래 GPS(위성항법장치)를 붙여 위치를 추적했다. 지난 3월 이씨는 어렵사리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에 정착했다.
이곳에서도 김씨의 집착을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이번에도 김씨에게 거주지를 들키고 말았다. 지난 10월22일 새벽 4시40분쯤 이씨는 운동(수영)을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 딸들을 위해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며 열심히 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 길이 마지막이었다. 김씨는 이씨가 나오길 기다리며 아파트 입구 출입문 옆에 숨어 있었다. 이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뒤를 따라갔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발까지 쓴 상태였다. 이씨가 지상주차장으로 걸어가자 김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 마구 찔렀다.
이씨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고 결국 숨지고 말았다. 범행 후 김씨는 범행 현장을 벗어났다. 오전 7시16분 흉기에 찔린 채 숨져 있는 이씨를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했다. 그의 옆에는 범행에 사용한 흉기가 그대로 있었다. 이씨의 소지품인 핸드백과 쇼핑백도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은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통해 김종선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가 아파트 현관을 나오는 이씨를 쫓아가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범행 현장을 서성거리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경찰은 김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김씨는 약 1km 떨어진 곳에서 수면제에 취해 길거리를 비틀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노숙자로 오해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고, 약 15시간 만에 검거됐다.
김씨가 검거됐으나 세 자매는 극도의 불안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우선 가장 믿고 의지했던 엄마의 목숨을 앗아간 아버지를 가족의 구성원에서 배척했다. 세 자매에게 아버지 김종선은 엄마를 죽인 ‘살인자’일 뿐이었다.
김씨가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늘 얘기했던 “나는 심신미약으로 금방 나온다”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도 떨었다. 병적인 집착을 보였던 김씨가 제대로 형을 살지 않고 나온다면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딸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김종선의 신상을 공개한 것은 미래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세 자매는 “경찰이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 직접 공개했다”고 밝혔다.
애매모호한 신상공개 기준
강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피의자의 신상 공개는 뜨거운 감자다. 피해자 유족이나 대다수 국민 여론은 “신상을 공개하라”고 촉구한다.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이후 신상을 공개하라는 국민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같은 해 1월24일 관련법을 개정했다. 지금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특정 요건을 모두 갖춘 피의자의 얼굴, 이름,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공개 기준은 크게 4가지다. 첫째, 범행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 피의자여야 한다. 둘째, 피의자가 그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셋째,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넷째, 위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피의자가 만 19세 미만일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등촌동 살인 사건의 경우에는 위의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은 신상 공개를 위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신상이 공개된 사건의 면면을 보면 기준이 모호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당시의 여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토막 살인 사건의 경우 피의자인 오원춘·박춘풍·김하일·조성호·변경석 등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들과 관련된 사건은 언론에서 집중 조명됐었다.
하지만 2013년 전남 화순에서 아내 조아무개씨(70)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공아무개씨(75)는 신상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공씨의 경우 시신을 토막 낸 후 뼈와 살을 분리해 완전히 해체했다. 시신 처리 과정은 더 엽기적이다.
일부는 육회처럼 씹어 먹고, 나머지는 키우던 개 먹이로 주거나 냉장고에 보관하기까지 했다. 잔인한 것으로 따지면 오원춘과 쌍벽을 이룬다. 2016년 8월 딸에게 “악귀가 씌었다”며 아들과 함께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한 모자도 신상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찰은 2017년 10월 어머니와 계부, 이부동생을 살해하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 국내로 송환된 김성관(35)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 반면, 2013년 1월 재산을 노리고 부모와 형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박아무개씨(25)와 같은 해 8월 인천 남구 용현동에서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정아무개씨(29)는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인륜과 천륜을 저버린 흉악범들이었고, 신상 공개 기준도 충족했다. 특히 박씨의 경우 재판부가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할 정도로 반인륜적인 범죄였다.
2014년 광주광역시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아무개씨(34)도 신상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그는 당시 사귀고 있던 전아무개씨(41)가 결혼을 요구하자 말다툼을 벌인 후 집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화해를 한다며 꽃바구니를 들고 전씨가 사는 아파트에 왔다가 “나가라”는 말에 격분해 목을 조르고 랩으로 얼굴을 감싸 질식사시켰다. 김씨는 전씨의 어머니(68)를 주방에 있던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때려 살해하고, 중학생 딸(16)도 전씨와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일가족 세 명을 죽였으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2013년 2월 서울 면목동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위층에 사는 형제를 잔인하게 살해한 김아무개씨(45). 그는 얼마나 세게 흉기를 휘둘렀던지 칼날이 휘어지고 부러질 정도였다.
김씨는 범행 후 강서구청 인근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를 불러 흥청망청 유흥을 즐겼다. 불과 몇 시간 전 형제들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의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당뇨를 앓던 형제의 아버지는 졸지에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사건 발생 19일 만에 사망했다. 김씨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무시됐다.
현재 범죄자의 신상 공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국민 법 감정에 맞게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이유다.